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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재미없는 직장은 떠나라

회사 미련 없는 난 ‘갤러리족’

노동 유연성 확보만큼 직장인 충성심 잃어… 애사심 부족 탓하기 앞서 조직 문제 파악해야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회사 미련 없는 난 ‘갤러리족’

회사 미련 없는 난 ‘갤러리족’
전자통신 분야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부장은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부하직원 한 명이 회사를 그만뒀는데 바로 열흘 전 정기인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한 사람이었다. 승진 축하 회식 때까지도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가 돌연 사표를 냈으니 모두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김부장을 더욱 화나게 한 것은 그 직원이 계획적으로 승진인사에 맞춰 그만뒀다는 사실이었다. “인사발령 전에 그만둘 의사를 밝혔으면 다른 사람이 과장이 됐을 텐데, 본인 입장에서는 경력을 붙이고 나가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기적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골프장에서 선수의 동작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다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박수를 쳐주고, 선수가 이동하면 우르르 따라나서는 갤러리(구경꾼)들. 직장에서도 회사 상황 돌아가는 것을 구경만 하다 떠날 때는 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던지는 갤러리족이 늘고 있다. IMF 위기와 혹독한 구조조정을 경험한 뒤 달라진 풍경이다. 기업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얻은 대신 조직원의 충성심(loyalty)을 잃었다.

실제로 세계적인 인사컨설팅 회사인 타워스페린이 지난해 북미 기업 6000여명의 종업원을 대상으로 이직 의사를 물어본 결과 56%가 이직을 고려중이라고 응답했다. 또60%가 ‘한 직장에 서 지속적으로 근무해야 할 적절한 기간은 없다’고 응답했으며, ‘3~5년이 적절한 근무기간’이라고 답한 사람도 10%에 불과했다.

한국의 상황은 미국보다 훨씬 심각하다. 지난해 타워스페린 한국지사가 국내 150개 기업 154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이직을 고려중인 직원이 71%에 달했다. 또 직장을 옮길 경우 외국계 기업으로 가겠다는 응답이 35%, 국내 대기업은 18%로 최하위였다. 이에 대해 박광서 지사장은 “대기업이 국내 노동시장에서 인재를 독점할 수 있었던 상황이 바뀌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더 이상 우리 기업들은 인재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은 직장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인적자원연구센터의 이영호 박사는 “일부 경영자들의 경우 ‘어차피 인력 과잉 상태에서 일부 직원을 정리하는 것이 조직의 활력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물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고기가 대어인지 잔챙이인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직원들의 충성심이 필요하면 필요할수록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지난 2월, 인사조직 전문 피앤오컨설팅이 홈페이지(www.employeesurvey.co.kr)를 통해 실시한 ‘조직 열정지수 조사’ 결과가 기업 인사 담당자들 사이에서 화제였다. 800여개 기업 12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는 근무환경 만족도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 주인의식 등 세 가지 범주에서 15개의 질문(원 조사는 70항목)을 던졌는데, 결과는 낙제점. 특히 ‘나는 회사에 근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40%) ‘나는 직장으로서 우리 회사를 적극 추천하겠다’(32%) ‘나는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잠재고객에게 적극 추천하겠다’(49%) 등 충성심과 관련된 항목의 점수가 낮았다. 결과가 41~50점이면 조직의 열정이 다소 부족한 상태고, 40점 이하면 열정이 매우 부족하다는 의미.

피앤오컨설팅의 장학수 사장은 “경영자나 관리자들은 직원의 애사심 부족을 탓하기에 앞서 조직의 문제점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급여나 교육연수 등 근무환경 면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인데도 의외로 충성도나 주인의식이 낮은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업일수록 경영진과 관리자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많고, 부서간 업무협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 “나는 잘하는데 다른 사람이 잘못해서 성과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장학수 사장은 “급여와 복리후생 문제가 아니라 직원들이 기업의 비전을 공유하지 못해 열정관리에 실패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인재가 모여들고 일단 들어오면 이직률도 낮으며 성과가 높은 기업은 무엇이 다를까. 그것은 앞서 말한 열정, 혹은 조직 몰입도(engagement)에 달려 있다. 즉 직원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성과를 공정하게 측정해 개인별로 차별화된 보상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급여나 복리후생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2000, 2001년 연속 ‘포천’지 선정 ‘일하기 좋은 기업’ 1위를 차지한 생활용기 제조업체 ‘컨테이너스토어’의 성공비결은 ‘가정 같은 회사’다. 직원들은 “나는 여기서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휴가 때 동료가 그리웠다” “인간답게 인정받고 일할 수 있는 곳이 여기다” “절대로 회사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컴퓨터 의료기기 생산업체인 휴렛팩커드(HP)는 아예 사장과 직원들 간 대화의 벽을 허물기 위해 ‘출입문 없애기’ 정책을 도입했다. 이른바 ‘오픈 도어 폴리시’(open door policy). 이에 따라 세계 각국에 나가 있는 모든 HP 사무실은 사장실 출입문을 따로 둘 수가 없다. 한국 HP의 김모 대리는 “몇 년 전 미국 본사에 출장 갔을 때 당시 류 플랫 회장이 청바지 차림으로 회사 근처 맥도널드에서 혼자 햄버거를 먹고 있는 장면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인재 선발에만 치중하고 구성원들의 충성도 관리에는 소홀했던 한국 기업들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세계적 컨설팅업체 휴잇어소시에이츠가 아시아 10개국의 355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아시아 최고의 직장’으로 뽑힌 삼성SDS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800개나 되는 사내 교육과정이다. 몇 년 전 불어닥친 벤처 열풍으로 하루에도 수십명씩 짐을 싸는 직원들을 바라보기만 했던 경영진이 직원들의 충성심을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미래의 비전을 심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결과다.

삼성SDS는 총 업무 시간의 10%에 해당하는 연간 197시간의 교육 이수를 의무화했다. 인적자원연구센터 신원준 수석 컨설턴트는 “아무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아도 능력 있는 직원들은 몰아치는 업무 탓에 들을 수 없어 오히려 능력이 떨어지고, 시간이 남아도는 직원들만 혜택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서 교육이수를 의무화할 때만 직원들의 교육욕구를 실질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 또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영업점이나 지점망을 갖고 있는 회사들의 경우 충성심은커녕 한 회사 직원이라는 일체감마저 느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직원들을 일단 어떻게 한데 묶어야 할지 고민하는 경영자들에게 전문가들은 직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각종 취미활동을 장려하라고 충고한다.

유럽풍 패밀리 레스토랑 마르쉐를 운영하는 ㈜아모제는 ‘사내 동호회’를 적극 권장한다. 마라톤 클럽 ‘막달리자’의 경우 99년 이후 지금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잠실 둔치를 달리고 있다. 40대 신희호 사장부터 20대의 매장 서비스 직원까지 혼연일체가 되어 땀을 흘리다 보면 한배를 탄 식구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마련. ㈜아모제는 국내에서 주요 마라톤 대회가 열릴 때마다 100명이 넘는 직원들을 출전시키는 것은 물론, 1년에 한 번씩 국제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하고 있다.

회사 미련 없는 난 ‘갤러리족’
이 회사가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은 인력관리를 아예 아웃소싱하는 획기적 방안을 도입하면서부터. 마르쉐는 지난해 5월 세계적 인력관리 컨설팅업체인 왓슨 와이어트(Watson Wyatt)에 인사관리 업무를 통째로 위탁했다. 2개월간의 정밀 진단 후 왓슨 와이어트가 내놓은 카드는 직급 폐지와 직무별 인센티브제 도입, 동호회 활성화, 캐주얼 복장 근무 등. 특히 직급 폐지 방침에 따라 ‘과장님’ ‘주임님’ 등의 호칭이 사라졌다. 아예 나이 차이에 따른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영문 닉네임을 부르거나 나이 많은 직원에게는 ‘님’이나 ‘씨’ 정도로 부르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동료들로부터 ‘세실’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많이 불리는 송혜경씨는 “처음에는 이런 호칭이 어색했지만 1년쯤 지나면서 직원들간의 대화의 벽을 허물어 업무에도 훨씬 효율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해마다 포천의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선정 작업을 주관하고 있는 로버트 레버링이 내세운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은 ‘신뢰경영’이다. 경영자는 근로자들에게 좀더 높은 생산성을, 근로자는 경영자에게 좀더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요구한다. 자칫 화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러한 노사간의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 끝에 존경받는 미국 기업들을 현장 조사해 보니 가장 큰 공통분모가 구성원 내부에 강한 신뢰의 토대가 있더라는 것이다.

직장 내 신뢰는 말은 쉽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중간 관리자는 술자리에서 상사를 ‘씹는’ 게 부하직원을 통솔하는 수단 중 하나이고, 목표 달성을 위해 무리한 것도 밀어붙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가 훌륭한 경영자로 평가받는 전쟁터 같은 조직문화에서 ‘신뢰’란 그림의 떡이다. 이 프로그램을 국내에 도입한 엘테크신뢰경영연구소 이관응 소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관리자로서 리더의 자세가 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더가 종업원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자세를 가지지 않고서는 신뢰경영의 싹이 틀 수 없다.



주간동아 327호 (p28~30)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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