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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證安기금, 아직도 ‘진행형’

2003년 완전 청산도 불투명 … 2차 증안기금 논의에 他山之石 삼아야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10년 전 證安기금, 아직도 ‘진행형’

10년 전 證安기금, 아직도 ‘진행형’
여의도 증권금융빌딩 8층에 자리잡은 40여 평 규모의 작은 사무실. 이곳에는 ‘증시안정기금’(이하 증안기금)이라는 조그마한 간판이 붙어 있다. 지난 1989년 종합주가지수가 1000포인트를 돌파하며 우리 경제가 샴페인을 터뜨리고 난 뒤 90년 들어 900선과 800선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증시 붕괴의 위기감이 퍼지자 정부와 증권사들이 나서서 증시를 떠받치기 위해 만든 증시안정기금 사무국이다.

그러나 10년 전 우리 증시의 최대주주로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한 증안기금이 아직도 존재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당시 기금 창설을 주도한 증권업협회에 연락처를 문의했더니 “이미 해산한 증안기금을 지금 어떻게 찾느냐”는 답변이었고 재경부 관계자에게 증안기금 연락처를 물었더니 엉뚱한 번호 하나만 일러주고는 “우리도 전혀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증안기금 사무국도 몇 군데 건물을 떠돌다 지금의 자리에 안착했다.

미국 테러사태의 여파와 전쟁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부가 제2의 증시안정기금을 조성한다는 방안이 검토되는 시점에서 증안기금은 이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우리 경제사의 한 페이지에 파묻힐 뿐이다. 진념 경제부총리는 미 테러사태가 터진 직후인 지난달 중순 제2의 증안기금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0년 전 證安기금, 아직도 ‘진행형’
지난 90년 조성된 증안기금의 총규모는 4조 원. 애당초 25개 증권사가 2조 원을 출자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증시 상황이 점점 더 심각해지자 정부가 나서면서 상장사 1조 원, 보험과 은행권이 각각 5000억 원씩 분담해 액수는 4조 원 규모로 늘어났다. 증안기금이 출범한 90년 5월 당시 거래소의 시가 총액이 84조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증안기금은 무려 시가총액의 5%를 차지하는 ‘큰손 중 큰손’인 셈이었다. 당시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1천700억 원 규모.

그러다 보니 증안기금이 들어오는지 빠지는지에 따라 하루하루의 주가가 요동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일단 증안기금이 시장에 개입하면서 당시 증시 회복의 최대 걸림돌이 되어 온 매물압박을 완화하는 데 적지 않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증안기금이 시장을 떠받치고 주가를 띄우는 데 기여했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증안기금이 주식매입에 처음 나선 지난 90년 5월8일의 종합주가지수가 796포인트였지만, 2년이 지난 뒤 주가지수가 오르기는커녕 620포인트까지 곤두박질쳤으니 증안기금이 주가를 인위적으로 떠받치는 데도 실패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경제전문가들이 증안기금의 실험을 ‘실패’라고 규정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



결국 3년인 기금 운용시한을 한 차례 연장한 증안기금은 96년 들어서야 공식적으로 청산을 결의했다. 그러나 증안기금이 완전히 청산되는 것은 오는 2003년. 그나마 이 기한 역시 ‘예정’에 불과하다. 2003년까지 해마다 보유 주식의 20%씩을 청산해 나가기로 했지만 증시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보유 주식을 무턱대고 내다 팔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10년 전 證安기금, 아직도 ‘진행형’
당장 5년 분할 상환의 첫해인 98년부터 ‘사고’가 생기기 시작했다. IMF 사태로 인한 주가 폭락으로 98년 청산, 반환하기로 한 주식을 팔아치우지 못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2000년도 마찬가지. 결국 99년과 올해만 보유 주식을 내다 팔았으나 증안기금은 아직도 1조1000억 원 규모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애당초 출자금액의 2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예정대로라면 잔여 보유분을 2003년까지 모두 팔아치워 출자사들에 반환해야 하지만 최근의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이 약속마저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그래서 미국 테러사태 이후 폭락 장세를 지켜보는 증안기금측의 입장은 착잡할 따름이다. 증안기금 최연식 사무국장의 말. “답답합니다. 정해진 청산 절차에 따라 원만하게 정리해 출자사들에 모두 돌려줘야 하는데 테러사태다 뭐다 해서 상황은 꼬여만 가니, 원….”

증안기금 출범 당시부터 이 기금과 운명을 함께 한 최사무국장은 “아예 지수를 주도할 수 있는 상징주를 정한 금액만큼 사들이기만 하면 되던 옛날이 좋았다”고 말한다. 증안기금은 지금도 보유 주식에 대한 배당 수입을 꾸준하게 거둬들이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400억 원 정도의 배당 수입이 생겼다는 게 증안기금측의 설명. 청산 단계에 있는 증안기금 사무국 직원 6명이 썰렁한 사무실에서 주로 하는 업무 역시 배당수입 분배와 보유 종목 중 청산이나 법정관리에 편입되는 회사가 나올 경우 이를 정리하는 일이다. 현재 각종 배당수입 등을 통해 갖고 있는 현금 자산만 약 200억 원 정도 되지만 이 금액 역시 증안기금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주거래은행에서 한국은행 지불준비금으로 이전된 뒤 만기연장하거나 배당하는 형식을 취한다. 1조 원이 넘는 보유 주식도 모두 증권예탁원에 보관한 상태. 한때 하루 수천억 원씩 굴리던 증안기금이 현재 만질 수 있는 돈은 조합 정관에 따른 직원 월급이 전부인 셈이다. 시장을 왜곡시킨 주범으로 손가락질당하고 기금이 청산되면 그나마 남은 직원들도 일자리를 잃게 될 처지인 증안기금에 최근 제2증안기금 설립 논의를 보는 감회를 물었지만 즉답을 듣는 것은 어려웠다. 최연식 사무국장은 “우리가 답변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다 장단점이 있는 것인데…”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우리나라 증시안정기금의 모델이 된 일본 증권보유조합의 경우 지난 65년 1월에 설립돼 그해 7월까지 4차례 걸쳐 매입한 주식을 다음해 6월부터 5개월에 걸쳐 매각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 증권보유조합이 성공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점을 증안기금 조성을 주장하는 논거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다르다. 증권연구원 노희진 박사는 “일본 대장성이 나서서 인위적으로 시장을 조작하면서 금융시장이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투신산업이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역시 인위적인 시장부양 과정에서 투신사들을 강제로 동원했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노박사는 “증안기금이 개입해 시장이 결정하는 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사준다면 ‘부의 이전’(wealth transfer) 효과만 있을 뿐 시장 발전에는 아무 것도 기여하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서강대 최운열 교수(경영학)도 “1차 증안기금 당시보다 시가 총액이나 거래대금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황에서 또다시 기금을 조성해 시장을 떠받치는 형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거래소 시가총액은 184조 원 규모, 거래대금도 일평균 2조 원 가까이 되니 90년 당시와 비교하면 시가총액은 2배 이상, 거래대금은 10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3조∼4조 원의 기금으로 증시를 들었다 놓았다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이야기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할 때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파생금융상품 시장이 생겨나고 향후 주가 움직임을 예측해 투자하는 선물거래 방식이 대중화한 마당에 정부가 나서서 인위적으로 주가를 떠받칠 경우 선물 투자자들은 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선물 투자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고 덤빌지도 모르는 상황. 따라서 전쟁 발발과 이에 따른 증시 붕괴 등 극단적 경우가 아니라면 정부가 이런 위험까지 감수하고 제2의 증시안정기금을 실제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대부분이다. 최교수는 “정부의 제2 증안기금론은 증시폭락 사태를 두고 정부가 시장을 방치하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만들기는 쉬웠지만 없애기는 힘든’ 1차 증안기금의 오늘날 모습은 정부가 보기에도 정책 실패의 교훈을 보여주는 흉물 이상,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1.10.18 305호 (p34~36)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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