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1

2002.04.25

국내 공항 항공안전 믿을 만한가

악천후 속 선회하다 중국 민항기 추락 … 첨단시설 갖춘 인천만 시정 200m 때 이착륙 가능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4-11-01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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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공항 항공안전 믿을 만한가
    4월15일 김해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중국국제항공공사(CA) 소속 B767 CA-129편 추락사고와 관련, 항공안전에 대한 우려가 새삼스레 증폭되고 있다. 구체적인 사고 원인은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월드컵을 불과 45일 남겨둔 시점에서 대형 항공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국내 공항의 지형 여건, 관제 수준 등에 대한 재점검 필요성이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는 일반인에겐 생소한 항공기 착륙 절차를 추락한 CA-129편의 항로를 따라 들여다보면서, 사고가 발생한 김해공항을 비롯한 국내 7개 국제공항의 항행안전 현황을 살펴보았다.

    전 세계 하늘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각 나라별로 설정한 비행정보구역(FIR)으로 나뉘어 있다. 각국은 자국 비행정보구역에 들어온 항공기를 통제하고, 사고가 발생할 때는 수색과 구조업무를 책임지고 제공하도록 돼 있다. 비행정보구역에 들어온 항공기가 공항에 접근할 때까지 관제를 담당하는 곳은 구역마다 하나씩 설정돼 있는 항로관제소. 우리나라의 항로관제소는 인천 영종도 국제공항 내에 위치해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출발한 문제의 CA-129편 역시 동경 124도 지점에서부터 상하이 FIR를 떠나 인천 항로관제소의 지시를 받았다.

    목적지 공항에 접근하면서 관제는 항로관제소에서 지역별 접근관제소로 넘어간다. 이때 항공기의 고도와 위치, 식별번호 등을 레이더로 인식하고 교신을 통해 이를 다시 확인하는 인수인계 절차를 거친다. 국내에는 모두 14개의 접근관제소가 있으며 김해공항의 경우 김해 접근관제소가 관제를 담당한다.

    민간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7개 국제공항 가운데 김해ㆍ대구ㆍ청주공항을 오가는 항공기는 공군 관제사들이, 인천ㆍ제주공항의 경우엔 건교부 소속 관제사들이 관제를 맡는다. 유사시 인천공항을 대체할 김포공항과 아직 국제선이 취항하지 않는 양양공항의 경우도 국제선 이용시에는 건교부가 관제한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김해공항의 경우에는 공군, 즉 제5전술비행단에서 관제를 담당하고 있다.



    CA-129편 역시 김해 접근관제소에서 기상상태 등에 관한 정보를 브리핑 받았다. 사고 비행기 기종의 착륙 제한치는 구름 높이 250m, 시정 4km지만 당시 기상 상태는 구름 높이 330m, 시정 4.5km로 제한치를 넘었기 때문에 공군은 오전 11시20분경 착륙 허가를 내주었다. 회항 등에 관한 최종 결정은 기장, 부기장 등이 ICAO와 미연방항공국(FAA)이 정한 ‘조종 관련 의사결정 절차’에 따라 내리도록 돼 있다. 회수된 블랙박스에 들어 있는 조종실 내 대화 녹음을 통해 추후 확인되겠지만, 기상 악화에도 불구하고 CA-129편의 착륙을 결정한 것 역시 이에 따랐을 것으로 보인다.

    항공기가 일단 공항 주변 5NM(nautical mile·1NM은 1852m) 내로 들어오면 관제는 각 비행장 관제탑에서 담당하게 된다. 항공기가 공항에 접근함에 따라 관제탑은 착륙에 필요한 여러 정보를 제공한다. 우선 비행각도가 활주로 각도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지, 비행기가 착륙하는 각도는 얼마인지, 활주로와 항공기 간 거리는 얼마인지 등이 핵심 정보. 물론 이런 데이터들은 관제사의 육성이 아니라 장비에 의해 자동적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장비를 통틀어 항행 안전시설이라 부르는데, 이 시설의 성능이 뛰어날수록 항공기는 시계가 안 좋은 상태에서도 계기비행에 따른 정밀 접근착륙이 가능하다. 항공법 시행규칙은 해당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필요한 활주로 가시거리를 기준으로 각 공항의 성능을 구분해 CAT(category) Ⅰ(550m 이상), Ⅱ(350~550m), Ⅲ(350m 미만)으로 나눈다. 이는 ICAO 등 국제항공기구의 기준에 따른 것. 성능이 뛰어난 공항일수록 안개 등의 악천후에도 항공기 이착륙이 가능하다.

    국내 공항 항공안전 믿을 만한가
    그렇다면 국내 국제공항의 항행 안전시설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우선 첨단시설을 자랑하는 인천공항의 경우 시정 200m 이상이면 착륙이 가능한 CAT Ⅲ 수준의 항행 안전시설을 갖췄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김해공항은 CAT Ⅱ. 건교부 자료에 따르면 그나마 착륙 가능 가시거리가 550m인 ‘경계선상의 CAT Ⅱ’다. 김해와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방 국제공항의 경우 CAT Ⅰ수준이어서 청주·대구·양양공항 모두 550m가 넘는 가시거리에서만 항공기가 착륙할 수 있다.

    이러한 항공 안전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건교부와 한국공항공사는 2000~2010년에 항행 안전시설을 확충하기 위한 장기계획을 추진중이다. 총 2665억원 가량의 예산을 투입해 각 공항에 레이더, ILS(계기착륙시설), VOR/DME(전방향표지시설/거리측정시설) 등 총 65세트의 장비를 신설하거나 개량하고 있는 것. 항로관제소의 시스템에도 2005년까지 총 61억원을 투입한 개선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로 이러한 안전 확충 노력은 상당 부분 빛이 바래게 됐다. 더욱이 항공업계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국내 공항의 안전성 문제에 관해 몇 가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사고가 발생한 김해공항의 경우 활주로는 2개. 그중 1개는 군용이어서 민항기들은 나머지 활주로를 사용한다. 문제는 바닷바람을 안으며 이 활주로에 착륙하려면 사고가 발생한 신어산 쪽으로 서클링(선회)하면서 내려앉아야 하는 것. 그러나 이 지역은 산세가 험해 무선 전파를 사용해 착륙을 유도하는 항행 안전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지적이다. 때문에 김해공항 활주로가 조종사의 시계비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단점을 지녔고, 이것이 이번 사고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게 항공업계 전문가들의 조심스러운 분석이다.

    그러나 김포공항 등 국내 16개 공항을 관리ㆍ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의 항공전자처 관계자는 “개활지에 입지한 인천ㆍ제주공항과 달리 다른 국내 국제공항들의 경우 산지를 끼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긴 하지만, 이착륙엔 큰 문제가 없는 편”이라며 “공항에서 정식 착륙 허가를 받고 착륙중 사고가 발생한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공군 전투기들이 무리 없이 뜰 수 있는 정도의 공항이라면 민항기 항공안전에도 지장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한철수 회장은 “기상 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사고의 경우와 같은 방향으로 착륙할 경우, 김해공항은 다른 공항과 달리 국내외 민간항공 조종사들 사이에 착륙하기에 몹시 부담스러운 공항으로 손꼽힌다”며 “국내 제2의 도시 부산을 낀 국제공항으론 적합치 못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동체가 크고 속도가 빠른 항공기들의 경우 이번 사고처럼 항공기가 선회한 뒤 활주로에 착륙하려면 선회 길이가 길어져 조종사로선 상당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그만큼 사고 위험성이 커질 수 있다”며 “장기적 관점에선 개활지를 확보해 공항을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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