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7

2002.08.15

“무역위원회 독립시켜라”

‘산업 피해 심판’ 기능에 산자부 소속은 모순 … 마늘 파동 이후 위상 제고 목소리 높아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0-07 10: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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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역위원회 독립시켜라”
    산업자원부 산하 무역위원회는 7월 초부터 중국산 싸구려 일회용 라이터에 반덤핑 관세 부과를 연장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중국산 라이터들이 국산제품 가격의 40%에 불과한 낮은 가격을 내세워 국내시장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어오자 한국라이타공업협동조합이 얼마 전 무역위원회에 반덤핑 관세 부과를 위한 피해 조사를 요청했기 때문. 무역위원회가 6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 오는 11월 중국산 라이터에 대한 5년간의 반덤핑 관세 부과 시한이 종료된 뒤에도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된다. 그만큼 국내 라이터 제조업체들은 중국산으로 인한 타격을 줄일 수 있게 되는 것.

    늘 미국이나 유럽연합(EU) 같은 선진국에 반덤핑 제소만 당하는 줄로 알고 있던 국내 업체들도 국내 시장을 지키기 위해 중국을 상대로 공격에 나선 것이다. 무역협회는 관련 업계와 사전협력해 중국산 라이터 반덤핑 제소에 따른 비용을 분담하는 등 공조체제를 과시하기도 했다. 반덤핑 문제에 관한 한 당하고만 있던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이 무역위원회를 통해 공격을 개시하면서 라이터의 수입품 점유율은 99년 66%에서 2000년 54%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무역위가 정부의 하수인이냐’

    “무역위원회 독립시켜라”
    그러나 대부분 중소기업들의 경우는 이처럼 발빠르게 움직인 라이터 제조업체들과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 아직도 무역위원회가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무역위원회가 중소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소기업인 10명 중 6명은 무역위원회라는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고,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 중에서도 무역위원회의 기능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37%에 불과했다. 무역협회 산하기구(20.1%)나 정부의 무역정책 결정기구(12.5%) 등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반덤핑 제소의 경우만 해도 중국산 저가 제품들이 최근 들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밀려들어오고 있지만 정작 이를 무역위에 제소한 경우는 매년 10건에도 채 못 미치는 상황이다.



    다만 최근 전성철 무역위원장이 중국산 마늘 세이프가드 연장을 위한 조사 요청을 기각한 무역위원회의 결정에 반발해 사퇴하면서 무역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산 마늘 세이프가드 조사 개시 여부와 관련해 무역위원회가 무기력한 모습만을 보여줌으로써 농민들 사이에서는 ‘무역위가 정부의 하수인이냐’는 비난마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대다수 전문가들 역시 무역위가 현재와 같은 위상을 갖고 있는 한 이 같은 문제는 쉽게 개선되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87년 창설된 무역위원회는 우선 산업자원부 산하 조직으로 돼 있어 독립성이 확보돼 있지 않다. 위원장의 권한 또한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형편(박스 기사 참조).

    이 같은 조직의 취약성은 이번 마늘 파동 해결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 내에서 마늘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의 조기 확정을 통해 무역위원회에 기각 명분을 주자는 공감대가 이미 이루어졌고, 무역위 역시 표결도 없이 합의처리 방식으로 이에 호응하는 듯한 결정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불공정 무역행위 조사 및 산업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 제16조 1항은 무역위원회의 조사 개시 전에 국내 산업의 심각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져 조사가 필요 없게 된 경우 피해 조사 신청을 기각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정부가 무역위원회 결정 이전에 부랴부랴 1조8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마늘 대책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 정부는 5개 부처 명의의 이런 대책을 무역위원회 결정 사흘 전에야 통보해 사실상 무역위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정부는 무역위 개최 사흘 전 위원회에 보낸 공문에서 무역위가 세이프가드 조치 연장을 건의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 무역위를 사실상 허수아비로 만든 것 아니냐는 비난도 사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비상임 무역위원인 서울대 박태호 교수는 “세이프가드의 본뜻은 국내 산업 피해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만 하자는 것인데 1조8000억원이나 되는 정부측의 마늘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은 이를 충분히 반영했다”며 “조사 개시 요청을 기각할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마늘 파동을 계기로 이제부터라도 무역위원회를 행정부처로부터 독립시켜 명실상부한 독립 심판기관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 고준성 연구위원은 “무역위원회가 산업 피해 여부를 심판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집행부서 내에 들어가 있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마늘 파동을 계기로 무역위원회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中企도 피해 구제 적극 나서야

    말하자면 무역위가 산업자원부 산하기구로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예속될 것이 아니라 산자부로부터 독립해, 준사법기구로서의 ‘법률적’ 판단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공정거래위원회 정도의 독립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지난 94년 경제기획원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96년에 와서야 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된 바 있다.

    무역위원회의 구성 또한 문제로 지적되기는 마찬가지다. 무역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8명의 상임, 비상임위원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중 정부 입김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정부측 위원이 2명이고 통상이나 무역 분야의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경우 준사법적인 독립기구 지위를 갖고 있는 데다 상임위원 6명의 임기는 무려 9년이다. 대통령 임기와 관계없이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무역위원회의 경우 상근 인력조차도 잦은 순환보직 관행 때문에 전문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무역위원회 관계자는 “부처 내에서도 ‘온탕’보다는 ‘냉탕’으로 취급받는 형편”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중소기업들 역시 무역위원회를 통해 국내 산업 피해를 적극적으로 구제받으려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역협회 민경선 국제통상팀장은 “1년에 두 차례씩 중소 무역업체들을 상대로 무역 피해 구제 방안에 관한 설명회를 열기도 하지만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형편상 아무래도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무역위원회를 독립시키는 것과 동시에 무역위원회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도 무역위를 ‘애용’할 줄 아는 자세를 갖춰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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