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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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 고이즈미 “울고 싶어라”

끝 모를 경제 침체로 국가위상 추락… 중국 기세에 눌리고 미국과의 관계도 삐걱

  • < 이흥환/ 미 KISON 연구원 > hhlee0317@yahoo.co.kr

    입력2004-10-22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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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우외환 고이즈미 “울고 싶어라”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3월21~23일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 온다. 두 번째 방한이다. 월드컵 얘기를 많이 하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알맹이는 북한이다. 두 사람은 북한 문제를 놓고 처지가 비슷하다. 미국 때문이다. 김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가 나누는 악수에는 동병상련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거절한 것은 일본에도 좋을 게 없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1998년 8월처럼 언제 또 대포동 미사일이 일본 머리 위로 날아올지 모른다. 미 CIA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최근 3년 사이에 부쩍 향상되었다고 겁을 주는 판이다.

    북한 간첩선으로 추정한(일본이) 괴선박을 격침시키고, 조총련 돈이 무더기로 북한에 실려가는 사실이 보도된 뒤 일본은 또 북한을 바짝 경계하는 눈치다. 일본인 납치 증언이 나온 뒤로는 더 그렇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의 기본 입장은 ‘현실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현실적인’ 대처란 조심스럽게 그리고 천천히 대응하겠다는 말을 외교적으로 표현한 말일 뿐이다.

    문제는 부시 대통령이다. 그는 북한을 일본이 원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는다. 북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일본의 말에 부시가 귀기울이지 않고 지금처럼 자기 고집대로 나가다가는 일본에게 멱살을 잡힐 수도 있다. 경제가 엉망이고 미국의 핵우산 밑에 있다고는 해도 무턱대고 미국 장단에 춤만 추고 있을 속없는 일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은 부시에게 할 말이 많다. 클린턴 행정부 때 일본은 실현 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어쨌든 미국의 전역 미사일시스템에 동의했다. 외교적인 고려가 깔려 있었다. 그런데 부시가 들어서면서 국가 미사일방어 체제로 방향을 틀어버렸다. 지난해 5월이다. 일본으로서는 대미 전략 의존도가 더 커져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부시는 일본은 젖혀놓은 채 미국의 국가 미사일방어 계획을 물고늘어지는 러시아와 유럽에만 신경 썼다. 중국도 미국을 나무라면서 맞섰다. 부시에게 섭섭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제 목소리를 자제하면서 미국만 쳐다보다 우스운 꼴이 되고 만 것이다.



    일본에서 미사일방어 시스템은 아직 뜨거운 현안이 아니다. 그러나 3년 안에는 이 시스템 참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경제가 여전히 이 상태면 골치 아픈 문제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과 일본의 군사력과 군사 전략은 상호보완 입장을 유지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만큼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최신예 무기를 갖추기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값비싼 무기 대신 중국과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보 작전에는 기꺼이 기여하겠다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다.

    미국의 대(對)테러전 확대도 일본으로서는 그리 달가운 게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 등 다른 나라로 전쟁을 확대할 경우 도쿄와 워싱턴은 부딪칠 게 뻔하다. 일본 의회로서는 힘겨운 일이다.

    9·11 테러사건 직후 일본은 전에 없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10년 전 걸프전 때 미적거린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오키나와 주둔 미군 문제 등으로 미국을 보는 일본 대중의 시각이 곱지 않았던 상황인데도 9월11일 직후 일본 의회는 일본 보급선의 인도양 파견안을 쉽게 통과시켰다. 반대 데모도 많지 않았다.

    일본의 빠른 동작에 미국은 좋아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10여년 전 일본의 모습이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선에 파견된 미국 전함의 보급을 돕기 위한 일본 자위대 보급선의 인도양 파견은 6개월이 시한이다. 미국은 시한을 연장해 주기를 바란다. 큰 이변이 없는 한 미국의 뜻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이 이토록 적극적이다 보니 군사적인 자유재량권을 진작 일본에 줬어야 한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하지만 군사력 확대를 위한 일본 헌법개정 문제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일본은 종전처럼 ‘방패’로 남아 있어야지, 동맹국들과의 긴밀한 군사협력이 목적이라 하더라도 아직 ‘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 안팎의 시각이 이렇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부시 대통령은 일본과의 강력한 군사·외교 관계 구축을 우선 순위에 넣었다. 유럽의 섬나라 영국과 어깨동무를 하듯 아시아 섬나라 일본의 손을 꼭 붙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 일본은 부시의 새로운 아시아 정책의 발판 노릇을 기꺼이 담당하려고 했다. 역시 미국에게 일본은 ‘아시아의 영국’이었다.

    그러나 지난 2월17일 일본을 첫 공식 방문한 부시는 든든한 동반자인 줄로만 여겼던 일본에게서 다른 모습을 보았다. 일본은 신경이 날카로워 있었고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노골적이었고, 과거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분위기도 팽배했다.

    내우외환 고이즈미 “울고 싶어라”
    특히 중국이 일본을 자극한다. 미국과 일본의 국익이 서로 만나는 합류 지점은 중국이다. 중국은 1980년대 일본이 경제력을 자랑하던 때의 보잘것없던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승승장구하고 일본은 10년째 침체의 늪에서 헤맨다. 일본은 또 중국의 강력한 정치 리더십에 주눅 들어 있다. 결국 일본은 미국에 더 밀착한다. 중국과 전략적 대화를 하기 위해 일본은 중국한테 얕잡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러자면 튼튼한 일·미 관계만큼은 중국이 손댈 수 없다는 걸 과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과 미국은 한집살림이 어울린다. 그러나 이젠 미국이 고이즈미를 믿지 못한다. 경제 때문이다. 지난 2월 요미우리신문의 여론 조사에서 고이즈미가 금융개혁을 통해 경제를 회생시킬 가능성을 묻자 응답자 3분의 2가 고개를 저었다. 모건 스탠리는 내년 일본 경제성장률을 1%로 내다보았다. 올해보다도 못한 수치다. 취임 직후 일본을 휩쓴 고이즈미 ‘열풍’은 온데간데없다. 부시도 일본에 갔을 때 이런 분위기를 직접 확인했다. 더구나 고이즈미가 다나카 전 외상을 경질했을 때는 하룻밤 만에 고이즈미 지지도가 23포인트나 급락했다. 미국에게는 아주 나쁜 소식이었다.

    이제 일본의 경제 침체는 일본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전략적 문제가 돼버렸다. 외교적·군사적으로 영향이 자못 크다. 일본의 군사비는 1997년 이래 불변이다. 제자리걸음이다. 해외 원조는 10% 삭감할 계획이다. 이 원조의 대부분은 동아시아에 돌아갈 것이었다.

    무엇보다 심리적인 문제가 크다. 우선 일본 국내 정치인들이 외교나 국제 문제보다 국내 문제로만 눈을 돌린다. 자신이 없다는 소리다. 지난 1월 싱가포르에서 중국이 동남아의 자유무역 문제를 자신 있게 들고 나왔을 때, 고이즈미는 일본과 동남아 지역의 경제 관계를 강조하면서 두리뭉술하게 넘어간 것이 고작이다.

    일본은 이제 더 이상 아시아 경제라는 기러기 떼를 앞장서 이끌어가는 선두 기러기가 아니다. 일본인 스스로가 그렇게 진단한다. 미국도 그래서 일본을 눈여겨본다. 격려도 한다. 하지만 고이즈미에게 거는 기대는 그리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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