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3

2001.12.13

정성홍 ← ‘얄궂은 인연’ → 검찰

국정원 기관과장, 검찰 정보 담당 ‘위세’ … 구속 대상을 상전 모시듯 ‘망신’

  • < 특별취재반 >

    입력2004-12-02 13: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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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홍 ← ‘얄궂은 인연’ → 검찰
    김은성 국가정보원 전 2차장이 작년 말 검찰의 ‘진승현 게이트’와 ‘정현준 게이트’ 수사 당시 부하 직원에게 수사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도록 지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면서 국정원 기관과와 정성홍 당시 기관과장(12월1일 검찰에 구속)의 기능과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와 함께 검찰과 정성홍씨의 물고 물린 ‘게임’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씨는 한때 검찰에 대한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기관과장으로 검찰 내에서 상당한 위세를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입장에서는 작년 말 ‘진승현 게이트’ 수사 때 이미 구속했어야 할 사람을 ‘상전’ 모시듯 하다 이제야 사법처리한 셈이 됐으니 체면은 구길 대로 구겨졌다.

    국정원 내에서는 올 초 기관과를 신설, 초대 과장에 정성홍씨를 앉힐 때부터 뒷말이 무성했다. 김은성 당시 2차장이 검찰에 압력을 넣어 ‘진승현 게이트’ 수사를 축소·은폐한 뒤 ‘뒤처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기관과를 신설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던 것. 국정원 관계자는 “올 여름 무렵부터 김은성 전 2차장과 정성홍씨가 ‘진승현 게이트’ 수사 축소·은폐 의혹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전했다.

    김은성 전 차장의 소문난 심복

    김은성 전 차장이 다른 사람도 아닌 정성홍씨를 기관과장으로 발탁한 대목도 이런 의혹을 증폭시켰다. 작년 6월 김은성 2차장의 ‘배려’로 경제2과장이 됐다가 올 초 다시 기관과장으로 전보된 정씨는 국정원 내에서 김은성 2차장의 ‘심복’으로 통했다. 김은성 2차장으로서는 정씨가 누구보다 앞장서 ‘진승현 게이트’를 뒤처리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을 법하다는 게 국정원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정성홍씨는 이미 작년 말 검찰의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수사 당시부터 검찰의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한 대책을 김은성 2차장에게 건의하는 등 김은성 2차장의 심복 역할을 충실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하나가 당시 수사 검사들에 대한 ‘밀착 감시’. 정씨는 김은성 2차장에게 이를 적극 건의했으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없었던 일로 했다는 것.



    기관과 신설은 김은성 2차장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게 국정원 소식통의 전언. 국정원은 다른 정부 부처와 달리 원장이 언제든지 조직의 명칭과 직제를 바꿀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임동원 원장은 대북 업무에만 집중하고 국내 문제는 김은성 당시 2차장에게 일임하다시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런 점에서 기관과 신설은 김은성 2차장의 ‘작품’이었다는 게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김은성 당시 2차장이 기관과 신설 이유로 내세운 것은 업무의 효율화. 국정원은 원래 대공정책실 산하 정치과에서 검찰에 정보관(I.O.)을 파견해 정보를 수집했을 뿐 아니라 대공수사국에서도 I.O.를 파견해 자신들이 수사해 검찰에 이첩한 대공 사건의 수사 상황을 체크해 왔다. 그런데 이들 두 부서의 검찰 출입 I.O.들을 한데 묶어 기관과로 독립시킨 것이다.

    국정원 I.O.의 1차적 관심은 자신이 출입하는 정부부처나 기관 고위관계자의 동향. I.O.들의 보고서는 때로 청와대까지 올라가 인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기 때문에 고위 공무원들은 국정원 I.O.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같은 사정기관인 검찰은 사정이 조금 다르지만 국정원 I.O.는 마음만 먹으면 검찰총장 등 고위 간부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정성홍씨는 이런 위치를 이용해 ‘정현준·진승현 게이트’ 수사 축소 뒤처리를 하는 한편,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고 다녔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증언. 대표적인 케이스가 강원랜드 김광식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 촉구. 정씨는 올 봄 검찰 고위관계자들을 만나 김광식 사장의 ‘비리 혐의’가 담긴 진정서를 들이대며 김사장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고 검찰 관계자는 말한다.

    그러나 정씨의 주문대로 검찰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후문. 혐의가 김사장에 대한 음해성 내용이 대부분이었기 때문. 검찰 관계자들은 당시 진정서가 강원랜드 내부의 파워게임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도 “당시 당 내부에서도 강원랜드 고위 임원들에 대한 지지가 엇갈린 것을 알고 김광식 사장을 밀어내려는 강원랜드 내부 세력들이 이런 일을 일으킨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성홍 ← ‘얄궂은 인연’ → 검찰
    정성홍씨는 또 지난 5월21일 법무장관에 임명됐다가 43시간 만에 사퇴한 안동수 전 장관 사퇴 파문의 한가운데 있었다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귀띔. 당시 안장관의 사퇴 이유는 언론에 의해 부각된 ‘충성 문건’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안장관 아들의 병역비리 연루 혐의가 더 컸다는 게 사정 관계자들의 전언. 동아일보는 당시 안장관 아들의 병역비리 연루 혐의가 인사권자인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은 의혹이 있다고 특종 보도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안장관 사퇴 이후 검찰 주변에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끈질긴 추적 끝에 이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동아일보 보도 이후 내부 취재원을 탐문하던 검찰은 국정원 쪽을 의심했다. 이 정보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정성홍 당시 기관과장을 비롯해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 국정원 관계자는 “정성홍 과장이 제보자는 아니었지만, 정과장이 안장관 문제를 떠들고 다녀 검찰이 의심할 만한 행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성홍씨가 안동수 장관 문제를 물고늘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인사들은 “정성홍 과장이 안동수 장관 추천 과정에 신건 원장이 개입됐을 것으로 지레짐작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종찬 원장 시절 대기발령을 받은 정성홍씨가 신건 당시 2차장의 반대로 살아나는 데 애를 먹었던 사실을 상기하고 취임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원장을 물먹이려는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얘기다.

    정씨는 또 기관과장 시절 김형윤 전 경제단장이 ‘정현준 게이트’에 관련돼 구속된 동방금고 이경자 부회장에게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검찰이 밝혀내고도 이를 수사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정성홍 당시 과장이 검사들을 만나 ‘김형윤 단장을 왜 구속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다닌다는 사실이 수차례 체크된 것으로 안다”면서 “이 때문에 정성홍씨가 김형윤 전 단장의 ‘정현준 게이트’ 관련 혐의를 특종 보도한 동아일보에 흘린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고 밝혔다(김형윤 전 단장과 정성홍 전 과장의 관계에 대해서는 ‘주간동아’ 312호 참조).

    정성홍씨가 ‘진승현 게이트’에 깊이 개입된 것으로 밝혀진 만큼 검찰 수사는 국정원 내에서 정성홍씨를 적극 비호한 것으로 알려진 김은성 전 2차장에게로 향하고 있다. 김은성 전 2차장이 부하 직원을 시켜 ‘진승현 게이트’ 수사 상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김은성 전 2차장을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할 수 있다는 게 검찰 내부의 의견.

    한걸음 더 나아가 김은성 전 2차장이 ‘진승현 게이트’에 ‘직접’ 관련됐다는 혐의가 드러날 경우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올 것은 자명한 일. 국정원 고위 간부가 벤처 비리에 연루됐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이를 은폐하기 위해 국가정보기관을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국정원 쇄신 주장이 힘을 얻어가는 것도 이처럼 고위 간부가 마음만 먹으면 국정원을 농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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