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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賞 수상자 다시 보니 ‘비리 행각’

96년 ‘시민화합’ 부문 ㈜넘버원코리아 임모씨 … 임금 체불·사업자금 떼먹기 등 추문으로 얼룩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시민賞 수상자 다시 보니 ‘비리 행각’

시민賞 수상자 다시 보니 ‘비리 행각’
자랑스러운 시민상’이란 상이 있다. 서울시가 조례를 제정해 1992년부터 매년 상ㆍ하반기 5개 부문 70명 이내의 시민에 수여하는 이 상의 취지는 시정 및 지역사회 발전에 애쓴 숨은 일꾼을 찾아 격려하기 위한 것. 지난해 하반기까지 수상자는 1559명. 상패·메달·상금(100만원)이 주어지고, 사회 저명인사로 구성된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공적을 대외적으로 공인받는 만큼 수상자에겐 영예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상의 권위를 무색케 하는 ‘두 얼굴’의 인물이 있다. 1996년 상반기 ‘시민화합’ 부문 수상자인 임모씨(53). 그는 ‘스캔토크’(scan talk)와 책자가 세트로 된 유아용 교재 ‘패롯토크’(parrot-talkㆍ말하는 앵무새란 뜻)를 제작하는 ㈜넘버원코리아(서울 천호동 소재)의 회장이다.

20여년간 장애인 복지에 헌신(?)

‘도서출판 굿스’란 직영출판사도 거느린 이 회사는 그러나 지난해 12월 직원 대다수가 떠나 사실상 폐업상태나 다름없다. 임대료를 못 내 단전(斷電) 조치까지 취해져 사무실 문도 잠갔다.

직원들은 왜 회사를 떠났을까. 2000년 12월 개최한 사업설명회 때 선보인 이 회사의 사업제안서는 서울에서만 589억원의 매출을 점치는 등 ‘성공 예감’으로 가득했다. 1999년 9월 설립된 이 회사가 학습지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도입한 것이 ‘스캔토크’. 교재에 인쇄된 ‘닷코드’(dot code)를 긁으면 그곳에 저장된 교육정보(예컨대 단어 등)가 소리로 재생되는 리더(reader)기로 일본 올림푸스 옵티컬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특허품이다.



㈜넘버원코리아가 ‘패롯토크’ 상품화를 위해 취업사이트에 채용공고를 내 직원들을 모집한 것은 2000년 10∼11월. 하지만 교재는 발매예정 시점인 지난해 4월보다 한참 늦은 지난해 하반기에 완성됐고, 곧 하자가 발견돼 ‘손질’했으나 시판도 못한 채 창고에 보관돼 있다. 계약을 맺은 지역총판 5∼6곳 역시 계약금을 내고도 제품을 받지 못했다.

“임씨가 경영악화를 이유로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급여의 30% 정도만 지급하고 때론 이마저 미루니 누가 일하고 싶겠나.” 2000년 11월 입사해 9개월간 총무과장으로 일한 L씨(34)는 “지난해 2월 직원 20여명 중 대다수가 빠져나가고, 그 자리를 새 직원들이 메웠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1년 남짓한 동안 30여명의 직원이 떠났다”고 말한다. 임씨의 권유로 자신의 신용카드로 대출받은 1400여만원을 회사 운영자금으로 충당한 L씨는 이자가 불어나자 다시 2000만원을 대환대출해 갚았으나 아직 빚청산을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 직전이다. 물론 무직 상태. 임씨가 써준 ‘이행각서’엔 2001년 6월15일까지 갚겠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L씨는 퇴사 후에도 체불임금은 물론 빌려준 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

시민賞 수상자 다시 보니 ‘비리 행각’
㈜넘버원코리아 이사였던 J씨(49ㆍ여)역시 투자비 1억3000여만원을 날렸다. 이 회사의 전 간부직원인 또 다른 L씨(44)는 “임씨가 무모하게 사업을 벌이고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그가 예전에 경영한 기업에서도 상습적으로 체불했다는 후문을 듣고 체불임금 받기를 포기한 직원도 많다”고 털어놓는다. 그 역시 3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이들이 피해를 본 계기는 뭘까.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지체장애인인 임씨가 20여년간 장애인 복지를 위해 많은 일을 해 ‘시민상’ 등 적잖은 상과 표창을 받았다며 자신의 인간됨을 달변으로 신뢰케 한 데다 면접시 스캔토크의 국내 독점판매권을 ㈜넘버원코리아가 가졌다는 말로 비전을 제시해 이를 믿었다”고 답한다.

시민賞 수상자 다시 보니 ‘비리 행각’
㈜넘버원코리아는 스캔토크의 국내 총판권을 가졌을까. 취재결과 실제 한국내 총판권을 가진 업체는 ㈜양지디지털. 이 회사 관계자는 “1999년 총판권을 따냈다”며 “㈜넘버원코리아와는 2000년 8월 제품공급 계약을 맺었을 뿐 현재 계약기간(1년)이 만료돼 아무런 거래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임씨의 도덕성을 의심할 만한 행위는 또 있다. 인기개그맨을 모델로 내세워 만든 ㈜넘버원코리아의 판촉용 전단엔 ‘최우수 벤처기업 선정’이란 허위문구가 선명하다. 중소기업청 벤처정책과 관계자는 “벤처기업 확인(벤처기업 선정을 의미)을 받지 못했다”고 답한다.

이처럼 문제가 많은데도 ㈜넘버원코리아가 영국의 ISO(국제표준화기구) 9001 인증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의문이다. 이 회사가 인증기관인 CCAS로부터 초기심사를 받고 ISO인증을 받은 건 지난해 4월. 6개월 뒤 이뤄진 1차 사후심사에도 통과해 지금도 인증 효력은 그대로다. 이에 대해 CCAS측은 “초기심사는 대개 문서심사로 이뤄져 인증받기가 비교적 쉽다. 그러나 현재 회사 상태가 그런 줄은 미처 몰랐다.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못하면 인증 무효사유가 되므로 직권심사를 거쳐 취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지난해 8월 임씨를 ‘아이디어 뱅크’로 불리는 사업가이자 사회복지가로 소개한 한 시사월간지도 여태까지 광고비 1000만원을 못 받았다. 이 월간지 관계자는 “임씨가 광고비 지불을 계속 미루다 지난해 11월 연락을 완전히 끊었다”며 “광고비를 못 받은 인쇄매체가 한두 곳이 아니다”고 귀띔한다.

국제기형아예방협회장 직함을 가진 임씨는 같은 장애인들에게도 1993년 협회사업 명목으로 돈을 빌린 뒤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갚지 않았다. 청각장애인 J씨는 팩스를 통한 ‘주간동아’와의 필답 인터뷰에서 ‘이자를 포함해 2000만원을 못 받았다’고 밝혔다.

1991년 창립했다는 국제기형아예방협회의 실체 또한 모호하다.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사단법인도 아니며 재단법인은 더욱 아니다. 상근직원도 없다. 단지 임씨 혼자 소속한 단체로 1993년 기형아 예방 관련 홍보책자를 3만권 가량 찍어내고 기형아 방지 거리캠페인만 개최했을 뿐 이렇다 할 활동실적조차 없다. 그런데도 임씨가 대외적으론 이 직함을 ‘보증수표’처럼 강조해 왔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임씨는 또 1999년 9월 실패로 끝난 하남국제환경박람회 당시 입장권 판매대행권과 휘장 상품화권을 자신이 대표로 있는 또 다른 단체인 ‘기형아 예방을 위한 환경감시단’ 등의 명의로 따낸 뒤 적자를 보자 지난해 12월 하남시장과 부시장을 상대로 청와대, 경기도 등에 진정을 넣는 등 하남시와 마찰을 빚고 있다. 하남시 역시 임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할 예정.

박람회 당시 임씨에게 사업자금 1억6000여만원을 대준 K씨(54)도 제대로 돈을 돌려받지 못해 집을 경매로 날렸다. 그는 초등학생 시절 장애인인 임씨를 업어서 등교시킨 고향 선배다.

추문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기자는 2월1일 임씨와 그 가족에게 수십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임씨는 이날 오후 어렵게 이뤄진 ‘주간동아’와의 통화에서 “여러 사업을 하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지 않느냐. 체불 건은 노동부를 경유해 검찰에 송치됐다. 아직도 미진하다면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또 “스캔토크 총판권을 가졌다고 한 적이 없다. 와전됐다. 설사 그랬더라도 직원들이 입사 전 먼저 총판권 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했으면 됐을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국제기형아예방협회와 관련해서도 “1999년 10월 이후 활동이 뜸할 뿐 단체는 존재한다”며 “빌린 돈은 경제적 여유가 없어 못 갚았다”고 주장했다. “개인재산 10억원을 회사에 투자했다고 스스로 말했는데, 그 돈으로 빚을 갚으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회사를 정상화하려면 자본금엔 손댈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가 창업 전 ‘기업현황’ 자료에서 밝힌 예상 소요자금은 3억원. 때문에 피해자들은 그의 투자금이 1억원도 채 안 된다고 반박한다.

임씨를 ‘자랑스런 시민’으로 추천한 이들은 누구일까. 서울시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임씨가 상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공적조서 등 관련서류는 보존연한이 지나 폐기했다”고 밝혔다.

임씨의 과거 공적을 폄훼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크고 작은 추문으로 얼룩진 그가 자신의 수상 이유인 ‘시민화합’에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주간동아 322호 (p52~54)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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