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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정치세력 ‘짝짓기 진통’

진보정당·환경단체 등 연대 필요성 공감 … 시기·당론 등 입장차 커 ‘한살림은 힘들 듯’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대안정치세력 ‘짝짓기 진통’

대안정치세력 ‘짝짓기 진통’
그림 하나. 지난 1월14일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국내 최초의 녹색정당을 표방하는 ‘녹색평화당’(가칭·이하 녹색당)이 창당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80여개국의 해외 녹색당 네트워크와 꾸준히 교류하고 오는 6월 지방선거에 후보를 내겠다”는 계획도 발표됐다. 같은 시각 환경운동연합 녹색자치위원회(이하 환경련 자치위)는 논평을 통해 “녹색평화당을 준비하는 세력들에 대해 상당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정당 건설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희망한다”는 강도 높은 비판 메시지를 전했다.

그림 둘. 1월18일 서울 정동 세실 레스토랑.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와 사회당 원용수 대표가 양당 통합을 논의하기 위한 회담을 가졌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담은 “30분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양당 실무진의 당초 예상과 달리 4시간을 넘기며 장시간 진행됐지만 결과는 사실상 결렬. “통합에 관한 계속적인 논의”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을 위한 공동투쟁” 등의 결론이 제시됐지만 양측은 회담 전 밝혔던 입장 차이를 거의 좁히지 못했다.

민노당·사회당, 인터넷 설전 ‘갈등’

바야흐로 선거의 해. 지방선거와 재·보선, 대선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앞두고 부산한 것은 여의도 국회의원들만은 아니다. 이른바 ‘대안정치세력’을 표방하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나선 환경·진보 운동세력들의 움직임 역시 가파르다.

지지 정당이 없다는 여론층이 과반수를 훨씬 웃도는 정치현실과 올 광역의원 선거부터 도입되는 1인2표식 정당명부제 등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에 고무된 대안정치세력은 크게 민노당-사회당의 진보정당 그룹과 녹색당-환경련 자치위의 환경정치 그룹, 정보화 문명시대의 정당을 표방하고 나선 푸른정치연합 등으로 나뉜다.



이들에게 지난해 하반기부터의 가장 큰 화두는 ‘통합과 연대’. 아직 소수 정당에 그치는 만큼 폭넓은 연대를 통해 힘을 결집해야 한다는 슬로건이다. 그러나 새해 초 이루어진 통합 논의는 서로의 입장 차이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환경정치그룹 내부에서 의견이 가장 맞서는 부분은 ‘지금이 과연 정당을 만드는 데 적절한 시기인가’라는 질문. 이에 대해 부정적인 환경련 자치위의 박진섭 국장은 “지방자치가 토호세력들의 세력 경연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선거에 참여하지만, 역량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녹색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대신 기초 및 광역단체 의원선거에 환경운동연합의 ‘브랜드’로 출마하겠다는 것. 박국장은 “전체 환경운동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몇몇 인사가 주축이 되어 출발한 녹색당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녹색당의 임삼진 추진위원(전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가장 염려되는 것은 녹색당과 환경련 자치위의 입장 차이가 외부에 ‘한국의 대표적 환경단체인 녹색연합과 환경운동연합의 대립’으로 비치는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정치와 운동은 다르다. 왜 운동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의 틀 안에서 정치에 참여하려 하는가. 내가 녹색연합을 사임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치를 하려면 당연히 당이 필요하다.” 녹색당은 이번 지방선거에 광역단체장 3~5명을 포함해 수십개 지역에 기초단체장 후보를 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시기상조론’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더 이상 머뭇거릴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두 그룹의 이 같은 의견 차이로 인해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을 전망. 자치위는 “이제 시작하는 마당에 표류는 당연하다”며 녹색당과의 통합은 고려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반면 녹색당은 “문은 열려 있으니 들어오고 싶다면 얼마든지 들어오라”는 자세. 한 지역에서 두 그룹이 각각 출마시킨 후보가 겹치지 않을 정도의 조정만 가능하리라는 것이 양측의 공통된 전망이다.

진보정당 그룹의 경우 두 당 모두 통합의 필요성 자체는 동의하고 있다. 가장 큰 계기는 지난해 열린 10·25 재·보선. 민노당과 사회당 후보가 각각 출마했지만 지난 4·13 총선 때 민노당이 얻은 지지 수준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성적을 올렸다. 특히 그 과정에서 두 당 선거운동 진영 사이에 있었던 크고 작은 다툼은 양측 모두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민노당 권영길 대표는 “지금도 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일 진영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 같은 판단 아래 민노당은 지난해 9월부터 ‘재창당 추진위’를 만들어 모든 진보진영을 통합하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이미 민주노총, 전국연합, 한총련 등 6개 운동단체가 선거에 함께 참여하기로 합의를 이룬 상태. 민노당 이상현 대변인은 “사회당과의 통합이 남아 있는 가장 큰 현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각론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가장 큰 쟁점은 지난해 말부터 양당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던 ‘조선노동당 논쟁’. 사회당이 내걸고 있는 ‘반(反)조선노동당’이라는 공식 슬로건에 대한 의견 차이다.

논쟁에 불을 댕긴 것은 지난해 11월 민노당의 한 간부가 기관지에 기고한 ‘사회당 동지들에게 드리는 7가지 질문’이라는 글. “진보진영의 통합에 ‘반조선노동당’이라는 사회당의 슬로건은 장애가 될 수밖에 없으며, 사회당은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는 요지였다. 이후 양당 당원들간에 인신공격에 가까운 인터넷 설전이 오가면서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두 당의 지도부가 급히 진화에 나섰고 민노당이 “당의 공식 의견이 아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논쟁 자체는 수면 아래로 잠복했지만, 양측의 입장차에는 변화가 없다. 1월18일의 대표회담에서도 사회당 원용수 대표는 “‘반조선노동당’이라는 부분을 민노당에서 당론으로 확정해 주는 것이 급선무”라는 입장을 시종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노당 권영길 대표는 “일단 통합을 위한 준비 기구를 조직하고 그 안에서 논의하자”는 의견. 이러한 차이는 회담 끝까지 좁혀지지 않았다.

민노당 한 고위관계자는 “사회당의 주장은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고 강하게 몰아붙인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진보진영의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 당원 수나 지구당 수에서 현격하게 열세인 사회당이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비판 역시 제기했다. 이에 대해 사회당 한 관계자는 “민노당은 친북세력인 전국연합이나 한총련과 함께하려 하고 있다. ‘반조선노동당’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한국의 진보정당이 북한에 이용당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더 큰 차원에서의 연대 논의는 여전히 ‘원칙’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환경정치그룹과 진보정당그룹 간의 연대를 추진하는 작업 중 가장 구체적인 것은 민노당이 환경련 자치위에 제안한 ‘공동후보 체제’. 그러나 자치위는 “민노당의 바람일 뿐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자치위 한 관계자는 “환경과 노동을 같은 이미지로 인식하는 시민들이 있을까. 공동후보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다”고 말한다. 사회당-녹색당 등 다른 연대의 움직임은 “원칙적으로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수준일 뿐 구체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다.

‘통큰 단결’에 대한 희망은 시효를 다했다는 시각도 있다. 80년대 민주화운동기에는 진보진영이 모두 힘을 합치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지만 변화된 2000년대 환경에선 의미가 다르다는 것.

지난 1월11일 강원도 고성의 한 콘도에서 ‘2002년 양대 선거 대응책과 대안정치세력의 모색’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 참가한 한 인사는 “섣부른 통합보다 각기 자기 영역에서 실력을 쌓는 것이 급선무”라는 의견에 공감이 갔다며 “통합에 대한 의무감이 대안정치세력에 일종의 족쇄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지도 않을 일로 서로 상처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320호 (p50~51)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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