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2

2002.02.14

돈벼락 맞을 ‘로또복권’이 온다

‘구매자가 번호 선택 당첨금 누적’ 9월 판매 예정 … 사행성 엄청나 ‘태풍의 눈’

  •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4-11-12 16:3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1000억원 복권 당첨 횡재’. 신문의 해외 토픽난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 올 9월부터는 국내에서도 가능하게 됐다(물론 여기에는 정부가 최고 당첨금액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는다). 복권 중에서도 가장 사행성이 강해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던 로또식 온라인 연합복권이 마침내 국내에 도입되기 때문이다.

    돈벼락 맞을 ‘로또복권’이 온다
    로또복권이란 이미 발행된 복권을 수동적으로 구입하던 기존 복권과는 개념부터 다르다. ‘슬립’이라는 일종의 OMR카드에 1~49까지의 숫자 중 자신이 6자리씩 10개를 입력, 이 슬립을 단말기에 넣고 영수증 형태의 복권을 받는다. 매주 한 번씩 진행되는 추첨에서 자신이 선택한 번호가 맞을 경우 당첨금을 받는 형식이다. 숫자를 자신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능동적 복권’인 셈이다.

    로또복권의 특징은 당첨금이 천문학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점. 로또복권은 복권 번호를 구매자가 직접 선택하기 때문에 당첨자가 나올 가능성이 낮으며, 당첨자가 없을 때는 당첨금이 다음 회로 넘어가 누적됨으로써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 사업은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행정자치부, 노동부, 중소기업청, 산림청, 제주도 등 7개 기관이 공동 발행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복권 프로젝트. 주 사업자인 국민은행은 향후 7년간 시장 규모를 5조4000억원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50%는 당첨금으로, 약 38%는 7개 발행기관의 기금과 온라인 판매 수수료 등으로 충당되고, 총 판매액의 11.5%인 약 6000억원은 이 복권의 시스템 구축 및 운영 용역업자에게 배분된다.

    그런 만큼 시스템 사업자 수주전도 치열했다. 그러나 승부는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1월28일 미국의 로또복권 서비스 전문업체 AWI를 끌어들이고 한국통신, 삼성SDS, SK㈜,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 등을 컨소시엄에 참여시킨 ㈜KLS컨소시엄이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KLS는 90년 국내 최초로 즉석식 복권 기술을 도입해 즉석식 복권을 인쇄해 온 전문회사.



    올 1월16일 제안서를 마감한 이번 입찰에 참여한 컨소시엄은 ㈜KLS를 비롯해 총 5개. 두루넷·쌍용정보통신·컴팩이 중심이 된 ULC, 세계 최대 로또복권 서비스업체 지텍을 포함해 국내의 데이콤·파라다이스 등이 참여한 로터리테크, SKC&C·자네트시스템이 가세한 LG전자, 현대정보기술·제일인터넷 등이 참여한 스포츠코 등이었다.

    국민은행은 이번 입찰에서 사업 수행 능력과 시스템 및 기술 부문을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KLS는 컨소시엄을 잘 구성했을 뿐 아니라 95년 AWI와 계약, 소스 코드를 받는 등 독자 기술을 확보해 국부 유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후문.

    물론 수주 전 과정에 뒷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권 실세와 가깝다고 주장하는 한 인사가 이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돌았고, 80년 신군부 집권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구원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정치인이 특정 컨소시엄을 위해 로비스트로 일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러나 국민은행측은 심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자신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번 입찰에 참여했던 업체 관계자들도 대체로 심사에 승복하는 분위기. 입찰에서 탈락한 한 업체 관계자는 “외견상 심사 과정의 공정성이나 투명성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KLS 컨소시엄에 참여한 AWI는 최근 수년 동안 수주에 실패,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거의 없었는데, 심사위원들이 이런 점까지 심사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로또복권 판매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국내 복권시장도 재편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0년 말 현재 로또복권은 세계 복권시장의 44%를 차지하고 있다. 넘버스, 키노 등 이름은 다르지만 로또복권과 비슷한 복권까지 합치면 무려 56%에 달한다. 따라서 로또복권이 나올 경우 국내의 기존 복권시장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돈벼락 맞을 ‘로또복권’이 온다
    이 때문에 스포츠 토토(경기 결과를 맞추는 복표) 발행기관인 문화관광부가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볼 때 로또복권이 도입되면 스포츠 토토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며 그럴 경우 월드컵 경기장 건설자금 회수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0년 말 현재 세계 복권시장 가운데 스포츠 토토 시장 규모는 고작 4%. “로또복권이 시작되면 타이거풀스는 죽는다”는 한국타이거풀스 관계자들의 말이 단순한 엄살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타이거풀스는 스포츠 토토 판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스포츠 토토 복권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세간의 평가는 무색해진 지 오래다. 이 때문에 타이거풀스는 로또복권 시스템 사업자와 어떤 식으로든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KLS측과는 얘기가 가능한 사이”라고 말했다.

    돈벼락 맞을 ‘로또복권’이 온다
    문광부는 타이거풀스의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로또복권 도입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다. 지난해 12월26일 열린 로또복권 관련 당정회의에서 로또복권 도입의 절차적 문제 등을 들어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송용환 문광부 체육정책과장은 “온라인 복권 도입은 단순한 복권 발행 방법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포츠 토토 도입 때처럼 별도 입법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법제처 유권해석을 받았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법제처에서 복권의 동질성이 유지된다면 기존 법에 근거해서도 로또식 온라인 복권을 발행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주장이다.

    국가보훈처가 반발하는 이유는 문광부와 차원이 다르다. 복권 발행 수익금 배분에 불만을 품고 있기 때문. 보훈처 복지사업과 관계자는 “99년 말 시장점유율 기준으로 수익금의 50%를 나누고 나머지 50%는 각 부처에 동일하게 배분한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작년 5월 플러스복권을 처음 발행한 보훈처는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행성 논란과 부처간 이견에도 불구하고 로또복권은 올 9월 일반에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련 부처는 제 밥그릇만 챙길 게 아니라 로또복권의 부작용이나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정부는 정부가 앞장서서 사행성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에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