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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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비는 군수산업체 눈먼 돈?

막대한 정치헌금 등 로비로 의원들 압박 … 전년보다 440억弗 늘어난 3830억弗 하원 통과

  • <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0-05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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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국방비는 군수산업체 눈먼 돈?
    미국 하원은 5월10일 3830억 달러(한화 약 490조원) 규모의 2003 회계연도 국방예산안을 찬성 359대 반대 58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10월에 시작된 2002 회계연도 예산보다 440억 달러나 늘어난 액수다.

    아직 상원 비준절차가 남아 있지만, 이는 전 세계 국방예산의 40%를 차지하는 규모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전 회원국과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인 러시아, 중국의 국방비를 모두 합쳐도 미 국방비에 못 미친다.

    그런데 국방예산 곳곳에 낭비적인 요소가 숨어 있다는 지적이다. 펜타곤(미 국방부)의 예산안 편성과정과 의원들의 심의과정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으로 끼어 들어간 것이 있다는 얘기다. 의원들이 지역구에 연고가 있는 군수산업체를 챙겨주느라 불필요한 낭비성 예산이 책정됐다는 것. 그 배경에는 지역구 군수산업체들의 강력한 로비가 있다. 미국의 5대 군수산업체(록히드마틴, 보잉, 레이시언, 제너럴다이내믹스, 제너럴일렉트릭)는 막대한 정치헌금과 자신들이 창출하는 일자리를 무기로 의원들을 압박해 왔다.

    심의과정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미국에는 의회와 펜타곤에서만 사용되는 속어(俗語)가 있다. ‘포크’(pork)도 그 가운데 하나다. 돼지고기를 뜻하는 이 단어가 워싱턴 정가에서는 ‘정치적 입김으로 배정된 정부예산’을 뜻한다. 예산편성 과정에서 지역구민을 배려하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최근 하원에서 통과된 국방예산은 납세자들에게 불리한 항목이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눈먼 국방예산 빼먹기’와 관련된 논란이 워싱턴 정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정부예산 낭비를 지키는 시민들’이란 이름의 한 민간단체는 올 회계연도 국방예산에서 낭비성 항목이 모두 1404건에 880억 달러에 이른다고 비판했다.

    보잉 767을 개조한 공중급유기가 대표적 사례. 미 국방부는 200억 달러를 들여 보잉사로부터 공중급유기 100대를 임대할 예정이다. 10년 동안 1대당 2억 달러가 드는 셈이다. 하지만 보잉 767을 국방부가 구입한다면 1대당 1억5000만 달러만 지불하면 된다. 이 항목이 상원에서도 그대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군수산업체에 고용된 로비스트들과 정치자금, 표를 의식한 의원들의 이해관계 탓이다. 이 의원들은 보잉사 공장이 자리한 워싱턴주, 보잉 767을 공중급유기로 개조하는 공장이 있는 캔자스주, 급유기가 배치될 노스다코타주 등 3개 주 출신이다.

    이와 관련, 미 의회의 한 고참 보좌관이 워싱턴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의 백서(white paper)를 발표해 파문이 일고 있다. 문건을 작성한 사람은 뉴멕시코주 출신 페티 도메니시 상원의원(공화당)의 보좌관 윈스로 휠러로 밝혀졌다. 그는 고대 로마의 노예 검투사였던 스파르타쿠스의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했다.

    백서의 제목은 ‘스미스는 죽었다’인데, 1939년 프랑크 카프라가 만든 흑백영화 ‘스미스, 워싱턴에 가다’라는 영화의 제목을 딴 것이다. 영화는 한 양심적인 정치인이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워싱턴 정가의 부패한 정치인들과 맞서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이 백서는 “국가 안보를 우선 챙겨야 할 의원들이 표를 의식한 이기적인 행동으로 국방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결과적으로 미국을 적의 공격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휠러는 특히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메케인 의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메케인은 그동안 “펜타곤의 예산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휠러는 그의 주장은 겉치레일 뿐 실제로는 다른 의원들과 한통속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휠러의 백서를 보도한 미 언론들은 “테러와의 전쟁 와중에 전시 부당이익(war profiteering)을 챙기려는 행위를 조사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국방예산 편성과 관련, 워싱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펜타곤이 첫번째 전장터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그의 예산팀은 늘상 미 군부와 의회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십자군 전사’란 뜻을 지닌 크루세이더(crusader) 대포(大砲) 무기체계 개발과 관련된 최근의 논쟁이 한 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5월8일 육군이 추진해 온 110억 달러 규모의 크루세이더 개발계획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럼스펠드에게 크루세이더는 냉전시절 소련군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덩치만 큰 볼썽사나운 ‘고철 덩어리’일 뿐이다. 백지화 과정에서 럼스펠드는 육군 장성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혀야 했다. 이들은 “크루세이더 개발 계획을 폐기하면 우리 미군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내용의 팩스를 의회로 보내기도 했다.

    군부의 저항을 힘겹게 이겨낸 럼스펠드에겐 또 다른 걸림돌이 기다리고 있다. 크루세이더 제조공장이 들어설 해당 지역구(오클라호마주) 정치인들과의 대결이 그것이다. 오클라호마주 출신의 J.C. 와츠 의원은 하원 공화당협의회 의장으로 만만찮은 인물이다. 상원에는 이 지역구 출신인 제임스 인호프 의원이 버티고 있다. 이들은 럼스펠드를 5월16일 상원군사위로 불러 “크루세이더가 뭐가 문제냐”며 으름장을 놓으면서 “크루세이더를 아주 폐기하진 말고, 한 해 묵혔다가 다시 심의하자”고 국방부에 타협책을 제시했다. 군수업체 로비스트들과 한통속이 된 이 정치인들이 노리는 것은 다름 아닌 ‘포크’다.

    낭비성 국방예산 편성에 대한 언론들의 비판은 날카롭다. 워싱턴포스트는 ‘크루세이더’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현재 의회가 심의하고 있는 국방예산은 냉전시대적 발상으로 엄청나게 팽창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미 의회는 포크(pork)로 미국의 주요 무기체계를 주무르는 얼굴 두꺼운 짓을 그만두고 럼스펠드 장관을 초대해 설명을 듣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에서 군산복합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들은 부시 행정부가 탄생하는 데 막대한 정치헌금을 지원했고, 그 보답으로 미사일방어망(MD) 추진 등을 포함한 팽창예산을 얻었다. 한마디로 부시나 럼스펠드도 군수산업체의 강력한 로비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로비 과녁의 중심에 서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의회의 ‘포크’만 탓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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