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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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숨은 실세 ‘하느님의 사역’

8만5천여 회원 비밀결사 정치력 막강 … 차기 교황 선출 입김 행사 가능성 높아

  • < 안윤기/ 슈투트가르트 통신원 > friedensstifter@hanmail.net

    입력2004-11-01 15: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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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31일, 부활절에 전 세계로 방송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올해 81세로 파킨슨씨병을 앓고 있는 교황은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부활절 행사 이후 바티칸 주위에서는 온갖 소문이 나돌았다. ‘교황이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교황청에 그를 밀어내려는 세력이 있다’ ‘교황 자신도 조기 은퇴를 고려하고 있다’ 등등.

    이러한 차에 교황 다음가는 실력자인 요셉 라칭어 추기경은 독일 ‘디 벨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차기 교황이 제 3세계, 특히 아프리카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켰다. 아직 교황이 서거한 것도 아닌데 바티칸의 중요직책을 맡은 사람이 벌써부터 후계 문제를 발언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바티칸에서는 차기 교황 문제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어 왔다. 그러나 2년 전 독일 주교협의회 회장인 칼 레만이 현 교황의 사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뒤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해 5월 로마에서 열린 사상 최대 규모의 주교단 회의는 ‘어떻게 해야 기독교 복음이 현대사회 속에 더 널리 전파될 수 있을까’라는 공개적 주제와는 달리, 교황의 후계 문제에 대한 논의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이 공의회를 통해 독일 마인츠의 추기경 칼 레만과 이탈리아 밀라노의 대주교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가 유력한 교황 후보로 떠올랐다. 이들 외에도 오스트리아 빈의 추기경인 쇤베르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주교 등이 차기 교황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바티칸 내부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역’(Opus Dei)이라는 단체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1928년 스페인의 성직자 호세 마리아 에스크리바가 설립한 이 단체는 전 세계에 8만5000여명의 회원을 가진 비밀결사 단체다. 이들의 막강한 정치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 단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역’은 ‘위험한 가톨릭 마피아이자 반(反) 마르크시스트 돌격대’로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 남미의 군부 독재자들과 결탁하여 활동했다고 주장한다. 또 이 지역의 무기 거래와 연루된 의혹이 있으며, 암브로시우스 은행 사장이자 ‘하느님의 사역’ 회원인 로베르토 칼비가 1982년 영국 템스 강 다리 밑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암브로시우스 은행 스캔들’ 역시 이 단체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의 1급 스파이인 로버트 한센이 이 단체의 회원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5년 사망한 ‘하느님의 사역’ 창립자 에스크리바는 탄생 100주년인 올해 10월을 전후해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성인 책봉을 받게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에스크리바의 성인 책봉은 가톨릭 교회 역사상 가장 빠른 시성(施聖)이 될 것이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 대부분은 이 단체와 연관되어 있다. 자연히 초보수적 성향을 띤 ‘하느님의 사역’은 그동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보수적 정책 결정의 배경이 돼왔다. 베일에 싸여 있는 이 단체가 차기 교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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