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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엄마도 ‘찡’해 눈물 흐르던걸…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엄마도 ‘찡’해 눈물 흐르던걸…

엄마도 ‘찡’해 눈물 흐르던걸…
얼마 만에 앉아보는 진짜 소극장 무대인가 싶었다. 무릎을 껴안고 앉아야 할 만큼 좁고 옹색한 좌석. 다리를 쭉 펼 수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에 익숙한 몸은 오랜만에 앉아본 좁은 객석에 좀체 적응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보조석까지 가득 찬 객석의 앞과 뒤, 옆에 모두 아이들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도 암담했다.

불이 꺼지고 연극이 시작되면 저 꼬마들은 얼마나 쉴새없이 몸을 비꼬고 끊임없이 바스락대며, 그것도 모자라 “엄마, 언제 끝나?”를 외치며 엄마뿐만 아니라 옆사람까지 피곤하게 할까.

그러나 기우였다. 아이들은 파스텔톤 옷을 입은 난쟁이들이 춤추고, 나쁜 왕비가 커다란 꼭두각시 인형으로 등장하거나, 왕자가 백설공주의 잠을 깨우는 장면에서 손뼉치며 웃었지만 몸을 뒤틀지는 않았다. 오히려 너무도 진지하게 극에 몰두해 괜한 걱정을 했던 것이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극의 중반쯤, 말 못하는 난쟁이 반달이가 백설공주를 향한 사랑을 고백하지 못해 애태우는 장면부터는 어른들이 연극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왕자와 공주가 맺어지고 반달이가 쓸쓸히 세상을 떠나는 장면, 그리고 안개꽃밭에 묻힌 반달이가 공주를 향한 마음을 표현할 때 객석은 소리 죽인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엄마도 ‘찡’해 눈물 흐르던걸…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가 매진 행렬을 계속하고 있다. 별다른 스타가 등장하지도 않고, ‘본격 성인연극’도 아닌 아동극 장르에서 이 같은 매진 행렬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해 5월 유시어터에서 처음 공연된 이 작품은 7월의 첫번째 연장공연부터 매진사례를 시작했다. 7월 이후 예술의전당 학전블루 유시어터 등에서 계속된 연장공연은 지금까지 전회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계속되는 앙코르 요청으로 1월5일 유시어터에서 공연을 속개했지만 2월10일까지의 모든 좌석이 연장공연을 개시한 지 1주일 만에 매진됐다. 극장측은 현재 3월24일까지 다시 공연을 연장한 상태다.



공연이 연장을 거듭하면서 갖가지 에피소드도 생겨났다. 가수 박진영은 이 연극을 보고 영감을 얻어 이기찬의 히트곡 ‘또 한번 사랑은 가고’를 작곡했다. ‘또 한번 사랑은 가고’의 뮤직비디오가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장면들로 구성된 것은 이 같은 사연 때문이다. 또 인터넷 ‘다음 카페’에 생긴 이 연극의 팬클럽은 개설 한 달 만에 회원 3500명을 돌파했다. 연극의 줄거리는 삽화가 곁들여진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줄거리는 동화 ‘백설공주’의 패러디다. 원작 속의 난쟁이들은 극의 전개에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조연에 불과하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이 부분에 의구심을 갖는다. 아름다운 공주에 대해 난쟁이들은 과연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을까?

엄마도 ‘찡’해 눈물 흐르던걸…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일곱 번째 난쟁이 반달이는 백설공주를 처음 볼 때부터 사랑을 느낀다. 반달이는 공주가 갖가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앞장서서 공주를 구해낸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는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잠든 공주를 위해 왕자를 데려오는 것. 반달이는 천신만고 끝에 이웃 나라 왕자를 데려오고 공주는 왕자의 키스에 깨어난다. 동화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왕자와 공주는 결혼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행복하게 살았대요’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말을 못하는 반달이는 남몰래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공주의 결혼에 상심한 반달이는 결국 춤을 보여주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여기서 극은 다시 한번 반전된다. 긴 세월이 흐른 후, 왕비가 된 백설공주는 마법의 거울을 통해 안개꽃밭에 묻힌 반달이를 보게 된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공주를 잊지 못하는 반달이는 마지막으로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끝끝내 보여주지 못했던 춤을 통해.

극단 유의 홈페이지와 ‘반달이 팬클럽’에는 이 연극에 대한 ‘신앙 고백’들이 가득하다. ‘보고 나서 한참 울었다’는 정도의 평은 찬사 축에도 끼지 못한다. ‘미국에서 잠깐 온 애인에게 꼭 이 연극을 보여주고 싶다’며 이미 매진된 티켓을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어린 아이가 클 때까지 반드시 연극을 계속해 달라는 주문도 있다. 매주 연극을 보러 온다는 고정팬, 동호회원 중에는 아예 단체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보러 오는 그룹까지 생겨났다. 이 연극을 연출한 박승걸씨조차 관객의 호응이 높은 이유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다.

엄마도 ‘찡’해 눈물 흐르던걸…
무엇이 어른들로 하여금 이 연극에 이토록 열광케 하는가. 대답은 우선 ‘잘 만들어진 연극’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애들을 애 취급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만들었다”는 연출자의 말처럼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는 아동극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결코 유치하거나 무성의하지 않다. 음악 역시 동요가 아니라 세련된 재즈풍 음악을 사용했다. 그러면서도 배우들의 몸을 이용해 산과 바람, 맹수 등을 표현하고 큰 천으로 호수의 물보라를 만드는 등 다양한 연극적 기법이 돋보였다. 이러한 부분은 영화나 TV 등 영상에 익숙해 있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듯, 객석에서는 박수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만화 스토리 작가 서광현씨가 쓴 줄거리의 참신함도 돋보였다.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쟁이’에서 왕자와 공주는 조연에 불과하다. 불의에 저항하고 공주를 사랑하는 능동적 주체는 모두 난쟁이들이다. 이 같은 패러디는 성인 관객들에게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어른과 아이 모두의 감성에 맞아떨어진다는 점은 이 연극의 커다란 미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힘은 감동에 있다. 반달이가 춤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는 마지막 장면은 한 팬의 말마따나 ‘어마어마하게 아름다웠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기자의 안경도 부옇게 흐려졌다. 아이들은 이토록 큰 사랑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의 손을 잡고 온 엄마가 연신 눈물을 닦던 이유를 아이들은 알까.

사랑은 짧은 삶에서조차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하물며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 사랑이란 사실 불가능하다. 그러나 무대에서라도 그런 사랑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위안이었다. “메말라 쩍쩍 갈라진 가슴에 물을 뿌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한 관객은 말했다.

1시간20분의 공연이 끝난 후, 연신 구부리고 있어야 했던 허리와 다리를 간신히 펴고 일어섰다. 소극장 계단에는 난쟁이를 연기한 배우들이 줄줄이 서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눈이 발그레해진 한 여성관객이 반달이를 연기한 최인경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저 울었어요.”





주간동아 320호 (p78~79)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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