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8

2002.01.17

“국익 앞에 인권 없다” 막가는 미국

‘부시 독트린’의 유일 잣대는 ‘실리’ … 자성론은 애국주의 물결에 묻혀

  • < 뉴욕 = 김재명 /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입력2004-11-05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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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익 앞에 인권 없다” 막가는 미국
    아프간 전쟁은 미국이 여전히 초강대국임을 보여주었다. 9·11 테러를 당한 뉴욕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2002년 새해를 맞아 맨해튼 중심부 타임스 광장에 모여든 수십만 미국인이 질러댄 기성(奇聲)은 자유란 미명으로 포장된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갈채나 다름없다. 미국은 세계금융을 주무르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21세기에도 세계지배의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자세다. 부시 미 대통령은 2002년이 ‘전쟁의 해’라며 대(對) 테러 전선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그는 50여개국에 세포조직을 둔 것으로 추정되는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을 공격 리스트에 올려놓고 한창 저울질하고 있다.

    21세기의 세계질서를 새로 세우겠다는 부시의 야심은 10년 전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와 본질적으로 같다. 미국 대외정책을 이끄는 냉엄한 논리는 ‘실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정치학자들은 1990년대 이후 미국과 국제사회가 국제분쟁을 풀어온 여러 방정식 중 하나로 이른바 ‘인권 차원의 개입’(humanitarian interve-ntion)을 꼽아왔다. 1993년 소말리아, 95년 보스니아, 99년 코소보, 같은 해의 동티모르 위기 때 국제사회는 인권보호 명목으로 군사개입을 했다. 그러나 94년 르완다에서 50만∼80만명의 비전투원이 학살당해도 클린턴 행정부를 비롯한 유럽 강국들은 개입을 미적거렸다. 보스니아, 코소보, 동티모르에도 늑장 개입했다. 학살의 바람이 한창 불고 난 뒤의 개입이었다.

    “국익 앞에 인권 없다” 막가는 미국
    개입을 외면했거나 늑장 개입한 까닭은 무엇인가. 개입해 봤자 실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93년 미 해병대가 소말리아 군벌 아이디드를 잡으려다 오히려 18명의 사망자를 내자 클린턴은 즉각 철수 결정을 내렸다. 수십명 미군의 생명이 내전과 기근 속에서 죽어가는 수십, 수백만명의 소말리아 사람들보다 소중했기 때문이다. 그로써 인권개입의 가면은 벗겨졌다. 보스니아나 코소보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개입한 데다 공중폭격으로 일관해 현지인의 고통만 더해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인권 차원의 개입’을 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인권보호’를 앞세운 군사적 개입 뒤엔 국익을 챙기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나토(NATO)를 통한 유럽지배 전략, 이것이 미국의 발칸 개입 목적의 핵심이다. ‘인권’은 대외용일 뿐이다.

    발칸에서의 늑장 개입과 대조적으로 91년 걸프전에 미국이 2만명 넘는 지상군을 투입, 신속 개입한 것은 이유가 뻔하다. 침공 이라크군에 억눌린 쿠웨이트의 인권보다는 중동지역 석유자원 때문이다. 아프간전도 마찬가지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의 억눌린 인권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프간전의 키워드는 패권(hegemony)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구실로 미국의 패권을 서남아시아로 확장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즉 미국의 세계지배 패권전략에 빈 라덴이 이슬람 근본주의로 도전한 괘씸죄 탓이다.

    “국익 앞에 인권 없다” 막가는 미국
    동서냉전이 막을 내린 직후 치러진 걸프전에서 승리한 후 아버지 부시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선언했다. 정치적 수사(修辭)야 어떻든 사실상의 뼈대는 미국이 이끄는 세계평화와 질서였다. 글로벌리즘이란 이름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질서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경제적 이데올로기였다(그러면서도 필요하면 슈퍼 301조니 뭐니 해서 무역장벽을 쌓은 것도 미국이었다). 1990년대는 마침 불어온 지속적인 경제호황이 미국의 패권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지난 10년간 미국이 그려온 큰 그림은 유일 패권국이다. 10년 뒤 아들 부시 정권의 정책 기조 역시 부시 독트린이란 이름 아래 세계지배의 패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미사일 방어망(MD) 구축은 군사적 측면에서 패권을 영구화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경제의 내리막길에 접어들 무렵인 지난해, 9ㆍ11 테러와 뒤이은 탄저균 테러로 도전을 받은 모양새다. 왜 공격받았는지에 대한 자성은 없고, 응징을 바라는 목소리만이 CNN, ABC, CBS 등 상업적인 미 언론에 의해 증폭됐다. 자성론을 펴는 일부 양심적인 지성인의 목소리는 미국을 휩쓴 애국주의의 물결 속에 묻혀버렸다.



    부시의 보수강경파 참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의 평화며, 그 논리 또한 지극히 미국 중심적이다. ‘힘을 바탕으로한 대외정책’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프간전 승리로 미국 외교정책의 3대 특징으로 꼽혀온 미국의 예외주의, 우월주의, 일방주의는 부시 정권 강경파들과 헤리티지재단 등 부시 정권을 이론적으로 떠받치는 싱크탱크들로 인해 더욱 힘을 얻었다. 그러나 부시의 패권주의 전략이 지구촌에 평화를 안겨주기보다 그 반대로 흘러간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그런 조짐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빈 라덴에 맞서 아랍권의 협조를 얻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꺼내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카드는 아프간전 승리와 더불어 슬며시 사라졌다. 부시 정권은 MD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기 위해 40년간 지켜온 대륙간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할 태세다. 유럽의 정책입안자들과 평화주의자들은 부시의 그러한 일방적 태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국익 앞에 인권 없다” 막가는 미국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테러전쟁 전선을 넓히려는 것도 패권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패권 행사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이란ㆍ이라크나 북한 등은 미국의 잣대로는 ‘불량국가’(rogue country)다. 따라서 이들이 보유한 대량파괴무기(WMD)는 폐기돼야 한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WMD 보유국이다. 테러전쟁이 막을 올리면서, 그동안 자치권 투쟁을 벌여온 중국의 위구르족이나 러시아 체첸족은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하소연할 길조차 없어졌다. 미국의 전통적 외교 잣대인 ‘인권’은 어느 틈엔지 사라졌다.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독재정권과도 손잡았다. 파키스탄 무샤라프 군정, 우즈베키스탄 카미로프 정권이 그 본보기다. 이 독재자들에겐 9·11 테러가 기회로 작용했다. 인권탄압 국가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 미국이 지배하는 금융기구를 통해 지원받는 우방으로 바뀌었다. 부시 정권의 세계지배 전략에 협조적이면 우방, 그렇지 않은 나라는 ‘불량국가’다.

    전쟁은 미국의 역대 대통령을 존경받게 만든 변수 중 하나다. 에이브러햄 링컨,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그러했다. 그들이 존경받은 이유는 게티즈버그나 노르망디 같은 지상전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고도 미국민을 하나로 묶은 지도력 때문이다. 지금 부시는 전시내각을 이끌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실시된 미국 내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부시에 대한 미국민의 만족도와 기대치는 높다.

    그러나 부시 독트린이 갖는 한계를 떠올리면, 그가 역사에 남을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기억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현재 부시의 업무수행 능력 인정률은 50%를 넘지만, 2004년 재선 캠페인 때까지 그 수치를 유지하리란 보장은 없다. 더구나 업무수행 능력과 지지율은 다르다. 일방주의 패권전략이 당장은 미국민의 입맛에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전략이 끊임없이 지구촌 평화를 위협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에 대한 자성론이 미국 내에서 힘을 얻는다면 부시를 보는 자국민의 눈길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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