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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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는 요람에서부터 다르게”

고소득층의 못 말리는 ‘귀족병’… 승마·골프 등 차별화 교육에 해외연수도 기본

  • < 구미화 기자 > mhkoo@donga.com

    입력2004-10-12 13: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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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애는 요람에서부터 다르게”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사는 주부 김모씨(33)는 최근 ‘노블키드’ 클럽을 표방한 한 업체의 광고전단을 보고 입이 짝 벌어졌다. ‘수준’이 맞는 아이들을 모아 골프 승마 등을 가르치고 방학 때는 미국 호주 등에서 외국어 캠프를 운영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상류층 아이들과 교제하면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고급 네트워크를 맺을 수 있다’는 문구에 솔깃한 김씨는 일곱 살짜리 아들을 ‘노블키드 클럽’에 가입시키기로 결심했다.

    초등학생 박모군(12·서울 서초구 반포동)은 지난 겨울방학에 호주로 ‘어린이 캠프’를 다녀왔다. 한 달 코스에 비용은 400만원. 오전에는 미국인 강사에게 영어를 배웠고, 오후엔 호텔 매너교육, 파티 예절교육이 이어졌다. 여가 시간은 스포츠 레저활동으로 보냈다. 주말엔 한국에서는 배운 적이 없는 스노쿨링 스킨다이빙을 즐겼고, 일주일에 두 번씩 승마와 골프 강습도 받았다. 승마는 ‘속보’ 수준이 됐고 뉴질랜드에서 사귄 외국인 친구와는 지금도 이메일을 교환하고 있다.

    늘어나는 꼬마들의 ‘귀족클럽’

    “우리 애는 요람에서부터 다르게”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귀족육아’ ‘귀족교육’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귀족육아 사이트와 멤버십클럽에 가입하는 부부가 늘고 있고, 어린이 명품 브랜드가 우후죽순처럼 수입되고 있다. ‘L(luxury)-제너레이션’들이 ‘신세대 엄마 아빠’로 자리잡으며 ‘노블키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프랑스 이탈리아 등의 명품과 서구 문화에 익숙해 있는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린 시절부터 상류층의 고급문화를 몸에 익히기를 바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차려입은 아이들이 골프와 승마를 즐기는 모습은 이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자녀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부모들의 생각은 어떨까. 아이에게 골프와 승마를 가르치고 있는 박지영씨(35·서울 강남구 일원동)는 “어린 시절 해보지 못한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부모가 많은 것 같다”며 “고급문화를 어릴 때부터 접해야 후에 유학 가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정연씨(36·서울 송파구 가락동)는 “상류층에 걸맞은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도록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은 여유 있는 계층에선 보편적인 현상”이라며 “아이들을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키우고 싶은 것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블키드는 출생부터 다르다. ‘노블키드 키우기’에 ‘목숨 건’ 부모라면 자녀의 미래를 위해 원정출산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살배기 김모군은 국적이 둘이다. 엄마가 지난 1월 미국 LA에서 출산해 미국과 한국 국적을 모두 갖고 있는 것. 미국은 ‘속지(屬地)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출생한 사람은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노블키드들에게 원정출산은 좋은 보험을 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하더라도 미국으로 유학 보내면 ‘학벌’에 흠집이 생기지 않는다. 원정출산 브로커 박모씨(39)는 “군대 갈 나이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고 어차피 유학 보낼 텐데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게 절차나 비용 면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항공료와 출산 전후 거주할 아파트 임대료, 병원비, 출생증명서와 미국 여권 발급료 등을 모두 합치면 3개월 원정출산에 2000만~3000만원이 든다. 이런 높은 비용에도 불구하고 원정출산을 위한 3∼4개월짜리 패키지 여행상품까지 나왔을 정도로 원정출산은 일부 계층에서 ‘인기상품’이 된 지 오래다. 미국 시민권을 자녀에게 ‘선물’하려는 부모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

    노블키드들은 출산 이후 곧바로 건강관리에 들어간다. 부모들은 의학이 발달했을 때를 대비해 신생아의 탯줄과 태반을 수백만원 들여 보관하고, 지능발달에 좋다는 수십만원대 수입 분유과 이유식만 고집한다. 광우병이 염려돼 우유를 먹일 수 없다며 유모를 찾는 부모가 있을 정도다.

    이와 같이 귀족처럼 영아시절을 보낸 노블키드들은 귀족클럽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배워 나간다. 노블키드를 대상으로 한 ‘귀족클럽’이 하나둘씩 생겨나는 것도 이런 트렌드를 바탕으로 한다. 그 종류도 연회비가 200만~300만원인 스포츠클럽에서부터 영어회화클럽, 승마클럽, 유학준비 모임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 업체 대부분은 부모들의 입소문을 통해 노블키드들을 유치하고 있다.

    노블키드클럽에 자녀를 보내고 있는 한 학부모는 “골프와 승마는 다른 곳에서 전문적으로 가르친다”며 “친구들과 놀면서 이다음 사회생활이나 유학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는 뜻에서 아이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애는 요람에서부터 다르게”
    노블키드들의 사교클럽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5월19일 경기도 수원시 율전동 성균관대 체육관. 250여명의 유치원생, 초등학생들과 전이경 유남규 김윤만 임도헌 이진일 선수 등 스포츠 스타들이 참여한 ‘드림팀 페스티벌’이 열렸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몸을 비비며 뛰노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로 체육관이 시끌벅적하다. 치어리더 공연, 다인 다각게임, 장애물 릴레이 등이 차례대로 진행된다. 마치 방송 프로그램의 녹화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이날 행사는 어린이 스포츠클럽 ‘리틀즈’가 마련한 것. 리틀즈는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스포츠 레저활동을 하는 어린이 스포츠클럽이다. 연회비가 350만원인 이곳의 회원 수는 600명. 특별한 이벤트나 해외 행사 때는 별도의 비용을 내야 한다. 소문을 듣고 부산 제주도에서 일요일마다 올라오는 회원이 있을 정도로 귀족교육에 나선 부모들의 입맛에 꼭 맞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곳에선 승마 골프 스킨스쿠버 스노보드를 비롯해 국내에선 생소한 라크로스나 크리켓, 카레이싱도 배울 수 있다. 리틀즈에서 운동을 가르치는 강사들의 대부분이 국가대표 출신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서 각 종목의 개인지도를 받는 것이다. 아이들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양식 풀코스 먹는 법, 요리, 도자기 만들기 등도 배운다.

    “지금까지 사격 스노보드 석궁 스킨다이빙을 배웠어요. 다른 학교 친구들도 만나고 운동선수 형들도 많이 볼 수 있어 너무 좋아요. 하나도 힘들지 않고 재미있어요. 집에 돌아가면 다시 일요일만 기다리게 되거든요. “이날 행사에 참가한 초등학생 최모군(12·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말이다.

    “우리 애는 요람에서부터 다르게”
    부모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라크로스. 라크로스는 미국 동부지방에서 유행하는 스포츠로, 미국 동부지역으로 조기유학을 떠나기 전에 배워두면 미국 아이들과 쉽게 친해져 학교생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란다. 리틀즈 관계자는 자녀를 유학 보낸 부모들에게서 고맙다는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고 했다.

    지난해엔 LA다저스 구장에서 박찬호를 응원하고 박찬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박찬호 캠프’를 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연예인과 함께하는 연예인 캠프도 틈틈이 마련한다. 지금까지 god, JTL, 자두 등의 연예인이 참가했다. 지난 어린이날 회원들은 연강홀을 빌리고 개그맨 이혁재를 초청해 끝말잇기 게임 ‘공포의 쿵쿵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이들이 연예인을 하도 많이 봐서 요즘엔 ‘슈퍼스타’가 아니면 시큰둥해할 정도라고 한다.

    “부모님들 직업이 대개 법조계, 금융계에 종사하거나 의사, 한의사, 개인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비슷한 경제적 수준을 지닌 친구들과 어울리길 바라는 부모들이 많죠. 다양한 스포츠를 배워두면 유학 가서 미국 친구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고 대학 입시에도 도움이 됩니다.” 리틀즈를 운영하는 사이더스 이원형 이사의 말이다.

    이처럼 사교클럽에서 고급레저를 배우는 노블키드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이 조기교육. 노블키드들은 아예 외국인을 불러 영어 과외를 받기도 한다. 영어 하나로는 모자라 일본어나 중국어를 따로 가르치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달 수강료가 100만원대를 오르내리는 영어유치원과 놀이학교도 노블키드들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다. 이들의 부모들은 평범한 어린이 영어학원보다 월등하게 높은 교육비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유치원을 경영하는 신미라씨(40)는 “1999년부터 유아에게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외국어유치원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최근엔 2~3개 언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우리 애는 요람에서부터 다르게”
    최근 들어서는 외국어뿐만 아니라 EQ(감성지수)를 높여준다는 창의력 발달 교육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도움이 된다면 70만원대에 이르는 ‘몬테소리’나 ‘프뢰벨’ 같은 고급 교재도 마다하지 않는다. 창의성 교육을 하는 어린이 놀이교실들은 대부분 독일 등에서 수입한 장난감과 교재를 갖추고 최첨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사들은 모두 이화여대 석사 출신으로 지방대학 강사로도 활동하는 교육 전문가들이에요. 독일의 저명한 교수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그대로 들여왔고 국내에 보급되지 않은 교육 기자재들로 강의실을 꾸몄습니다. 아이들의 창의성은 어린 시절부터 길러줘야 합니다.” ‘메사스콜피아’ 박현순 부원장의 자랑이다. 질문지 검사로 아이들의 창의성을 분석해 1대 1 개별수업, 소그룹(4~5명) 수업을 진행하는 메사의 연구실은 자연채광과 아이들에게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공기정화 기능과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아로마시스템까지 갖춰놓고 있다.

    재산과 능력을 겸비한 ‘신귀족’들의 이런 ‘자녀 키우기’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많을 듯하다. 무엇보다 계층간 위화감은 언제나 그렇듯 커다란 사회 문제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비판과 질시에도 불구하고 일부의 ‘노블 클래스’는 여전히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간다. 어차피 ‘20의 나라’와 ‘80의 나라’는 따로 존재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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