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8

2002.06.13

젊은 에너지와 두뇌 모인 ‘한국의 미래’

서울 속 작은 월街 파이낸스센터… 입주사 40% 다국적기업, 미혼 커리어우먼 특히 많아

  • < 구미화 기자 > mhkoo@donga.com

    입력2004-10-12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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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에너지와 두뇌 모인 ‘한국의 미래’
    ‘강북의 청담동’ ‘서울 속 작은 월가’로 불리며 서울시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서울파이낸스센터(서울시 중구 태평로). 지상 30층, 지하 8층, 연면적 3만6000평의 이 빌딩에 현재 입주한 회사는 메릴린치, 매킨지, 딜로이트컨설팅,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바클레이즈은행 등 다국적기업과 싱가포르대사관, SK텔레콤, 월드컵조직위원회 등이다. 금융기관, 정보기술(IT)업계, 컨설팅업체, 대사관 등 최고의 직장으로 손꼽히는 곳만 모여 있는 셈이다.

    현재 최고의 임대료를 자랑하는 서울파이낸스센터는 2000년 4월 싱가포르 투자청이 새 주인으로 나서기 전까지는 거대한 흉물에 지나지 않았다. 1984년 재일교포 곽유지씨의 유진관광이 특급호텔을 세우기 위해 25층까지 철골을 올렸지만 1990년 건축 관련 비리에 연루되어 공사를 중단했다. 이후 4년 가까이 방치되던 것을 1993년 롯데관광이 유진관광을 인수하면서 최고급 금융빌딩으로 변모하는 듯했지만 1998년 IMF 여파로 유진관광이 부도를 내면서 90% 완성된 상태에서 공사는 또다시 중단되었다.

    콘크리트 먼지만 날리며 비어 있는 상태로 2년을 보낸 빌딩은 싱가포르 투자청에 매각되어 지난해 5월 마침내 완공됐다. 이후 빌딩자산관리사인 ‘코리아에셋어드바이저즈’(Korea Asset Advisors)에서 임대, 관리를 맡아 입주자 선정 과정에서 까다로운 ‘물관리’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젊은 에너지와 두뇌 모인 ‘한국의 미래’
    1980년대 초 첫 삽을 뜬 이후 20여년 동안 기구한 운명을 견뎌낸 서울파이낸스센터는 이제 어두운 과거가 무색할 정도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3개 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 마루로 된 통로가 인상적인 지하몰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지난해 말 문을 연 이곳은 한식 중식 일식은 물론 인도 몽골 베트남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고급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서울파이낸스센터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은 “지하의 여러 식당들은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착각할 정도인데, 이는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비즈니스센터와 대등한 수준이다”고 말한다.

    지하몰에서 1층으로 올라서면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강한 초여름 햇빛에 대리석으로 꾸며진 넓은 로비가 반짝거리고, 가죽 소파들이 놓여 있어 최고급 호텔을 연상케 한다. “매일 아침 입구에서 큰 소리로 인사를 받고, 반짝거리는 로비를 걸어 엘리베이터에 오를 때마다 ‘내가 이렇게 좋은 건물에서 근무하다니…’ 하고 감탄해요. 정말 멋지고 고급스러운 건물이죠.” 지난해 12월 서울파이낸스센터에 입주한 SK텔레콤의 네트워크운영본부 비서실에서 근무하는 김혜진씨의 말이다.



    2000년 12월 교보빌딩에서 서울파이낸스센터로 옮겨온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서울지점은 초기에 입주한 업체 중 하나. 회사 규모가 커질 것을 대비해 사무실을 옮긴 윌리엄 게멀(William A. Gemmel) 대표는 입주한 뒤, 건물을 최고급으로 가꾸려는 소유주와 관리자들의 노력에 만족했다고 말한다. “입주업체를 까다롭게 선정한 덕분에 세계적인 수준의 기업들과 함께 있어 자부심을 느낀다”며 입주자의 수준에 맞게 지하 식당과 주차 및 안내요원까지 최고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점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화장은 옅게, 옷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엿보이도록 세련되게. 한눈에 명품임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고급스럽게….” 튀지 않는 보보스 패션을 설명하는 듯한 묘사는, 서울파이낸스센터에 입주해 있는 다국적기업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이 말하는 서울파이낸스센터 사람들의 외모다.

    “몸매를 드러내거나 브랜드 상표가 눈에 띄는 옷을 입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속속들이 명품이지요. 개인적인 취향보다 자신이 속한 기업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서울파이낸스센터를 화려하게 변신시킨 코리아에셋어드바이저즈의 유경옥 과장의 말이다.

    젊은 에너지와 두뇌 모인 ‘한국의 미래’
    입주사의 40%가 다국적기업인 만큼 외국어에 능숙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 이 빌딩에 근무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2~3년은 말도 못 꺼낼 정도로 해외 경험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회사들이 사내에서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 영어만 쓰도록 제한하고 있다.

    서울파이낸스센터는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오전 7시 이전에 이미 지하 주차장에 많은 차들이 들어차 있고 밤 12~1시경 정문 앞에는 모범택시들이 줄지어 있어 진풍경을 이룬다. 외국계 은행이나 컨설팅회사가 밤늦게 귀가하는 직원들에게 부분적으로 택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책임이 크기 때문에 퇴근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사장을 포함해 모든 직원이 하루 12시간에서 18시간 정도 일하지요. 저는 점심시간의 대부분을 비즈니스 상대와 보내기 때문에 아무런 약속이 없을 때는 혼자 지내는 것을 즐깁니다.”

    ‘디이그제큐티브센터’(THE EXECUTIVE CENTRE)의 서울지사장 조지만씨의 이야기다. 이 회사는 한국에서 런칭하려는 외국기업들에 단기적으로 사무실과 집기, 비서인력 등을 제공한다. 조씨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1998년 가을부터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재미교포.

    컨설턴트들의 경우 지하몰에 내려갈 시간이 없어 책상에 앉아 컴퓨터에 눈을 맞춘 채로, 때로는 회의를 진행하며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는 일이 허다하다. 또 밤샘이 잦아 여분의 옷을 회사에 보관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할 에티켓.

    젊은 에너지와 두뇌 모인 ‘한국의 미래’
    “독신주의는 아니지만 연애할 시간조차 없이 일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어느새 노처녀 대열에 있더군요.” 30대라고만 밝힌 딜로이트컨설팅의 장미원 부장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일하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없다”며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만큼 나이가 들수록 결혼 상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고 했다. 서울파이낸스센터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이 바로 이것. 일을 배우고 경력을 쌓다 보니 나이 서른을 훌쩍 넘긴 미혼여성이 많다.

    바쁘게 생활하는 이들에게 체력단련은 장기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래서 장미원 부장은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해 일요일마다 뛰고, 차에 골프용품을 싣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골프를 친다. 쉴 틈 없이 일하는 이들에게 운동은 단순히 신체를 단련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비즈니스의 연장이기도 하다.

    서울파이낸스센터에 입주한 업체의 대표들 중 서울시내 특급호텔이 멤버십으로 운영하는 헬스클럽에 가입한 사람들이 꽤 된다는 것도 운동과 비즈니스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이들의 생활을 반영한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서울지점의 윌리엄 게멀 대표 역시 주말 대부분을 하얏트 호텔의 헬스클럽에서 보낸다. 주말이면 굳이 출근할 필요가 없지만 토요일 아침, 잠깐이라도 회사에 나가 이메일을 확인하며 다음 주를 계획하고는 헬스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한순간도 일과 떨어져 본 적이 없다는 그는 운동을 하며 사람을 만나는 것 또한 일의 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서울파이낸스센터 사람들은 모두 총명한 인재들이죠. 남녀 가릴 것 없이 세계 각국에서 학위를 받거나 MBA를 마친 최고의 수준입니다.” 딜로이트컨설팅의 부회장 겸 금융 컨설팅회사인 Market Force의 대표이사이자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이사인 제임스 루니(James P. Rooney)는 “에너지 넘치는 젊음과 최고의 두뇌가 모여 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는 한국의 미래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IMF 금융위기가 오히려 기회로 작용해 각종 규제가 완화되면서 세계 기업들이 한국으로 진출했고, 한국과 외국기업의 업무방식이 절충되어 한국의 경제성장에 한몫하고 있는데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서울파이낸스센터라는 이야기다.

    지하 아케이드몰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보면 화려하고 여유를 즐기는 것으로만 보이지만 서울 파이낸스센터 사람들의 삶은 매우 치열하다. 서울파이낸스센터 사람들의 세련된 겉모습은 그들이 일궈낸 일의 성과와 경력, 자신감을 충분히 표현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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