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7

2002.03.28

의문사진상규명위 ‘집안 단속’ 급선무

임원들 통제력 상실에 실무진간 갈등 … 정보 누수 잇따르고 조사는 제자리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입력2004-10-22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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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사진상규명위 ‘집안 단속’ 급선무
    ”아무도 안 계십니다. 조사관을 접촉하고 싶으시면 먼저 홍보팀 허락을 받으세요.”

    3월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이마빌딩 2층에 위치한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 조사1과 사무실 문을 들어서는 기자에게 한 조사관이 차갑게 말을 받는다. 평소와 사뭇 다른 냉랭한 분위기다. “지난주 기사 때문에 조사관이 징계 먹게 생겼습니다.” 대답과 함께 조사관은 사무실 문을 닫는다.

    지난주 기사란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받다 숨진 최종길 교수의 자살 가능성이 위원회 내부에서 처음으로 제기됐다”는 3월7일자 동아일보 기사. “최종길 교수에 대해 고문이 이뤄졌다는 당시 중앙정보부 직원의 증언을 확보했으며, (조사팀은) 최교수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는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하고 있다. 이는 최종길 교수가 중정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혀온 그간의 위원회 입장과는 사뭇 다른 내용. 위원회의 황인성 사무국장은 문제의 ‘내부 관계자’인 조사1과 한 간부에 대해 위원회 차원의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문사진상규명위 ‘집안 단속’ 급선무
    위원회의 공식 입장과 다른 의견이 내부 관계자로부터 언론에 흘러나간 것은 위원회 출범 이후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그동안 조사 진행 상황에 대한 30여건의 기사 가운데 위원회의 주도적인 정보공개로 보도가 나간 것은 청송교도소 복역중 숨진 박영두씨 사건 등 서너 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대부분의 언론보도는 비공식 루트를 통해 기사화된 것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2월 공개된 “최교수를 7층 비상계단에서 건물 밖으로 밀었다는 수사관의 보고를 받았다”는 한 중정 간부의 증언에 대한 보도.

    지난해 12월10일 한 석간신문이 수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이를 1면에 보도하자, 다른 언론사들의 항의에 쫓긴 위원회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증언내용을 재확인했다. 위원회의 김형태 상임위원은 “증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신빙성은 아직 확인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각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 증언으로 ‘최종길 교수는 중정에 의해 타살됐다’는 내용은 ‘사실’로 굳어졌다.



    한 파견수사관은 조사 방향을 두고 있을 수 있는 이견이 정제되지 않고 외부로 나간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은 기관에서 파견 나온 수사관들과 시민단체에서 온 민간조사관들의 언론에 대한 태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러나 일부 조사관들이 ‘언론 플레이’를 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조사 방향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고 판단되면 적당한 기자를 골라 언론을 통해 상층부를 압박하는 형태로 말이다.” 이번 ‘자살 가능성’ 보도는 그간의 언론보도로 ‘타살’ 쪽으로 방향이 설정된 데 대한 파견수사관들의 역반응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민간 출신 조사관의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파견수사관들과 민간조사관들은 분명 서로 의욕이 달랐다. 위원회에 주어진 권한 역시 강하지 않다. 조사가 한계에 부딪히면 ‘여기서 더 어쩔 수 없잖아’라고 말하는 파견수사관들과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는 민간조사관들의 의견이 확연히 갈린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조사관들이 언론을 통해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 이 한계를 뚫고 나가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사권 미비와 기무사, 국정원 등 관계기관의 비협조로 난항에 부딪힌 조사를 계속 추진하기 위해 언론에 조사내용을 흘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는 얘기다.

    위원회 내 검찰·경찰·군·정보기관 등에서 파견된 수사관들과 시민사회단체 출신 민간조사관들 사이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 민간조사관은 “애초에 파견수사관들의 선발 자체가 의문사 해결의지 등으로 선발된 게 아니었다”며 “차라리 민간조사관들로만 구성됐다면 조사가 더 수월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80년 5·17 비상계엄 당시 수배업무를 담당했던 사람이 위원회 수사관으로 파견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기대할 수 있는 인적 구성이 아니었다는 것. 이로 인해 위원회 내부 몇몇 팀은 파견수사관들과 민간조사관들의 갈등이 다툼으로 비화돼 조사 업무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까지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가 지금처럼 불거진 주요 이유는 위원회 임원들의 통제력 상실 때문이라는 게 한결같은 지적이다. 언론보도 문제만 해도 조사팀 내부의 이견을 추스르고 진행 방향을 설정한 다음 공식 루트를 통해 정기 기자회견 등의 형태로 정보를 공유했더라면 문제가 없었으리라는 것. 지난해까지 주요 사건의 언론 접촉창구 역할을 담당한 김형태 상임위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자리를 비우자 이 같은 이탈현상은 더욱 가속화됐다.

    위원회 홍보팀의 송정윤씨는 “내부적으로도 수차례 주 1회 공식 브리핑을 정례화하자고 건의했지만 잘 안 됐다”고 말한다. 공조직 출신 직원이 많다 보니 모든 내용을 자기들만 알고 있으려는 성향이 자주 나타났다는 전언이다.

    위원회를 출입하는 한 기자는 차정일 특검팀과 비교해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차특검도 정례 브리핑을 하지 않는다. 아예 법으로 못하게 돼 있다. 기자들은 사무실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아무 말도 안 나오는 것 같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만큼의 정보를 기자들에게 제공한다. 게다가 모든 수사관들에게 철저한 함구령이 내려져 있다. 위원회는 정보도 안 주고 내부 통제도 안 됐다. 그러니 기자들은 개별 수사관에게 쫓아가 사건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위원회의 황인성 사무국장은 “위원회 내부의 혼선으로 상층부가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 주 원인”이라고 인정했다. 이로 인해 위원회의 조사력은 물론 직원 사기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라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악순환이다. 내부 문제로 정보가 통제되지 않고, 그로 인해 다시 내부 문제가 심화되는 식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 ‘집안 단속’ 급선무
    양승규 위원장의 의견 역시 마찬가지다. 후임자 선정 때까지 다시 위원회에 출근하기로 하고 지난 11일부터 사무실에 나온 양위원장은 “최종길 교수 사건 등 몇몇 건은 위원회 내부 문제가 아니었다면 지난 1월에 이미 최종 결론이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 2월28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을 개정해 당초 3월16일까지이던 조사기간을 9월16일까지 6개월 연장했다. 정부와 위원회로서는 무너져내리는 내부 분위기를 일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의를 표명한 바 있는 양승규 위원장의 후임자가 공식적으로 거론되고, 문제 됐던 조사관들의 개별적인 언론접촉과 이로 인한 갈등 역시 해결책이 마련되고 있다고 위원회측은 말한다. 그러나 애초 문제를 야기한 조직위 내부의 갈등이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한부 조직’인 위원회가 각종 난제를 극복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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