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8

2002.06.13

영어 버전 ‘일본 가요’ 밀물처럼 온다

연주곡 위주에서 R&B 음반 등 잇따라 발매 … 발음 서툴지만 음악성으로 어필

  • < 양중석/ 월간 Oimusic 기자 > yajooo@oi.co.kr

    입력2004-10-12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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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버전 ‘일본 가요’ 밀물처럼 온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중음악에 대한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고 있다. 월드컵과 관련된 곡에 국한해 한시적으로 ‘일본어 가사’ 음반일지라도 길을 터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전망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니다. 월드컵 공식 음반에 대한 발매 권한을 가진 소니뮤직의 ‘2002 FIFA World Cup Official Album Song Of Korea/ Japan’ 앨범이 일본어 가사를 ‘합법적’으로 담고 있는 정도다. 이젠 됐다 싶어 준비를 서둘러 왔던 국내의 메이저 직배 음반 회사들은 그저 망연한 표정이다.

    하지만 일본 음악이라 해도 영어 가사로 노래한 음반에는 오래 전부터 어느 정도 융통성이 부여되어 왔다. 소니뮤직은 진작부터 영어로 노래한 일본 가수들의 음반을 출시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구보타 도시(久保田利伸)다. 일본 본토에 리듬 앤드 블루스(R&B) 열풍이 불어닥치기 훨씬 전부터 외로운 길을 걸어왔던 그가 미국시장에 진출해 발표한 앨범들이 다시 한국에서 발매된 것이다. SM 역시 재즈 보컬에 근거한 소울 창법을 선보이는 여성 싱어 미미의 앨범을 두 장 연거푸 선보인 바 있다.

    ‘일본어 가사’ 아직 시기상조

    영어 버전 ‘일본 가요’ 밀물처럼 온다
    그에 앞서, 일본 아티스트들이 연주한 연주 음반들은 90년대 들어 몰아친 재즈 음악 붐과 뉴에이지 음악 유행에 편승해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해 왔다. 주로 피아니스트의 음악이 같은 문화권에 속한 동질감과 정서에 힘입어 인기를 얻었다. 유키 구라모토(Yuhki Kuramoto), 나카무라 유리코(中村由利子), 이사오 사사키(Isao Sasaki) 등이 그 대표주자로 이들은 조지 윈스턴, 앙드레 가뇽 등 서구 뉴에이지 음악인들에게 매료되어 있던 우리 중장년 팬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적지 않은 386세대는 튜브나 안젠치다이(安全地帶)의 음악을 담은 카세트테이프를 끼고 다닌 기억을 가지고 있다. 20대 후반이라면 엑스 저팬으로 대변되는 일본 록그룹의 사운드에 푹 빠져 지낸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에는 워너뮤직이 엑스 저팬의 3집 앨범 ‘아트 오브 라이프’(Art Of Life)를 정식 라이선스 음반으로 국내에 발매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보컬보다는 연주 쪽에 비중을 둔 29분짜리 대작으로 일본 현지에서는 지난 93년에 이미 발매되었던 음반이다. 그 몇 개월 전에는 그들의 주요 히트곡을 피아노로 연주한 ‘엑스 저팬 온 피아노’(X-Japan On Piano) 앨범도 발매되었다. 또 올 봄에는 엑스 저팬 전 멤버인 요시키(YOSHIKI)의 피아노 연주가 압권인 오케스트라 협연 앨범 ‘Eternal Melody’가 출시되었다.



    반면 EMI는 일본 팝계의 슈퍼스타이자 소외된 장르 R&B를 주류로 편입시킨 주역 우타다 히카루(宇多田ヒカル)를 휘하에 두고 있으면서도 ‘언어의 벽’에 부딪혀 앨범 한 장 출시할 길이 없었다. 결국 EMI는 히든카드였던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라는 걸출한 혼성 팝 트리오를 꺼내놓았다. 이들이 발표했던 두 장의 영어 앨범 ‘싱 오어 다이’(Sing Or Die)와 ‘더 몬스터’(The Monster)가 라이선스로 국내에 발매되었다.

    하지만 막강한 자본과 배급력, 그리고 아티스트를 보유한 메이저 음반사들의 틈새를 공략하며 음반시장의 다양화, 다변화에 기여하고 있는 마이너 레이블 덕분에 일본 음악의 국내 진출은 서서히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들 레이블은 음악성 위주의 뮤지션들을 국내에 부지런히 소개하고 있다. 보사노바와 프렌치 팝, 그리고 일렉트로니카가 믹스된 쿨(cool)한 음악, 시부야계 스타일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팬태스틱 플라스틱 머신’의 앨범 ‘뷰티풀’(Beautiful)은 소수의 열성 팬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포니 캐니언이 선보인 고급스러운 소프트 재즈 여성 뮤지션 보니 핑크의 베스트 앨범도 작년 여름 ‘제3차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 이후 얻은 수확 가운데 하나다. 이 밖에도 숱한 인디 계열 록밴드의 음악이 영어 버전으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어 버전 ‘일본 가요’ 밀물처럼 온다
    이런 와중에서 치밀한 사전준비 끝에 ‘비잉 뮤직 코리아’(Being Music Korea)란 합자회사가 한국에 진출한 것은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분명하다. 외부 프로듀서진을 영입해 자체 제작한 곡을 무기로 ‘치고 빠지는’ 싱글 CD 시장을 활성화한 주역인 이들은 일본 내에서 실로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TV에 출연하지 않는 마케팅 방법을 채택한 자드를 필두로 우타다 히카루의 아류를 벗어나 당당하게 성공을 거둔 일본 팝-R&B의 신데렐라 쿠라키 마이(倉木麻衣), 그리고 캔, 정재욱 등이 리메이크해 국내에서 한층 유명세를 얻은 ‘여름용’ 록그룹 튜브, 데뷔 후 14년 동안 음반 통산 판매량 7700만장을 넘어선(세계 5위의 음반 판매액) 듀오 비즈(B’z) 등이 비잉 뮤직의 휘하에 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일단 비즈의 EP 앨범 ‘데블’(Devil)과 쿠라키 마이의 ‘시크리트 오브 마이 하트’(Secret Of My Heart)가 비잉 뮤직의 국내 진출 기념으로 발매되었다.

    1982년생인 쿠라키 마이는 마이 케이(Mai K.)란 이름으로 지난 2000년 미국시장에 먼저 데뷔했다. 2년 선배인 우타다 히카루의 라이벌로 자주 거론되는 쿠라키 마이는 우타다에 비해 팝적인 느낌이 강조된 R&B 음악을 주무기로 한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영어 앨범은 당시 미국시장용으로 제작한 앨범에 일본에서 히트한 몇 곡을 영어로 개사해 넣은 일종의 베스트 앨범이다.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마쓰모토 다카히로(松本孝弘)와 보컬리스트 이나바 코시(稻葉浩志)로 구성된 비즈는 70년대 하드록 사운드에 기초한 경쾌한 록 사운드를 주 무기로 한다. 이번 EP 앨범 역시 영어 가사로 부른 것치고는 본디 이들이 지닌 색깔이 크게 바래지 않았다.

    영어 버전 ‘일본 가요’ 밀물처럼 온다
    하지만 아무래도 애초에 영어 가사로 쓰인 곡이 아닌 바에는, 받침 없는 발음체계를 가진 일본인들이 구사하는 발음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가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본래의 창작 의도에 반해 잘려 나간 운율이나 언어 조합의 재미 같은 것은 오리지널 버전을 확인하지 않는 한 알 길이 없다. 그런 맥락에서 비록 싱글 앨범이기는 하나 일본 최고의 아이들(Idol) 그룹인 브이식스(V6)와 S.E.S.가 함께한 싱글 앨범 ‘원’(One)의 한·일 동시 발매 소식은 무척이나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이 음반들이 국내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면, 일본 대중음악의 완전개방도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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