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2002.04.25

질병 덩어리, 그대 이름은 배둘레햄!

뱃살 늘수록 성인병 발병 확률 높아져… 성욕감퇴 등 성기능 장애와도 관계 밀접

  • < 박용우/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입력2004-11-01 16: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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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 덩어리, 그대 이름은 배둘레햄!
    대학 시절 럭비선수로 구릿빛 피부에 단단한 근육질을 자랑하던 채씨(가명·45세). 그러나 이미 중년에 접어든 그에게 열혈청년의 위용은 단지 빛 바랜 사진 속 추억으로만 남았다. 결혼 당시 키 179cm, 체중 77kg이었던 그는 20년이 지난 지금 108kg의 뚱보로 변모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몸의 활력이 부쩍 떨어진 상태. 보다 못한 아내는 건강검진을 받아볼 것을 종용했다.

    검진 결과 피하지방보다 내장지방이 훨씬 많은 고도비만으로 판정됐다. 혈액의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요산 수치도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혈관 두 곳은 정상 지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좁아진 상태였다. 이는 곧 심각한 고혈압(170/110㎜Hg)을 의미하는 것. 그가 늘 호언장담하던 ‘건강’에 금이 가 있다는 얘기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2000년 보고서에 따르면 비만한 사람들은 정상인보다 두 배 이상 만성질환에 시달린다고 한다. 즉 체중이 정상인 사람의 만성질환 발생률이 1.1이라면 여기에 과체중인 경우는 0.2, 비만인 경우는 0.6, 과대 비만증인 경우는 0.9를 더해야 한다는 것. 이 정도 수치라면 담배의 해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 원인은 몸속에 쌓인 지방이 호르몬을 교란시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방이라고 다 같은 지방은 아니다. 뱃살 아래 붙은 피하지방과 복강 안쪽에 차 있는 내장지방은 엄연히 다르다. 피하지방은 단지 미관상 안 좋은 것에 그치지만, 내장지방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뿐 아니라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등 성인병과 직결된다. 흔히 벨트 구멍이 앞으로 하나씩 늘 때마다 당뇨, 혈압, 지방간의 위험도가 각각 3배, 4배, 10배 높아진다는 말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내장지방이 두 배로 증가해도 체중에 큰 변화가 없으면 사람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데 있다. 즉 키와 체중만으로 비만 여부를 진단할 경우 복부비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셈이다. 이때 허리둘레를 엉덩이 둘레로 나눈 수치가 복부비만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남성 0.95, 여성 0.85 이상이면 복부비만으로 간주한다.



    한편 전체 지방의 10~20%를 차지하는 내장지방은 남성에게 더 많은 편이다. 그러므로 똑같이 배가 불룩해도 남성은 훨씬 불리하다. 남는 지방이 주로 배에 집중되는 남성과 달리, 폐경 전 여성은 여성호르몬의 영향으로 남는 지방이 엉덩이와 허벅지, 아랫배, 가슴에 골고루 분포하여 임신과 수유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때문. 그러나 폐경 뒤에는 이런 수혜를 기대할 수 없다.

    질병 덩어리, 그대 이름은 배둘레햄!


    중년의 적 ‘복부비만‘.여성의 복부비만은 대부분 피하지방인데 반해 남성은 주로 내장지방이어서 빼기가 더욱 힘들다. 우리나라 중년층 돌연사의 최대 원인이 단연 심혈관계 질환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동맥경화나 협심증, 심근경색, 뇌졸중 등 일련의 질환은 혈관이 좁아진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는 복부비만이 심각할수록 한층 위험하다. 배에 축적된 내장지방이 혈관을 타고 흐르면서 혈전을 일으키기 때문.

    그리고 간에 축적된 지방은 간이 인슐린을 흡수하는 것을 봉쇄해 인슐린 기능을 떨어뜨리고 혈당량을 높여 당뇨병을 유발한다. 혈당량이 높아지면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자극해 혈중 인슐린 농도를 덩달아 높임으로써 중성지방을 합성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곧 고혈압과 동맥경화로 이어진다.

    그뿐 아니다. 심장이나 기관, 식도 주위, 복부 등 곳곳에 지방이 쌓여 폐의 호흡 면적이 줄어들면서 체내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된다. 게다가 성기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성적 매력이 반감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성욕 감퇴와 발기 부전은 복부비만의 ‘자매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아랫배에 지방이 축적되면 그만큼 음경이 살 속에 묻혀 남성의 자존심을 실추시킨다.

    일단 살을 빼려면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 의학적으로는 한 달에 약 2kg 감량하는 것을 적정선으로 본다. 체지방 1kg이 7700kcal에 해당하므로 결과적으로 하루 250kcal만큼 덜 먹고 250kcal만큼 더 움직여야 한다. 이는 라면 반 그릇만큼의 열량을 덜 섭취하고 25분간 조깅을 하면 된다는 계산이다. 2kg을 빼려면 두 배로 해야 한다. 물론 이 수치는 매일 해야만 의미가 있다.

    복부 비만자는 술과 담배를 멀리해야 한다. 소주 한 병은 밥 두 공기에 해당하는 열량을 낸다. 또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열량도 높다. 맥주 한 잔의 열량이 60kcal인 데 비해 위스키는 무려 110kcal에 이른다. 또 술에 취하면 포만감을 느끼는 뇌중추가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안주를 폭식하게 된다. 게다가 알코올은 영양소의 체내 대사를 막아 지방 형태로 고스란히 축적되도록 부추기기까지 한다.

    흡연 역시 경계 대상 1호. 한 대학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30~50세 남성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복부비만의 기준이 되는 ‘허리·엉덩이 둘레 비율’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흡연은 부신피질호르몬의 분비를 촉진시켜 복강 내 지방 축적에 관여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밤참 먹는 습관도 피해야 한다. 밤에는 효소나 호르몬 분비가 감소해 섭취한 음식은 고스란히 지방으로 축적된다. 또 복부비만을 초래하는 효소인 ‘리포프로테인 리파제’가 활성화되는 것도 큰 몫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남성호르몬(testosterone)과 성장 호르몬(growthhormone) 분비가 줄어드는 것도 비만을 유발하는 요인이다. 이들 호르몬이 감소되면 필연적으로 지방 축적을 불러온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서는 호르몬 보충요법을 실시하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의존한 채 운동을 소홀히 한다면 이 방법도 별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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