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0

2002.01.31

“오락거리로 북한 이용, 007 출연 싫다”

  • < 신을진 기자 > happyend@donga.com

    입력2004-11-10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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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락거리로 북한 이용, 007 출연 싫다”
    “007 영화에 출연하시겠습니까?”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NO”라고 말할 수 있는 배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지난 40년간 가장 성공적인 오락영화로 꼽히는 영화 ‘007’ 시리즈는 지금까지 20억명의 관객이 보았고, 흥행 수입만도 30억 달러(약 4조원)를 기록했다. 배우로서는 이런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빛낼 수 있고 동시에 전 세계에 얼굴을 알릴 기회를 얻는 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제의를 뿌리친 우리 배우가 있으니 바로 차인표. 그가 ‘007 시리즈’ 20편에 주요 배역으로 캐스팅됐다가 계약 직전 출연을 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차인표는 최근 자신의 인터넷 팬클럽 사이트 ‘인표사랑’을 통해 “007 제작사 MGM으로부터 북한의 엘리트 장교 ‘문대령’ 역을 제의받았으나 계약 직전 출연을 포기했다”고 공개했다.

    200자 원고지 20여장에 달하는 장문의 이 편지는 처음에 ‘진짜 차인표가 올린 글이 맞느냐’는 공방을 불러일으켰으나, 취재 결과 사실로 판명됐다. 그는 팬들에게 전하는 이 글을 통해 오디션을 통한 캐스팅 과정과 영화사가 제시한 엄청난 계약 조건, 뒤늦게 받아본 대본을 검토하면서 출연을 포기하기까지의 괴로운 심정을 자세히 적고 있었다.

    자신이 제의받은 역할에 대해 “배역만 놓고 볼 때 비록 악당이지만 007을 제외하고 가장 비중 높은 인물이었고 매력적인 역이었다”는 차인표는 “그러나 대본상 북한은 서방세계를 향해 테러를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나라라는 점을 끊임없이 인식시켜 주는 듯했다. 역시 할리우드는 다시 한번 다른 나라의 상황을 자신들의 오락거리로 이용하고 있었다”며 출연을 포기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결국 영화는 만들어지겠지만, 저는 그 영화를 안 볼 생각입니다”는 말로 편지를 마친 차인표. 출연이 성사됐을 경우 개런티로 최고 100만 달러(약 13억원)를 받을 수도 있었던 그가 어떤 고심 끝에 이런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알게 된 팬들은 예전보다 훨씬 더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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