주간동아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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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는 뇌물 주고 자란다

인기가수 K씨 제작자 P씨 사례로 본 연예비리 … “앨범 발표 전 모든 방법 동원 가수 띄우기 작업”

  • < 송만수/ 연예 칼럼리스트 >

    입력2004-10-07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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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는 뇌물 주고 자란다
    가수 K씨의 음반제작자 P씨는 요즘 심정이 착잡하다 못해 황망스럽기까지 하다. K의 1집 앨범을 성공시킨 이후 1년여 만에 2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개시했지만 앨범이 전혀 움직이질 않기 때문이다. 월드컵 때문에 발매 시기를 두 달여 늦추면서 시기를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예상치 않았던 ‘연예계 비리 사건’이 터져버린 것.

    K는 발라드를 주무기로 하는 가수다. 따라서 가을이 오기 전에 앨범을 발표해 늦여름에 활발한 홍보활동을 벌여 날씨가 서늘해질 때 앨범이 팔려야 한다. 당연히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인 셈. 그런데 방송국은 썰렁하기만 하고 지원과 협조를 약속했던 관계자들도 ‘장기 휴가’를 떠났거나 자리를 비운 상태다.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도 주변을 의식하며 피하기 일쑤다.

    당황스런 것은 가수 K도 마찬가지다. 2집 앨범의 성공이 불확실해진 지금 K는 자신이 스타로 등극하기까지 보낸 세월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대부분 무명시절 3~5년 보내

    K의 꿈은 어릴 적부터 자천타천으로 연예인이었고 또 연예인이 되기 위해 그간 다양한 시도와 준비를 했다. ‘머리가 빈’ 연예인이 되지 않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고, 방송 연예계 쪽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정을 쌓아왔다. 막연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데뷔할 기회가 찾아오고 스타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K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경험 삼아 각종 오디션이나 선발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연예인들은 그렇게 준연예인 혹은 무명시절을 보내게 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3~5년, 길게는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다 K의 데뷔는 정말 ‘우연히’ 이루어졌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었다”고 인터뷰에서 대답하곤 한다. 사연은 이랬다. 중급 매니지먼트사인 M의 로드 매니저 L씨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K가 형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다. L씨는 톱탤런트 P양의 운전기사 노릇도 같이 하는데 바쁜 스케줄 때문에 K가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M사의 건물 근처에 또 다른 대형 음반기획사 D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길거리를 걷는 K를 보게 된 D사의 수석매니저가 즉석에서 캐스팅 제의를 한 것. 사실 D사는 K 같은 신인가수를 찾기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고 한다.

    K를 데뷔시키기로 마음먹은 D사는 특유의 노하우를 동원해 K를 변화시켜 나갔다. 가수와 연기자의 두 갈래 길에서 주저 없이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했고, 악보를 보는 것부터 시작해 노래를 잘하는 방법까지 개인 선생님을 두어 가르쳤다. K의 가수 수업 기간은 1년 가까이 걸렸다. 그리고 데뷔 앨범 작업이 시작되었다.

    스타는 뇌물 주고 자란다
    K의 앨범 발표가 임박해지자 음반기획사는 다른 차원에서 바쁘게 움직였다. ‘우호세력’에 대한 작업을 시작한 것. 사실 이런 작업들은 어느 특정 가수의 앨범 홍보 시기에 집중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대형기획사일수록 이런 작업은 늘 이루어진다. 물론 이런 작업은 그 성격상 공개적이지 않다.

    여기서 작업 대상은 분명하다. 영화와 달리 가요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인쇄매체의 기사가 아니면 달리 PR을 할 통로가 없는 편이다. 그러니 시청률이 높은 TV 오락프로그램의 책임자들과 스포츠지 연예부 데스크들에게 로비가 집중될 수밖에 없다.

    자리의 내용도 무척 다양하다.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룸살롱에서 술 한잔 마시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 그러나 이것은 워낙 일상화돼 있어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접대라고 생각지 않는다(그야말로 소주 한잔이다). 요즘은 해외 골프투어가 일반적인 ‘자리’가 돼 우호세력과 골프를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밖에도 스키장이나 해외 바다낚시도 인기 있는 자리라고 한다.

    당연히 여기에 쓰이는 돈은 앨범 제작비에 포함된다. 대략 한 앨범에 필요한 제작비는 4억원 내외. 이중 2억원 내외가 앨범 제작 및 MV(뮤직비디오)에 쓰여지고 나머지 2억원이 PR비와 활동비로 쓰이게 된다. 말 그대로 활동비는 그야말로 순수한 비용이다. 로드 매니저, 코디네이터,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기본적으로 따라붙어야 가수가 활동할 수 있는데, 이들이 함께 움직이며 쓰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나머지 PR비는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로비자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략 3대 공중파 가요 및 오락 프로그램 PD 및 CP, 음악 전문 케이블TV 담당자들, 그리고 스포츠 신문의 연예팀 책임자들이 로비 리스트에 오르는 주요 대상이다.

    ‘해외 골프투어’ 일반적 접대

    이렇게 앨범 한 장당 수억원대의 자금이 필요한 만큼 중소 연예기획사의 사장들은 늘 돈 때문에 고민한다. 이른바 ‘마이킹’이라는 선금을 받는데, 이는 좀더 규모가 큰 음반제작사의 사장들에게서 빌려다 쓰는 돈이다. 고율의 이자가 붙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투자금은 아닌 엄연한 빚이다. 그리고 이런 선명하지 못한 자금의 흐름 속에서 비자금은 형성되게 마련이다. 사실 이번 검찰의 연예계 비리사건으로 구속되었거나 수배중인 제작관련 인사들은 대부분 중소기획사의 사장들에게는 ‘신’으로 군림하는 인물들이다. 수십억원대의 마이킹을 뿌려놓았으니 가요계를 좌지우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가수 K는 자신이 왜 스타가 되었는지 데뷔 초기까지만 해도 잘 몰랐을 것이다. 기획사 지시대로 열심히 음반을 녹음했고, 짜놓은 스케줄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코디네이터가 입힌 옷과 메이크업을 받은 상태에서 녹음실에서 수천 번을 불렀던 노래를 카메라 앞에서 불렀을 뿐이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것이다.

    이런 K가 2집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추구하겠다는 말을 자주 해 요즘 제작자 P씨는 걱정이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죠. 자기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어떤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는지…. 그런데 띄워놓으니까 자기가 서태지인 줄 알아요. 음악세계요? 참 나… 지금 앨범이 움직일 기미도 없는데…. 요즘 마이킹 걱정만 하면 잠이 안 와요. 그나저나 8월 중순이면 검찰 수사가 마무리된다니까 그때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해야죠. 그런데 이번 수사로 ‘구악’들은 모두 사라지고 물갈이는 확실히 될 것 같다는 얘기도 들려요.”

    아무튼 다소 장황하게 가수 K를 중심으로 스타 탄생의 비밀을 들쳐본 것은, 한 명의 연예인 지망생이 스타로 변신하는 과정에 연예계에 퍼져 있는 구조적 비리가 다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연예계 비리관련 검찰 수사’는 거의 매년 매스컴을 장식하는 단골메뉴 중 하나였다. 그러나 검찰 수사나 언론 보도는 늘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피라미 몇 명 구속하는 것으로 마무리짓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달랐다. 월드컵 4강 진출로 온 국민이 열광했던 지난 6월 말부터 발표된 이번 검찰 수사는 매우 착실하게, 오랫동안 준비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번 사건의 경우 무엇보다도 ‘연예계의 구조적 유착관계’에 대해 검찰이 비교적 정확하게 짚고 수사를 시작했다는 특징을 보인다. 스타를 중심으로 포진된 주변인들(예능PD, 스포츠신문 기자, 제작자 등)의 ‘오랜 동반자적인 관계’에 주목했던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방어할 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연이어 구속 수배되는 것을 보면 검찰이 제대로 칼을 빼 들었거나, 민주화(?)가 착실히 진행된 것 같다. 연예계에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관계자들이라면 ‘대어’라고 이구동성으로 동의할 인물들이 검찰 수사대상에 오른 것이다.

    선금 받는 ‘마이킹’ 엄연한 빚

    현재 방송계는 실질적인 마비 상태다. 모 방송국 TV 예능국의 경우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간부급 PD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 일부 PD는 휴가를 내거나 언론사 입사 시험공부를 하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조심스럽게 ‘8월 중순 마무리설’을 얘기하기도 한다. 검찰 인사가 그 시기에 있기 때문이란다. 또 방송국에서도 이번 사건에 연루된 PD들은 가급적 퇴사를 종용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연예계 비리에 관한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진행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또다시 용두사미식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면 이젠 연예계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검찰을 불신할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검찰의 손을 빌리든 그렇지 않든 연예계의 비리 척결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10대 청소년 상당수가 미래 희망으로 연예인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시장 제2위의 연예시장을 가지고 있고 ‘한류 열풍’까지 이루어낸 지금, 연예계 비리는 지저분한 한국의 미래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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