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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성폭력 사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여학생 8명에게 상습적 성희롱 … 캠퍼스 성폭력에 경종 울리려 ‘제명’ 중징계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서울대 성폭력 사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서울대 성폭력 사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국 최고의 지성이 모인다는 서울대. 이 대학 휴학생 L씨(24)에 대한 제명처분 뉴스가 지난 12월17일 매스컴을 달궜다. ‘제명’은 ‘제적’과 달리 재입학을 불허하는 가장 엄한 중징계. 수능시험을 다시 치러도 같은 대학 입학이 불가능해 학생 신분에선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성폭력 가해자에게 공개 사과문을 작성케 하거나 단과대 차원에서 자퇴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성폭력 사건을 처리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제명처분은 사상 초유의 일. L씨에게 ‘극약처방’이 내려지기까지 서울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징계 사유는 L씨가 학내 활동으로 알게 된 서울대(6명) 및 타 대학(2명) 여학생 8명에게 상습적으로 성희롱 및 성폭력을 했다는 것. 서울대 성희롱ㆍ성폭력상담소는 올해 2∼3월 피해자들의 신고를 접수, 6개월간 진상조사를 거쳐 지난 8월 대학당국에 징계를 요청했다. 서울대는 10월30일 학생징계절차 규정을 마련해 L씨를 11월12일 학생징계위원회(위원장 이현구 부총장)에 회부했고, 12월10일 제명을 확정했다. 제명처분 사실은 사흘 뒤 L씨에게 통지됐다.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지만, 사실 L씨는 지난해 12월11일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가 진보네트워크 ‘참세상 게시판’에 실명을 폭로한 ‘운동사회 성폭력 가해자 명단’(총 16명)에 포함된 인물. 100인위가 같은 해 10월27일부터 11월15일까지 피해사례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L씨의 성폭력 사실도 접수된 것. 서울대 사회과학대 모 학과 97학번으로 4학년 휴학중인 L씨는 1998년 서울대총학생회에서 활동한 학생운동권 출신이다.

100인위는 당초 L씨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학생 5명의 피해 사실을 자체 조사해 인터넷에 적시했으나 곧 피해자 1명을 추가했다. 이후 2명의 피해자가 더 나타났고, 이들은 피해자 모임을 결성해 국내 최초의 대학 내 성폭력상담기관인 서울대 성희롱ㆍ성폭력상담소(2000년 12월 개소)에 피해 사실을 신고함으로써 L씨의 제명을 이끌어냈다.

L씨는 과연 어느 정도의 성폭력을 행사한 것일까. ‘주간동아’가 입수한 L씨 사건 조사위원회(서울대 교수 및 교직원ㆍ외부 전문가 등 5명으로 구성)의 최종 ‘조사보고서’(2001년 8월16일자)에 따르면 L씨는 98년부터 2000년 후반까지 피해자 8명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보고서에 각기 영문 A∼H로 표기된 피해자들의 신고 내용엔 강간미수, 강제추행, 명예훼손, 상습강간, 폭언, 폭행, 협박, 공중모욕, 스토킹, 언어적 성희롱, 강간, 준강간, 강간치상, 여성비하 발언 등 온갖 유형의 성폭력이 망라돼 있으며 피해자들은 L씨를 제적 처리해 줄 것을 원했다.

‘서울대 성폭력 사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보고서는 L씨가 가해 사실 중 일부를 인정하고 피해자 중 몇몇에게 서면으로 사과한 적은 있으나 그와 피해자들의 진술 간 상이점이 많은 반면, 피해자 진술은 공통성과 일치성을 보이고 주변인들의 증언도 피해자 진술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명시했다. 보고서는 아울러 L씨의 행위는 형법상 폭력행위, 강제추행, 명예훼손에 해당하며, ‘서울대 성희롱ㆍ성폭력 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상 성폭력 및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법률전문가 2명의 의견까지 담고 있다.

가해 당사자 L씨는 조사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주간동아’는 12월21일 L씨를 어렵게 만났다. 그는 “100인위와 상담소가 밝힌 가해 사실을 ‘도의적 차원’에선 인정한다. 그러나 (피해자들과의 접촉에) 다소 집요했던 측면은 있지만 강제성은 없었다”며 “조사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사기간 동안 자신은 미리 예정된 어학연수 때문에 자신이 신고된 사실을 알면서도 지난 2월28일 영국에 갈 수밖에 없었고, 조사위원회에 진술서만 e-메일로 보냈을 뿐 직접 출석한 적은 없다는 것. 그는 또 영국에서 1차 조사보고서(6월15일자)를 받아본 뒤 귀국(6월25일) 후인 6월28일 재심의를 요청했으며, 7월6일에야 상담소와 면담이 이뤄졌고 이후 반성문을 제출했으나 피해자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

L씨는 또 “제명처분이 왜 피해자 8명 중 1명의 피해 사실에만 근거해 이뤄졌는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에 대한 근거로 자신이 받은 ‘학생징계처분통지서’를 든다. 실제 통지서의 ‘제명 의결 이유’엔 피해자 8명 중 1명(서울대 학생)에 대한 가해 사실만 적시돼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 학생처 소형석 학생과장은 “조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확인한 결과 L씨의 성폭력이 사실로 판단되고, 서울대생의 본분을 심하게 일탈한 점이 인정돼 징계위가 피해자와 L씨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뒤 학칙에 의거해 제명 처분했다”며 “조사과정의 문제는 상담소측에 문의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서울대 성희롱ㆍ성폭력상담소장 김계현 교수(교육학)는 “L씨 사건을 적법 처리했으며, 대학측으로선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제명’ 이외의 사실에 대해서는 더 해줄 말이 없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상담소측이 당초 ‘무기정학 이상’의 징계를 요청했으므로 징계 수위가 무기정학에 그칠 수 있었는데도 대학당국이 굳이 한 단계 높은 제명을 택한 까닭은 뭘까. ‘해답’은 ‘조사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L씨에 대한) 징계가 학내 구성원과 피해자에게 성희롱ㆍ성폭력 예방과 관련해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으므로 ‘엄중한 징계’가 필요하다며, 만일 L씨가 징계위 결정에 불복할 경우 대학당국이 피해자 법률구조에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도 촉구했다. 캠퍼스 내 성폭력이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방증인 셈이다.

사실 대학 내 성폭력은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 대학에서도 성폭력 사건은 수차례 불거졌다. 때문에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1월 전국 352개 대학(전문대 포함)의 학칙에 성희롱(성폭력) 예방 조항을 명문화할 것을 권고했고, 12월12일 현재 87%인 309개 대학이 관련규정을 마련했다. 상당수 대학은 상담기구 설치도 서두르고 있다.

성폭력은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한 범죄행위다. 따라서 L씨의 항변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취재과정에서 피해자측과의 접촉을 수십 차례 시도했지만, 대다수가 취재협조를 거부한 사실만 봐도 상반된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성폭력 문제의 민감성을 보여준다. 겨우 통화가 이뤄진 피해자 대리인 이모씨(여)는 “피해자 중심으로 성폭력 사건을 풀어나가야 한다. L씨가 ‘프리섹스주의자’임을 강변해도 피해자 모두가 성폭력이라 느낀 이상 L씨의 행위는 명백히 성폭력일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한 가지 간과해서 안 될 것은 그 필요성만큼이나 역할이 막중한 성폭력 상담기구의 객관성 유지 문제다. 서울대 성희롱ㆍ성폭력상담소가 담당한 학내 성폭력 사건 4건 중 1건은 이미 법정 다툼으로 비화됐다. 가해자로 징계받은 인문대 학생 L군(21)의 경우 상담소의 조사과정이 편파적이라며 피해자측과 대자보 공방을 벌이다 맞고소 사태로까지 번진 상태다.

L씨 역시 “제명처분이 가혹하다”며 서울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을 검토중이다. 법정 싸움으로 치닫는다면 재판 결과는 제명처분에 이어 대학 내 성폭력 사건과 관련한 또 하나의 선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주간동아 316호 (p44~45)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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