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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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 청문회’냐 ‘인사 청문회’냐

개인적 흠집 내기에만 골몰… 바람직한 고위공직자 모델 제시해야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4-10-07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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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리 청문회’냐 ‘인사 청문회’냐
    ‘장상 파문’의 여파는 인사청문회 운영방식을 놓고도 적지 않은 뒷말을 낳고 있다. 청문회 내내 개인사적인 문제를 둘러싼 ‘물고 늘어지기’식 질의가 계속되자 여성단체를 비롯한 일부에서 ‘이런 식으로 털어서야 누가 청문회를 통과하겠느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장상 지명자에 대한 인준동의안이 부결된 직후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은 부동산 투기 의혹, 위장전입 의혹 등 도덕성을 중심으로 질의하여 총체적인 검증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적 비난에 초점을 두었으며, 민주당 일부 위원은 장상 지명자 옹호 발언과 함량미달의 질문으로 국민들을 지치게 했다”고 비난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국무총리로서 국정수행 능력 검증 위주의 청문회가 아니라 개인의 도덕성과 자질만을 물고 늘어지는 청문회 진행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조사청문회(investigation)와 인사청문회(confirmation)를 구분해 진행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장상 청문회 과정에서 정책 검증과 관련해 논란이 된 것은 기껏해야 서해교전 책임론 등 대북관 정도였다. 반면 대부분의 청문회 주제는 부동산 투기 및 위장전입 여부, 학력 위조 논란, 아들 국적 문제 등 사생활 문제로만 일관했다.

    “칭찬할 건 칭찬하고 의혹거리는 해명 들어야”

    물론 장상 총리 지명자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나 이한동 전 총리 같은 ‘실세형’ 총리가 아니고 ‘관리형’ 총리였기 때문에 정책이나 국정수행 능력 같은 것은 애당초부터 거들떠볼 가능성조차 없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말하자면 ‘얼굴마담’으로 나선 사람을 붙잡고 햇볕정책의 공과나 공적자금 회수 방안 등을 따져 묻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 그러다 보니 청문회의 초점이 온통 개인적인 문제로만 집중될 수밖에 없고 의원들이나 언론들이나 한결같이 개인적 흠집을 찾아내는 데만 관심을 기울였다. 이러한 방식은 인사청문회의 취지에 비춰보면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지난 2000년 이한동 전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부인의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됐고 이 전 총리 역시 사실상 이를 시인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더 이상의 파문 확산은 없었다. 말 바꾸기나 거짓말 논란 역시 도마에 올랐으나 이 전 총리는 “정치인은 상황논리를 따라야 할 때도 있다”는 보호막을 쳐놓고 빠져나갔다. “청문회를 통해 모르고 있던 재산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여유까지 부렸다. 그러나 장상 총리 지명자는 정면돌파를 택했다가 국민의 신뢰도 얻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다’는 평가만 얻은 채 낙마하고 말았다. 한편 청문회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고위공직자 지명 과정에서부터 이러한 의혹들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 권부(權府) 내 동맥경화 현상 역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청와대가 주요 인사들에 대해 정책능력뿐만 아니라 개인사와 재산 관계 등까지 꼼꼼히 모니터링하기 위해서는 과거 사직동팀이나 민정수석실 기능과 유사한 인사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움직임이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국민대 윤영오 교수(정치학)는 “총리로 지명된 사람은 이미 정책수행 능력 면에서는 어느 정도 검증된 사람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청문회 과정이 개인적 문제와 자질 공방으로 흐르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전제한 뒤 “청문회는 기본적으로 흠집을 들춰내는 것보다는 대상자를 칭찬해 주고 이를 통해 고위공직자의 바람직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비리를 캐는 조사청문회와는 달리 인사청문회에서는 본인의 해명을 듣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교수는 “장상 총리서리는 일반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부족한 측면이 많았지만 도덕성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사람이 지명되었을 때는 대상자의 전문성과 덕망을 칭찬해 주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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