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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유령의 나라

  • < 권택영 / 경희대 교수·영문학 >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유령의 나라

갈 곳 없어 방황하는 유령의 나라
클리블랜드 공항 대합실에 앉아 나를 아파트까지 실어다 줄 친구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박물관에라도 온 듯 구경할 것이 많다.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옷일까, 울긋불긋한 긴 드레스를 입은 흑인 여자, 뚱뚱한 배를 가린 얇은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백인 남자, 흰 면바지에 금방이라도 올이 일어설 것만 같은 부스스한 블라우스를 입은 백인 여자, 말끔한 정장이나 굽 높은 구두가 도리어 부끄러워지는 곳이다.

옷이란 내가 편하면 되는 것이지 남을 위해 입는 것은 아니라는 듯, 한 번 산 옷은 세탁기에 들락날락하며 해어질 때까지 입는다는 듯, 수수한 그들의 차림새는 서울과 사뭇 다르다. 동사무소를 가더라도 옷을 잘 입고 가야 일이 잘 풀린다는 말이 있듯, 우리는 옷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래서 누군가는 대학교수 10년에 남은 것은 양복장에 들어찬 옷이고, 월급 타면 책 사랴 ‘강단복(服)’ 사랴 남는 돈이 없다며 푸념하기도 한다.

잘 먹고 잘 입는 생활… 자연 ‘푸대접’ 언제까지

서울의 한모퉁이에서 어느 날 바지가 가위로 싹둑 자른 듯 올라가면 ‘아, 저것이 올해 유행하는 차림새구나’ 하며 처음에는 낯설어 보여 잔뜩 웅크리던 여자들도 여기저기서 짧은 바지들이 시위를 벌이면 어쩔 수 없이 그 기세에 지고 만다. 그래서 바지통이 좁아졌는가 하면 넓어지고, 넓어졌는가 하면 좁아져 돈이 없으면 끝내 수선집에라도 들르게 마련이다.

공항을 나와 차를 타고 어스름한 저녁 들판을 달린다. 불빛이 하나둘 정답게 반짝인다. 하늘로 뻗은 검은 나무 숲 사이에 작고 예쁜 집들이 서 있고, 창문마다 불빛이 새어나온다. 잘 가꾼 풀밭 가운데 하얀 집, 작은 창문에 반쯤 드리운 꽃무늬 커튼은 나무와 꽃과 풀밭이 없으면 사람도 집도 없다는 듯 한데 어우러져 있다. 눈과 마음을 맑게 씻어주는 풍경,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 때만 평화로운 것은 아닐까.



낮은 등성이 위에 달이 반쯤 걸려 있다. 보름달이다. 혼자 사는 작은 아파트로 몰래 돌아왔는데 달은 나보다 먼저 그곳까지 따라와 창밖에 걸터앉아 있다. 달에 복수라도 하듯 자랑스럽게 이메일을 연다. ‘오늘이 한가위인데 잘 지내시는지…’ 아, 그래서 저 달이 지구의 반대편까지 나를 따라온 거야. 달도 있고 마음도 있는데 술이 없구나.

술잔을 기울일 벗도 없어 나는 애꿎은 ‘장자’를 읽는다. ‘하늘이 나를 덮어주고 나무의 열매들이 관을 장식할 구슬이요, 달빛이 밤을 새우는 등불이고 별들이 밤샘을 해줄 벗들인데 무슨 장례식이 필요한가.’ 화려한 장례식을 준비하는 제자들에게 죽음의 침상에서 장자는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스승님을 땅에 묻지 않으면 솔개가 해치지요.” “네가 땅속에 묻히면 벌레가 먹고 내가 땅 위에 있으면 솔개가 먹는데, 너희들은 왜 벌레에게는 후하고 솔개에게는 그리 인색하냐”. 얼핏 동양의 철학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고 서양의 철학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우리는 잘 입고 잘 먹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집과 주변을 가꾸는 일에는 소홀하다. 아파트 주변의 손바닥만한 풀밭과 나무들은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세워놓은 차들로 숨을 쉬지 못하고, 거리의 간판들은 주위와 상관없이 제 모습만 자랑한다. 아파트 평수나 집안 꾸미는 데는 신경 쓰지만 이웃과의 조화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무도 풀도 그렇게 푸대접을 받는데, 그것이 모두 서양의 철학 때문인가. 그러면 옷은 편하고 수수하게 입지만 집과 주변을 예쁘게 가꾸는 사람들이 왜 서양에 더 많은가. 동과 서를 그렇게 흑과 백으로 가름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서울의 거리와 골목들은 음식 파는 집들로 가득하고, 우리만큼 옷 잘 입는 사람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 그런데 무질서한 간판과 삭막한 콘크리트 밑에 깔린 나무와 흙에 대한 사랑에서는 우리만큼 인색한 나라도 드물다. 태어난 곳도 흙이고 돌아갈 곳도 흙인데, 이러다가는 잘 먹고 잘 입었지만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유령들로 가득 차는 것은 아닌지….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방은 소박하지만 우리의 시선이 멈춰 쉴 곳이 풍요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먹자 나라’ ‘입자 나라’가 아니라 자연이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클리블랜드 공항에서 한 시간 떨어진 마을의 그 작은 방, 창가에 걸터앉아 바라보았던 한가위 달은 엄청나게 컸다.



주간동아 337호 (p100~100)

< 권택영 / 경희대 교수·영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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