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2002.04.25

‘동양의 끼’로 유럽 감성을 노크하다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4-11-01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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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의 끼’로 유럽 감성을 노크하다
    나윤선(32)의 노래를 듣는다. 마치 소프라노의 음성 같은 그녀의 노래는 가벼운 깃털처럼 귓가에 부드럽게 와 닿는다. 빌리 홀리데이나 엘라 피츠제럴드처럼 흑인 여가수의 진득한 목소리에만 익어온 귀에는 좀체 재즈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노래다. 그러나 페퍼민트 향처럼 산뜻한 보컬 속에는 언뜻언뜻 스쳐 지나가는 영혼의 느낌이 있다. 이것은 분명 재즈 가수의 혼이다.

    나윤선은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름이다. ‘이소라의 프로포즈’나 ‘수요예술무대’ 같은 라이브 프로그램에 두어 번 얼굴을 내밀었을 뿐이다. 지난해 나온 첫 음반 ‘리플렉트’(Reflet) 역시 애호가들 사이에서만 알려졌다. 그래서 ‘이소라의 프로포즈’ 후속 무대 ‘윤도현의 러브레터’ 진행자인 윤도현이 “제일 먼저 김조한과 재즈 가수 나윤선을 초대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리듬 앤드 블루스(R&B)의 대표주자 김조한과 동급으로 거론된 이 낯선 이름을 듣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윤선은 프랑스의 재즈 팬들에게는 제법 유명한 가수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재즈 사이트 ‘재즈밸리닷컴’에 들어가 ‘윤선 나’(Youn Sun Nah)라는 이름으로 검색해 보면 나윤선의 스케줄이 화면에 가득 뜬다. 이중에는 재즈 막시악, 마르세유 페스티벌 같은 유명한 재즈 페스티벌도 있다. 올 여름에는 프랑스 레이블인 ‘인 시르쿰 지룸’을 통한 독집 음반이 나온다. 한국 가수가 유럽 무대에서 음반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양의 끼’로 유럽 감성을 노크하다
    “아마 프랑스인도, 미국인이나 일본인도 아닌 동양인이 재즈를 한다는 사실이 프랑스 팬들에게는 오히려 이국적으로 느껴졌나 봐요. 프랑스에서 공연을 할 때마다 찾아와 주시는 고정 팬들이 있는데 이 팬들 중 한 분이 신생 레이블인 ‘인 시르쿰 지룸’에 저를 연결해 주셔서 첫 음반이 나오게 되었어요. 5월에 파리로 가 음악 관계자와 언론에 먼저 음반을 공개할 예정이에요. 그 후에는 여름 내내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할 거고요.”

    보통 음악인들에게는 척 보면 ‘아, 음악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아차리게 되는 느낌이 있다. 소위 말하는 ‘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나윤선에게는 그런 기미가 없다. 너무도 단정하고 침착하다. 묻는 말마다 모범생처럼 또박또박 대답한다. 자유롭게 리듬을 타며 노래하는 재즈 가수의 모습이 전혀 연상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자 얼굴이 빨개지기까지 한다.



    “재즈 가수라고 하지만 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에요. 스케줄이 없을 때는 집에만 있는걸요. 학교 다닐 때는 실제로 모범생이었어요. 그런데 무대에만 서면 제가 생각하기에도 확 달라져요.”

    나윤선의 아버지는 10년 넘게 국립합창단을 지휘한 한양대의 나영수 교수(성악과)고 어머니는 뮤지컬 배우 김미정씨다. 나윤선은 집에서 어머니가 성악 레슨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러나 나윤선 자신은 한 번도 성악을 배운 적이 없다. 부모 역시 음악의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딸에게 음악을 해보라는 권유를 하지 않았다.

    ‘동양의 끼’로 유럽 감성을 노크하다
    가수의 운명은 불문학을 전공하던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찾아왔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주최한 샹송 경연대회에 친구 따라 갔다가 덜컥 1등을 해버렸다. 부상으로 프랑스에 1년간 연수를 다녀왔고 가수 데뷔 제의도 받았다. 하지만 나윤선은 “내키지 않았고 겁도 나서” 이 같은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의 카피라이터로 취직했다.

    그러나 운명이란 게 정말 있기는 한 모양이다. 카피라이터가 적성에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중,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준비하던 김민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기도 무용도 해본 적 없다’며 출연할 수 없다고 버티는 나윤선에게 김민기는 춤도 노래도 가장 적은 역할인 주인공 선녀 역을 맡겼다. 나윤선은 이 같은 사정으로 ‘지하철 1호선’의 초대 주인공이 되었다.

    “뮤지컬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어요. 그래서 ‘지하철 1호선’ 이후 두 작품에 더 출연하고 더 이상 뮤지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아 프랑스에 있는 CIM 재즈스쿨에 입학했지요. 불문과를 나온 탓에 미국보다는 프랑스가 더 익숙했거든요.”

    유럽 최초의 재즈학교인 CIM 재즈스쿨에서 나윤선은 처음으로 발성, 청음 등 음악의 기초를 배웠다.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숫기 없는 동양인 처녀’였던 나윤선은 어느 날 학과 수업에서 노래를 하게 됐고 다른 학생들로부터 ‘팀을 이루어 같이 연주해 보자’는 제의를 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다섯 명으로 구성된 재즈그룹 ‘윤선 나 퀸텟’이 탄생했다.

    한국 출신의 보컬을 필두로 해서 프랑스 이탈리아 이스라엘 아일랜드 등 다양한 나라 출신으로 구성된 ‘윤선 나 퀸텟’은 학교와 재즈클럽, 페스티벌 출연 등으로 곧 바빠졌다. 이 같은 활동 덕으로 나윤선은 CIM 재즈스쿨을 졸업한 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학교 교수가 되었다. 2000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재즈 페스티벌의 출연 요청이 밀려와 한 해의 절반은 유럽에서 보낸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노래할 장소가 적고, 또 제 팀인 ‘윤선 나 퀸텟’이 프랑스에 있기 때문에 그쪽에서의 활동에 더 무게가 실리는 편이에요. 과거의 스탠더드 재즈에 비해 요즘의 재즈는 앙상블의 성격이 강해 보컬도 그룹 악기의 하나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어찌 보면 나윤선은 지독하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도 항상 기회가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 음반과 함께 프랑스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지만 별다른 욕심도 없다. “내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음악”이자 “열 번 연주하면 열 번이 다 다른 음악”인 재즈를 오랫동안 하고 싶은 것이 소망의 전부다. 그녀는 최근에야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친구 중에 ‘넌 꼭 음악을 하게 될 거야’ 하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 말을 저는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어요. 그런데 가수가 되는 것이 결국은 저의 길이었나 봐요.”

    나윤선이 영어로 가사를 쓴 ‘너의 얼굴’(Your Face)이라는 노래가 그 해답을 들려준다. ‘달빛마저 없는 어둠/ 길을 잃고 아무도 없을 때/ 별 하나 없는 하늘에서 너의 얼굴을 보았어/ 너의 빛나는 눈빛이 날 이끌었어.’ ‘너의 얼굴’은 바로 그녀 자신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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