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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실패하면서 성공하라

‘홈런왕’은 ‘삼진왕’ 이기도 하다

실패 관리 ‘6계명’… 털어놓고 공유, 분석, 정리해 성공의 디딤돌로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 황일도 기자/shamora@donga.com >

‘홈런왕’은 ‘삼진왕’ 이기도 하다

‘홈런왕’은 ‘삼진왕’ 이기도 하다
실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연재해나 대형 사고처럼 예기치 못한, 그러나 예방조치가 있었다면 대부분 막을 수도 있는 큰 실패가 있고 다른 하나는 연구개발 프로젝트와 같이 어떤 목표를 세웠으나 끝내 이루지 못하는 경우다. 대형 실패는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이 필수적이지만, 후자의 경우 때로는 실패가 권장되기도 한다. 이런 실패는 일어날 수밖에 없고, 경험할수록 좋으며, 성공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날마다 맞닥뜨리는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6개의 원칙으로 풀어보자.

1. 실패가 쌓이면 실력이 된다

9회 말 무사 1루, 점수는 3대 2. 한 점차 리드 상황에서의 구원 등판. 역전당하면 팀은 3연패에 빠지고 2위인 상대팀 요미우리에 2게임 차로 위협받을 판이다. 첫 타자인 6번 기요하라를 가볍게 요리하고 안도한 순간, 7번 모토키의 방망이가 우익수 앞 안타를 만든다. 1사 1, 2루. 위기다. 안타 한 방이면 승부는 뒤집힌다.

다음 타자인 무라타의 타구가 다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우익수 오토가 자로 잰 듯 공을 홈으로 뿌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뛰어드는 2루 주자를 태그하는 포수의 글러브. 한 번은 기량이 뛰어난 팀 동료 덕분에 넘길 수 있었지만 두 번 실수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타석에 들어선 요미우리의 9번 타자 고토. 어떤 공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럴 때는 느낌대로 가는 것이 최선이다. 포수와 무언의 대화가 오간 끝에 던진 공은 예상대로 하늘을 향해 높이 떠올라 내야 플라이가 되었다. 이겼다.

역사에 길이 남은 승부는 아니었지만 선동렬 KBO홍보위원은 1999년 9월1일 도쿄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승부를 잊지 못한다. “위기는 쌓일수록 재산이 되고, 한 번 실수했다고 해서 주저하면 반드시 집니다. 안타를 맞았다고 해서 페이스가 꺾이면 안 되죠. 물론 그 페이스를 만드는 건 수많은 경기를 맛본 ‘짬밥’입니다.”



야구해설가 허구연 위원은 ‘뛰어난 구질, 초구 스트라이크, 배짱과 정신력 등은 기본이겠지만 진짜 위기관리는 무수한 실패의 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결국 최악의 순간 어떤 공을 던질 것인지는 빠른 두뇌회전을 뛰어넘는 영감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 “상대가 누군지, 어떤 구질을 좋아하는지 마스터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경험이 승부를 가릅니다. ‘약점의 흔적’을 민감하게 잡아내는 거죠.” 허위원의 단언이다.

2. 동료와 실패 경험을 나눠라

‘홈런왕’은 ‘삼진왕’ 이기도 하다
흰색 초를 X자형으로 꽂은 케이크를 앞에 두고 팀원들이 빙 둘러서서 실패자의 사례 발표를 듣는다. 그리고 생일축하 노래 가사를 바꿔 ‘실패 그만 합시다’를 노래한 뒤 검은색 콜라 한 잔씩을 돌린다. 지난 95년 처음 시행할 때는 실패의 쓴맛, 조직의 쓴맛, 술의 쓴맛을 봐야 한다며 진짜 쓸개주를 돌리다 검은색 콜라로 바꿨다.

물론 에버랜드에는 실패 파티뿐만 아니라 성공 파티도 있다. 비슷한 형식이지만 흰색 초 대신 오색초를 꽂고 오렌지 주스를 마신다. 노래는 역시 생일축하 노래에 가사만 ‘성공 축하합니다’로 바꾸어 부른다. 월 100만 명이 몰리는 성수기 때(4~6월)는 하루에만 이런 파티가 10건씩 열리기도 했다. 파티 한 건당 예산은 2만5000원. 한 달 평균 30여 건이라고 하면 100만 원도 안 되는 한 달 예산으로 에버랜드가 거둬들이는 효과는 엄청나다.

“자진해서 파티신청하는 게 원칙이지만 아무래도 성공 파티보다 실패 파티는 꺼리죠. 만약 에버랜드 손님만족실에 불만이 접수되었는데도 즉시 실패 파티를 신청하지 않으면 하도록 권유합니다. 신청서가 접수되고 손님만족실 담당자가 개최 여부를 최종 통보하고 케이크를 보냅니다. 파티 실시 후 파티 내용을 담은 사진과 성공이나 실패 내용을 자세히 적은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합니다. 매달 초 성공 실패 사례를 게시판에 게재하죠.” 에버랜드 손님만족실 장주해 실장은 실패 파티가 처벌 개념이 아니라 앞으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말자는 뜻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실패 매뉴얼은 신입사원 교육에 아주 효과적이라는 것.

“입사 1년차들에게서 실패 발생률이 가장 높거든요. 또 6년 간 이런 파티를 진행하다 보니 예보 기능도 갖게 되었습니다. 시기마다 발생하는 문제가 조금씩 다른데 미리 주의하라는 예보를 해주는 거죠. 현재로서는 성공과 실패 파티가 6대 4 정도입니다”(장주해 실장).

‘홈런왕’은 ‘삼진왕’ 이기도 하다
1991년 3월16일 대구에서 수돗물 악취 소동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대구 수원지에 폐수(페놀)가 유입해 악취가 나는 정도로 알려졌으나, 이후 페놀이 발암물질이며 회사측이 무단 방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두산그룹 얼굴상품인 맥주의 매출액이 크게 떨어지고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이것이 두산전자의 치명적 실패, 즉 낙동강 페놀오염 사고다.

사실 두산전자 구미공장 직원들이 누출 사실을 처음 감지했을 때 곧바로 대구지방환경청에 보고하고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혔더라면 단순 산업안전사고로 처리될 일이었다. 하지만 사건 발생 초기 구미공장 직원들은 4일 동안이나 이 사실을 숨겼고, 이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한 후에도 사건을 축소하는 데만 매달렸다. 결과적으로 두산그룹 전체가 부도덕하고 사악한 기업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두산전자 백서).

그러나 실패학의 목적이 실패를 극복하고 실패를 통해 더 큰 성공을 창조하는 것이라면, 두산전자 교훈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페놀사고 이후 두산전자는 피해자와 지역사회에 220억 원을 배상·기부했을 뿐 아니라, 환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94년 당시 환경처가 뽑은 환경관리 모범업체로 선정되었다. 97년에는 ‘두산환경센터’를 설립해 지속적 환경개선 시스템을 구축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제히 수질개선 대책을 마련하는 등 파급효과도 컸다. 초기에 실패를 부정했기 때문에 생긴 위기는 실패를 인정하고 실패를 살려주는 시스템으로 발전하여 결국 기업과 지역사회 모두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갔다.

4. 아픈 과거도 과거, 정리해 기록으로 남겨라

㈜벽산의 김건주 전략팀장은 벽산 구조조정 이야기 ‘누가 그래? 우리회사 망한다고!’(라이트 북닷컴 펴냄)를 출간하기로 했을 때 솔직히 사원들 사이에서는 “내놓고 말하기 부끄럽다” “잘한 게 뭐 있다고” 하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픈 과거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비슷한 입장에 있는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며 사원들을 설득했다. 그 결과 지난 7월 말 김재우 사장과 전 직원이 함께 쓴 벽산의 회생전략 ‘누가 그래? 우리회사 망한다고!’를 출간했다.

“구조조정이 겪어보면 아프긴 한데 가시적으로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잘 모르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 속에 묻히는 것이죠. 그런데 사원들이 자기가 겪은 구조조정 이야기를 쓰면서 비로소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죠. 회사 입장에서는 모르던 구조조정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였고요.”(김건주 팀장)

‘누가 그래? 우리회사 망한다고!’의 내용은 제목만큼이나 솔직하다. 벽산그룹 성장의 견인차였고 주력사업인 석고보드를 매각해야만 했을 때 처절한 심정, 인원 감축으로 사원들 간 갈등 등 구조조정기 회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책이 나온 후 ㈜ 벽산은 구조조정 이후 뒤숭숭하던 분위기에서 “우리가 쓸데없이 고생한 것은 아니었다”는 쪽으로 바뀌었다. 또 다른 소득이라면 사원들이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책에서 석고보드 매각과정을 자세히 기술한 김건주 팀장은 “당시 수첩에 간단히 메모한 것들이 책을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면서 실패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기업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홈런왕’은 ‘삼진왕’ 이기도 하다
지난 99년 9월18일 일어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실 폭발사고. 석·박사과정 연구원 3명이 목숨을 잃은데다 사고현장 바로 옆 건물에는 방사성 동위원소를 보관한 납상자가 있어 대재앙으로 번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 바 있다. 당시 사고는 ‘운이 없어’ 일어난 우발적 사고라기보다는 학생·교수·대학당국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인재’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연구원들은 모두 부족한 연구비와 바쁜 연구일정에 쫓깁니다. 그러다 보니 손가락을 다치거나 유독 가스를 마시는 등의 작은 사고는 일상생활이나 다름없죠.” 지난해 2월부터 ‘연구자와 지역사회의 안전을 위한 실험실안전운동’을 전개한 노윤호씨(당시 서울대 공대 재료공학부 대학원 2년)의 말이다. 노씨는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서울대 실험실 안전대책위원회와 함께 실험실 사고와 관련된 설문조사, 안전규정 및 사고보상보험 제도화 등의 사업을 벌여 나갔다.

특히 노윤호씨는 안전사고에 따른 피해를 연구자 개인이나 개별 실험실에서 감수하던 방식을 개선해 대학연구비에 의무적으로 안전사고에 대한 보험료를 포함시키고, 실험실 사고를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산업재해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서울대 공대는 사고 발생 이후 제반 안전조치를 강화했다. 전 연구원의 안전교육 의무화, 안전점검 체계 및 시설 개선, 안전관리규정 제정 등 여러 성과를 얻어낸 것. “그냥 잊히는 것을 막고 무언가를 개선하려면 끊임없이 문제를 상기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목소리가 더욱 절실하다는 사실도요.” 사업에 참여한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한재각 간사의 말이다.

6. 내부뿐 아니라 외부와도 공유하고, 비교하고, 분석하라

지난 8월28일 과학기술부 장관 주재로 열린 실패사례연구 간담회에 기초연구, 원자력, 엔지니어링, 기상, 과학기술정책, 금융, 민간기업 등 각 분야 전문가 13명이 모여 실패 연구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기초과학지원연구소 권면 부장(차세대 핵융합로 개발)은 프로젝트의 실패 경험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외국학회에서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고 말한다.

“지난 4월 미국 물리학회에서 93년 실패로 끝난 SSC대형가속기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고백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4명이 나와 토론하면서 이 프로젝트가 왜 실패로 끝났는지 분석했는데 내용이 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와도 연관이 있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귀국 후 그들이 말한 실패 원인을 우리가 진행중인 프로젝트에 하나하나 대입하면서 혹시 잘못하는 것은 없는지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학회에서도 이처럼 실패 체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부장은 국내에 실패학이 자리잡으려면 먼저 실패를 인정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수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또 완료되지만 실패했다는 연구는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일단 객관적으로 실패 판정을 받으면 연구자는 앞으로 3~5년 간 관련 기관에 연구비를 신청할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인데다 평가자도 가능한 한 연구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평가하기 때문에 사실상 국내에서는 실패한 연구가 없다시피 하다.

도쿄대 하타무라 료타로 교수는 “실패는 기묘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감출수록 커지고 악화하다가도 일단 드러내기 시작하면 성공과 창조를 가져온다”고 했다. 인생의 80%를 실패라 했을 때 우리는 항상 기로에 서 있다. 실패를 망각할 것인가 배워 이길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주간동아 2001.10.18 305호 (p44~47)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 황일도 기자/shamor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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