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8

2002.01.17

지리산 반달곰은 안녕하신가

방사한 4마리 중 3마리 4개월간 적응 양호 … “올 겨울 나면 자연생존력 충분” 낙관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11-05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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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반달곰은 안녕하신가
    단군신화의 주인공인 반달가슴곰(천연기념물 329호·이하 반달곰)은 한국인에게 매우 각별한 동물이다. 그러나 현재 지리산 일대에만 서식하고, 야생 개체수도 고작 5마리 미만으로 추정된다. 2000년 11월, 17년 만에 지리산 야생 반달곰의 존재가 무인카메라를 통해 확인된 이래 야생 곰이 공식 발견된 적은 없다. 멸종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야생 반달곰 복원을 위해 정부는 1999년 ‘멸종 위기 야생동물 복원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선정했고,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연구원은 국내 반달곰과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지닌 새끼 반달곰 4마리를 지난해 지리산에 방사(放飼)했다. 국내 최초의 희귀 야생동물 복원 시도다. 그로부터 4개월, 방사된 곰들의 근황은 어떨까.

    지리산 반달곰은 안녕하신가
    방사시험 실무책임자인 국립환경연구원(이하 연구원) 야생동물과 김원명 박사(39)는 “곰들은 무사하다”고 답한다. 1월4일 현재 곰들은 동면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 연구원측이 당초 예상한 동면 시점은 지난해 12월 말이었다. 그러나 김박사는 “큰눈이 온 뒤 현지 기온이 더 떨어지면 동면을 하거나 혹 동면을 하지 않더라도 올 봄쯤이면 곰들의 자연 생존력은 충분할 것”으로 낙관한다.

    연구원이 방사시험을 본격 추진한 건 지난해 4월이다. 국내 민간 사육장의 형질이 우수한 중국산 반달곰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국내 곰과 같은 아종(亞種)을 추려낸 뒤 이들이 낳은 새끼 6마리를 선발했다. 모두 지난해 1~2월 태어난 암·수 3쌍으로 체중은 2.5~4.4kg. 이 곰들은 지난해 4월26일부터 전남 보성의 이유장(離乳場)에서 2개월간 이유훈련을 받았다. 연약한 위장이 점차 자연 먹이에 익숙해지도록 적응 훈련을 시킨 것.

    이유식은 맘마밀. 야채식과 개사료, 칡넝쿨, 감잎 등의 먹이식물이 곧 추가됐다. 이유를 담당한 연구원 직원 오영석씨(45)는 “먹이를 줄 때마다 검은색 복면과 장갑을 착용했다”고 밝힌다. 곰은 자신과 달리 털이 무성하지 않은 인간을 곧 알아차리기 때문.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훈련 과정에서 암·수 각 1마리씩이 장염과 담도관폐쇄증으로 폐사한 것. 덩달아 또 다른 암컷 1마리마저 장염을 앓자 다급해진 연구원측은 전문 수의사를 찾아 지리산에서 경기도 포천까지 차량 경광등을 켜고 4시간 반 만에 주파하는 열성을 보였다. 이 곰의 이름은 ‘막내’.

    결국 살아남은 암·수 2쌍만으로 지난해 6월28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지리산국립공원 내에 마련한 1ha 크기의 방사적응장에서 야생환경 적응훈련이 시작됐다. ‘막내’를 비롯, ‘장군’ ‘반돌이’ ‘반순이’로 명명된 새끼곰 4마리는 방사시험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체수다.

    해프닝도 잇따랐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새끼곰들은 지난해 8월 보름 가량 훈련장 안팎을 들락날락했다. 탈출을 막기 위해 고압전류(1초 간격의 단속적 전류)가 흐르도록 한 철책을 타 넘는 대신 철책 밑의 흙을 파낸 뒤 전류가 통하지 않는 틈을 타 밖으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광경이 연구원 관계자들의 눈에 띈 것. 당시 반달곰 복원자료 수집차 러시아에 가 있던 김박사는 귀국 후 이 사실을 전해듣고 아연실색, ‘보안’을 강화했다.

    연구원측이 훈련중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새끼곰과 인간의 차단. 곰의 방어본능이 형성되는 시기는 생후 7개월쯤으로 이때 한 번이라도 인간의 ‘간섭’에 노출되면 곰은 진돗개처럼 평생 인간을 잊지 못하고 야성을 잃게 된다.

    5개월간 훈련을 마친 곰들이 마침내 지리산 형제봉 인근에 방사된 것은 지난해 9월8일. 연구원은 2개 추적팀을 편성해 방사 직후부터 곰들을 추적 조사중이다. 발자국, 배설물 등 곰의 흔적을 매일 찾아다니며 곰의 행동 특성과 휴식 지점을 파악하고, 자연적응력을 체크하는 게 추적팀의 역할. 곰과 추적팀을 잇는 유일한 도구는 곰의 목에 매단 전파발신기로, 크기는 폴더형 휴대폰만하지만 반경 10km 내에선 추적팀이 휴대한 수신기에 신호음을 울려 위치 파악과 동작(이동이나 먹이 섭취) 판별이 가능하다.

    돌발 상황은 또 발생했다. ‘막내’가 ‘사고’를 친 것. 자연적응을 제대로 못해 지난해 10월23일 추적팀에 붙잡힌 ‘막내’는 곧 다시 방사된 후에도 노고단 등산로와 계곡 등지를 돌며 등산객에게 음식을 받아먹다 10월27일 장터목 산장에서 두 번째로 생포됐다. 장염으로 치료받던 당시 인간의 손길에 익숙해진 탓이다. ‘막내’는 결국 방사 50일 만에 ‘하산’했다. ‘막내’는 현재 방사적응장의 인공 동면굴에서 동면 채비중이다. 생포 당시 ‘막내’의 체중은 43kg. 최소한 자연상태에서 먹이를 구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지 않은 셈. 연구원측은 계속 방사중인 나머지 3마리와 ‘막내’의 실패 사례를 오히려 비교연구할 수 있다며 낙담하지 않는 분위기다.

    곰들의 이동 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수컷인 ‘장군’과 ‘반돌이’는 ‘2웅(熊)1조(組)’로 뭉쳐다니는 반면 ‘반순이’는 줄곧 혼자 움직이는 것. ‘2웅1조’는 또 지리산 골짜기 곳곳을 배회하는 데 비해 ‘반순이’는 문수리 일대에 머무르며 거의 이동하지 않는다. 김박사는 “장군과 반돌이는 이유 과정에서 가까워진 사이”라며 “자립성이 강한 반순이가 자연에 더 잘 적응하는 것”이라 덧붙인다. 방사 이후 곰들의 이동거리는 통틀어 8km로 길지는 않은 편이다.

    곰들이 전파발신기 안테나를 물어뜯어 수신 범위가 반경 5km 이내로 줄긴 했지만, 아직 전파 수신엔 지장이 없다. “곰들의 상태도 양호하다”고 김박사는 말한다. 추적팀은 그러나 곰들이 행여 사람을 알아볼까봐 추적을 하더라도 직선거리 100m 이내로는 접근하지 않는다. 더욱이 깊은 산중과 계곡을 샅샅이 뒤지기도 불가능해 주로 배설물을 통해 영양상태를 파악한다. 지난 가을에는 도토리, 다래, 돌배 등을 다량 섭취했다는 게 추적팀의 귀띔.

    연구원은 1월중 곰들이 동면하면 공식적인 추적 활동을 끝낸다. 하지만 방사 준비 단계부터 촬영을 시작해 현재 300여일간의 촬영 필름을 편집중인 SBS가 설 연휴인 오는 2월12~13일 2부작 자연다큐멘터리 ‘자유로 돌아간 반달가슴곰’을 방영키로 해 새끼곰들의 행적은 조만간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방사시험 성공의 판정 기준은 곰들이 무사히 동면을 마치고 오는 3월 초 무리 없이 자연에 적응하는 것. 만일 시험이 성공하면 곰들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 환경담당 행정기관들의 이견으로 아직 국가적 차원의 장기 복원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새끼곰들이 지리산에서 ‘자유’를 오래 구가하긴 힘들 듯하다. 김박사는 “방사시험 연구보고서를 1월 말 환경부에 제출하지만, 방사계획상 시험종료 후엔 곰들을 포획·회수하게 돼 있다”며 “다른 곰의 추가 방사나 구체적인 반달곰 복원사업 추진 여부는 환경부가 판단할 것”이라 밝혔다. 정부의 반달곰 복원 의지가 아쉬운 대목이다.

    현지에서 연구원과의 공조로 곰을 추적중인 우두성 지리산자연생태보존회장(49)은 1월4일 “장군과 반돌이는 피아골 부근에, 반순이는 여전히 문수리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동면굴 속을 들락거리는 듯 수신 전파가 다소 약한 편”이라고 알려왔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른다는 사실은 이른바 ‘동면 징후’가 나타났음을 뜻한다.

    ‘장군’과 ‘반돌이’ ‘반순이’는 10년 내 멸종 가능성이 높다는 지리산 반달곰 ‘복원 신화’의 ‘웅녀’(熊女)가 될 수 있을까. 해답은 너른 품에 어린 반달곰들을 감싸 안은 지리산만이 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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