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7

2002.03.28

일하고픈 직장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목표관리→관계관리 경영 패러다임 변모 … 재미있게 일하는 사원들 업무능력 배가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0-22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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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고픈 직장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사장님, 허리를 좀더 펴시고요∼. 어깨는 힘을 빼셔야지요. 그게 아니고요. 아이 참, 다시요. 자, 이렇게 앞으로 쭉∼.”

    영국계 기업 한국지사인 한국 스파이렉스 사코 박인순 사장(58)이 이 회사 ‘뽈똥’에 둘러싸여 한수 지도를 받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뽈똥’은 1년 전 결성된 회사 내 볼링동호회의 애칭. 오늘의 강사는 재경부 곽해정 계장(29)이다.

    환갑을 코앞에 둔 박사장이지만 젊은 여직원의 지도 앞에서는 꼼짝없이 ‘차렷 자세’. 박사장은 나이 어린 여직원들 사이에서도 ‘젊은 오빠’로 통한다. 사장으로서의 권위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다. 특히 박사장 스스로 강조하는 회사 내 동호회 활동에서 박사장은 말단 사원을 자처한다.

    이 회사에는 ‘뽈똥’말고도 낚시, 스키, 골프, 래프팅, 해외여행 등 수많은 사내 동호회가 ‘성업중’이다. 동호회에 가입하기만 하면 회사측으로부터 1인당 2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보조비가 나오기 때문에 직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몸만 빌려주면 그만이다.

    그러나 박인순 사장이 정작 인사관리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노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이다. 생산직을 포함한 전 직원이 168명밖에 안 되는 이 작은 회사에는 유난히 사내 교육 프로그램이 많다. 차장급 이상 직원들은 의무적으로 1년에 56시간씩 사내 MBA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부장급 이상 직원이 의무적으로 해외연수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물론, 매주 수요일 아침 직원들이 돌아가며 주제를 정해놓고 스스로 동료들 앞에서 짤막한 강의를 하는 수요강좌는 이번 주로 786회를 맞는다. 15년 넘게 한 주도 거르지 않은 셈.



    박사장은 이런 독특한 경영 방식을 ‘절정 경영’(ecstasy management)이라고 부른다. 사랑을 하는 동안 흥분을 유발해 호르몬 생성이 왕성해지는 것처럼 어떤 일에 몰두하면 몸 전체가 평소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뇌가 유도한다는 것.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팀워크가 단단해지고 경영진과 말단사원 사이의 벽을 허문 결과 업무 효율은 저절로 올라간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업무에 몰입하는 충성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는 것이 박사장의 분석이다.

    상사의 지시에 의해 또는 정해진 목표만 달성하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재미있게’ 일하는 직장도 늘어나고 있다. 하나은행이 지난해부터 벌이고 있는 ‘즐거운 직장 만들기’ 운동도 그런 경우.

    일하고픈 직장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하나은행 올림픽지점 이지현 지점장(37)의 하루는 직원들과의 스탠딩 미팅(standing meeting)으로 시작한다. 회의 탁자에 앉으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딱딱해질 것 같아 일부러 불편한 자세를 택했다. 지점장이 “오늘 우리가 공유해야 할 내용이 뭐죠?” 하면, 그동안은 지점장 얼굴만 쳐다보던 직원들도 이제 스스로 말문을 트게 됐다. 어제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신상품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도 이야기하고 창구에 앉은 동료 직원에게 ‘1만원짜리를 100장 단위로 묶어 넘겨주면 일하기 훨씬 편하겠다’는 사소한 불만도 터놓고 이야기한다. “오늘은 화이트데이인 만큼 고객을 맞을 때 ‘어서 오십시오’보다는 ‘사탕 받으셨어요?’나 ‘사탕 준비하셨어요?’로 해보자”는 즉석 제안 같은 것도 이 자리에서 채택된다. 스탠딩 미팅을 도입한 이후 은행 분위기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지점장과 일반 직원 간에 가로막혀 있던 대화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나니 은행이 순식간에 ‘즐거운 직장’으로 변했다”는 게 이지현 지점장의 말이다. 은행 내 ‘즐거운 직장 만들기’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이지점장은 직원 가족에 대한 배려를 특히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지점에 근무할 때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직원 가족에게 일일이 편지를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요즘 박대리는 회사 출근해서도 몸이 아픈 둘째 녀석을 생각할 때마다 늘 어두운 표정이더군요. 엄마가 직장생활 하느라고 아이를 희생시키는 것 같아 퍽 안타까워하는 것 같고요. 아빠가 조금만 더 신경 써주면 좋을 텐데요….” “따님 미연이는 은행 내에서도 손님들에게 ‘인기캡’입니다. 예쁘고 상냥하고 유머 감각 있고…. 단골손님 중에 며느리 삼고 싶다시는 분도 세 분이나 계세요. 어머님 허락부터 얻어야 할 것 같아 지점장이 편지부터 보냅니다.”

    하나은행에서는 ‘즐거운 직장’을 만들기 위해 ‘안 해도 될 일 안 하기’나 ‘야근 줄이기’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불필요한 업무로 일의 효율만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이 끝난 상사들에게는 일찍 퇴근할 것을 권유하고, 하급자들에게는 상사 눈치보지 말고 당당하게 퇴근하라고 독촉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경영현장의 패러다임은 과거 ‘충성경영 시대’를 풍미했던 목표관리(management by object)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원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하는 관계관리(management by relation) 방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관계관리를 중요시하는 회사일수록 회사 경영에서 신뢰와 칭찬, 유머 등의 가치를 유난히 강조한다. 특히 인사관리 전문가들은 직원들이 회사에 자발적으로 충성하는 회사일수록 사무실 분위기가 즐겁고 유머러스하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하고픈 직장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웃기는 CEO’로 유명한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허버트 켈러 회장의 경영 방침은 한번쯤 음미해 볼 만하다. 켈러 회장이 직접 참여하는 신입사원 면접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개인기’, 즉 유머다. 항공기 승객들을 즐겁게 해줄 만한 유머 한두 가지쯤 갖고 있지 못한 승무원은 비행기를 탈 자격이 없다는 의미. 그래서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타는 승객들은 틀에 박힌 안내방송 대신 이런 방송을 들을 수 있다.

    “기내에서는 금연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흡연하실 분을 위해 흡연석을 날개 위에 준비했습니다. 흡연하실 분들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날개 위에 앉아서 마음껏 흡연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흡연하시면서 감상하실 영화 제목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입니다.”

    켈러 회장의 방침에 따라 그날 탑승 승무원들이 머리를 짜내 만든 안내방송 문구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9·11 테러 이후 미국 내 모든 항공사가 승객 감소로 비명을 지를 때도 이러한 ‘유머 경영’ 에 힘입어 유일하게 승객이 늘었다. 테러 위협에 떨고 있는 승객들에게 유머 이상의 안정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항공사들이 파산 직전으로 내몰리면서 감원 바람으로 홍역을 앓고 있을 때 이 항공사는 올해 초 4000명이나 되는 신규 채용 계획을 내놓아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유머 경영을 통해 감원은커녕 대규모 신규 채용을 함으로써 직원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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