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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약국 다 망하는 것 시간문제”

수만 종 상용의약품 목록 몰라 조제 어려움 … 의약 분업 후 1년 만에 1913곳 폐업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동네약국 다 망하는 것 시간문제”

“동네약국 다 망하는 것 시간문제”
의약분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지만 분업 후에 달라진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병·의원을 막론하고 몇 발짝 옆에는 약국이 있어 분업 전 병원 조제실에서 약을 타기 위해 기다린 것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 이제 약업계에서는 ‘병원 조제실’ 역할 뿐인 문전약국이나 담합약국으로 전락하지 않으면 살아 남을 길이 없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의약분업 후 크게 바뀐 것이 하나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뇌리에서 사라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골목길 어귀에 있던 동네약국이 바로 그것이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의약분업을 시작한 지난해 7월부터 올 7월까지 3010개의 약국이 문을 닫았다. 분업 이전 전국 1만8679개소 약국 중 16%가 셔터를 내린 꼴. 폐업 후 문전약국이나 담합약국으로 재개업한 1097개 약국을 제외하면 시쳇말로 순수하게 망한 동네약국만 1913개소에 달한다.

중복 투약 방지와 의·약사간 담합을 막기 위해 동네약국(단골약국) 활성화를 부르짖은 복지부는 의사들의 실력행사에 밀려 동네약국 생존의 전제 조건인 상용의약품 목록을 의사단체에서 받아내는 데 실패했다. 수만 종에 달하는 의약품 중 각 병·의원이 어떤 약을 쓸 줄 모르는 상황에서, 의약품 목록이 없다면 동네약국의 몰락은 불 보듯 자명한 사실이다.

“동네약국 다 망하는 것 시간문제”
지난해 11월까지 3차례의 ‘의사대란’동안 대한의사협회는 “상용의약품 목록을 내라는 것은 진료권 침해”라며 이를 거부했고, 올 7월 시행된 개정 약사법에 정부가 의사단체의 상용의약품 목록 지정을 의무화했지만 두 달이 다 지나가도록 전국 대도시의 어느 의사회도 의약품 목록을 제시한 곳은 없는 상태다. 의사들의 상용의약품 목록 제시 거부는 곧 동네약국 몰락과 문전·담합약국의 범람으로 이어졌다. 동네약국을 고집하다 망한 약사들의 이야기는 의약분업이 처한 우리 의약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경기도 부천시 W약국=지난 7월1일 의약분업 시행 꼭 1년 만에 문을 닫은 W약국 약사 김모씨(40)는 분업 후 집에 돈을 가져간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지난 1년 동안 진 빚 1억4000만 원뿐. 그가 약국을 경영하면서 빚을 진 것은 분업 후 처방전은 줄어드는데 반해 의약품은 계속 늘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 약국에서 2km쯤 떨어진 곳에 의원 밀집 상가가 있지만 문전약국이 하나둘 생기면서 하루 50장 이상 들어온 처방전이 20장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단골약국이라 찾아 주는 동네분들이 고마웠고, 없는 약품이 있다는 것은 곧 단골 손님 한 명을 잃는 것이었습니다.” 김씨는 분업 시작 직후 약국에 없는 약품이 처방전에 올라오기 시작하자 그 때부터 의약품 종류를 늘리기 시작했다. 먼저 5000만 원을 누나에게 빌려 100종에 지나지 않은 약품 종류를 1000종으로 늘렸다. 그렇게 해도 처방전에 없는 의약품이 나오면 환자를 기다리게 한 뒤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 약국에서 현금 주고 의약품을 사온 후 약을 지어줬다.

그 이후로도 없는 의약품 보충을 계속했고 빚은 늘어만 갔다. 형에게 4000만 원, 마이너스 통장 3000만 원, 집 담보 2000만 원…. 이 돈으로 올 6월까지 그가 사들인 약품 종류는 모두 2080종. 의약분업 시작 전 정부가 상용의약품 목록 가이드 라인으로 제시한 600종의 무려 3배가 넘는 수치자, 당시 의사협회에서 제시한 1000종과 비교해도 2배가 넘었다. 집에 가져가야 할 월 조제료 수입 400만 원도 약품 사는 데 들어갔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환자는 줄었고, 빚에 대한 이자는 늘어가는 상황에서 그는 약국을 폐업하기로 결정했다.

“동네약국의 활성화만이 중복투약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주변에서 ‘바보스럽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동네약국을 고수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그는 “예를 들어 두 가지 이상의 염증 질환을 동시에 앓는 환자가 두 곳 이상의 의원을 다닌다면, 동네약국 한 곳만 이용할 경우 약력관리가 되어 소염제와 항생제를 한 번만 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양쪽 문전약국에서는 두 장의 처방전을 모두 볼 수 없으므로 소염제와 항생제를 중복 투약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고 중복투약의 원리를 설명한다.

약국 문은 닫았지만 김씨에게는 골치 아픈 문제가 남았다. 재고품을 처리할 방법이 없던 것. 약품들은 거의 대부분 한두 알씩밖에 안 썼지만 개봉한 상태기 때문에 제약업체에서 반품 처리를 거부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대학 동문 후배 약사들에게 강제 할당식으로 약품을 맡기기로 한 것.

이제 김씨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자가 한껏 부풀린 가격인 줄 알면서도 그는 요즘 새로 생길 의원 옆 약국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서울시 양천구 A약국=지난 6월 자신이 경영하던 A약국의 문을 닫은 약사 이모씨(여,34)는 요즘 서울 시내 대형 문전약국의 약사로 취직해 샐러리맨의 설움을 톡톡히 맛보고 있다. 월급이 250만 원 가량 되지만 지난 1년 동안 진 빚을 갚으려면 3년은 꼬박 일해야 한다. 하지만 이씨의 가슴 속에 진 응어리는 의약품을 공급하기 위해 진 1억 원의 빚 때문이 아니라 담합을 일삼는 병원과 약국, 그리고 그런 사실을 수수방관하는 관계당국에 대한 분노였다. 그녀의 약국은 종합병원이 밀집한 곳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네약국이다. 분업 전 단골 손님을 꽤 많이 확보하고 있던 이씨는 종합병원 인근이라 ‘분업 후’에 대해서는 걱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9월 병원 주차장 자리와 맞은 편에 대형 문전약국이 들어서면서 그녀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단골 손님들이 와서 ‘우리는 그래도 이 약국을 다닌다’며 격려도 해줬는데 약이 있어야 지어주죠. 어떻게 알고 우리 집에 없는 약만 처방하는지…. 처방전도 알아볼 수가 없었어요.”

이씨는 종합병원 문전약국의 월급 약사들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다. 병원 주차장에 들어선 문전약국은 병원과 ‘특수관계’에 있는 약국이었고, 맞은 편의 약국도 리베이트를 병원측에 제공하기 때문에 그들끼리는 처방의약품 목록을 알 수 있는 것. 이씨는 병원에 찾아가 호소도 해보고, 문전약국을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처방 목록을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그래서 관할 구 보건소에 진정도 넣어봤지만 구청측은 담합 확인이 곤란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녀는 그 이후 집을 담보로 1억 원을 빌려 의약품 종류를 70종에서 1400종으로 늘리고 약국도 수선했다. 하지만 손님이 찾지 않아 결국 약국 문을 닫았다.

△서울시 강동구 M약국=지난 2월 약국을 정리한 최모씨(64)는 지난해 의약분업을 시작하면서 아예 한약 전문약국과 일반의약품 전문약국을 표방하며 병의원 처방전을 처음부터 받지 않은 케이스. 대략 3000만 원을 투자해 한약재와 일반의약품을 100종 이상 늘리고 약국 인테리어도 바꿨다. 최씨가 처방전 받기를 포기한 것은 약국 근처 5km 반경에 병·의원이 전혀 없는 것도 한 이유였지만 근본적으로 의사들이 처방 목록을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판을 크게 하고, 선전을 하면 한약재와 일반의약품 판매가 늘 것이라는 최씨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매달 그의 손에 들어온 돈은 약품 구입비를 제외하고 단돈 100만 원. 월세와 각종 제세 공과금을 제외하고 종업원 월급을 주면 매달 40만 원씩 적자가 났다. 최씨가 전문약국 운영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지난해 실시한 약품실거래가 상환제 때문에 제약업체들이 약품 마진폭을 줄인데다 인근에 한의원이 들어섰기 때문. 최씨는 “그래도 나는 욕심을 내지 않아 다른 동네약사보다 피해가 덜했다”며 “동네약국을 죽이는 의약분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의약분업이 말은 그럴싸하지만 결국 모든 약국이 담합약국이 될 겁니다. 의약분업이란 게 병원 조제실을 밖에 내놓고 약사를 고용한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최씨는 더 이상 약사라는 직업에 미련이 없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주간동아 2001.10.18 305호 (p50~51)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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