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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테러’ 당한 세계 항공업계

유가 폭등 이어 뉴욕 참사로 보험료 부담 급증·승객 급감 … 우량 항공사들도 ‘파산 공포’

  • < 송진흡/ 동아일보 이슈부 기자 > jinhup@donga.com

‘경영 테러’ 당한 세계 항공업계

‘경영 테러’ 당한 세계 항공업계
세계 항공업계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연초부터 시작된 유가 폭등과 미국 테러참사 이후 늘어난 보험료 부담, 테러 공포에 따른 탑승객 감소 등 채산성을 악화시키는 ‘삼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다.

특히 스위스항공, 호주 안셋항공 등 일부 항공사들은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항공기 운항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 세계 주요 항공사들이 ‘파산 도미노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싱가포르항공과 함께 서비스 부문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은 우량 항공사인 스위스항공이 무너질 정도로 항공시장 주변 여건이 악화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美 보복공격 시작돼 ‘설상가상’

여기에다 지난 월8일 새벽 전격적으로 단행된 미국과 영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 공격은 항공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전쟁 발발로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하는 항공 노선 폐쇄가 불가피한데다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이나 영국의 주요 공항에 대한 보복 테러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항공업계로서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인 셈이다.

이에 따라 세계 주요 항공사들은 테러 사건 이후 추진해 온 인력 감원과 노선 감축 등 자구 노력과 함께 항공료를 최고 50%까지 할인하는 등 고객 유치를 위한 전략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도 항공사들의 재정 지원 요청과 파산보호 신청 등이 잇따르자 긴급 지원에 나서는 등 ‘추락하는 항공산업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스위스항공의 경우를 보면 항공업계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있다. 스위스항공은 최근 파산절차에 돌입, 모든 항공편의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가 스위스 정부의 긴급구제자금 지원으로 이틀 만에 항공기 운항을 부분적으로 재개했다. 그러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스위스 정부의 일방적인 구제자금 제공에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는 등 특혜성 지원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어 생존 여부는 불투명하다.

스위스항공의 몰락은 무리한 사세 확장과 테러 참사에 따른 승객 감소, 보험료 인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항공업계는 보고 있다. 특히 벨기에 항공사인 사베나(Sabena)를 무리하게 인수한 게 화근이었다. 스위스항공은 지난해 취약지역인 아프리카 노선을 보강하기 위해 벨기에 사베나항공의 지분 49.5%를 인수했다. 구체적인 인수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흑자 항공사였던 스위스항공의 부채가 106억 달러까지 늘어난 주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다 테러 참사로 항공기 승객이 줄어든 것도 한몫 했다. 스위스항공은 미국 테러 참사 이후 승객들이 노선에 따라 20∼30% 감소, 심각한 자금난을 겪었다. 특히 카이로 텔아비브 튀니지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노선은 테러 위협으로 탑승률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료 부담도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스위스항공은 99년 2월 SR111편이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 인근 페기스코브 앞바다에서 승객 215명과 승무원 14명 등 모두 229명을 태운 채 추락해 보험료 부담이 높아진 바 있다. 여기에다 이번 테러 사태로 전쟁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기체 보험료와 전쟁 보험료가 상승해 경영을 압박하는 원인이 된 것으로 보험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스위스항공의 파산절차 돌입 여파로 자회사인 사베나항공도 연쇄 파산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전망이다.

호주의 2위 항공사인 안셋항공도 테러사건 직후 그간의 적자 누적까지 겹쳐 문을 닫고, 모든 국내선과 국제선 운항을 중단했다. 테러 피해를 본 미국에서는 콘티넨탈항공이 테러사태 이후 매일 3000만 달러의 손실을 보자 “앞으로 한 달 정도 버틸 수 있는 경영자금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투자자들에게 파산 경고를 보냈다.

항공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자 전 세계 항공사들이 구조조정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테러 피해를 본 미국 항공사들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내선 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대대적인 노선 조정과 인력 감축에 들어갔다.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 항공은 승객감소로 2분기에만 5억7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 회사는 작년 동기 3억21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했다. 항공사측은 내년 초 항공기 22대를 퇴역시키고 2만여 명을 감원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유나이티드항공도 9월 승객 수가 작년 동기보다 31.5% 급감해 전체 운항 편수를 21% 줄였다. 탑승률도 61.1%로 작년보다 8.8%포인트 떨어졌다. 이에 따라 직원 2만 명 정도를 감축키로 했다.

지난달 승객 운송량이 17.6% 감소한 델타항공도 직원을 1만5000여 명 정도 줄이고 임원들의 보너스, 최고경영진의 급여 지급을 중지할 방침이다. 미국 6위 항공사인 유에스에어는 상반기에 4억64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함에 따라 주요 노선 항공기를 소형기로 대체하고 1만1000여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에어버스사에서 구입하기로 한 30대의 항공기 도입시기도 2∼3년 늦추기로 했다.

홍콩 캐세이퍼시픽항공은 상반기 이익이 39%나 격감한 2176억 원에 그쳤다. 이 회사는 6월 말 발생한 노조 쟁의와 7월 태풍 우토로 운항이 차질을 빚었으며 하반기 영업전망도 어두운 것으로 나타났다.

최우량 항공사로 평가받는 싱가포르항공도 고유가와 항공화물 감소로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4.6% 감소했다. 호주 퀀타스항공도 아웃소싱 등 비용절감 노력에도 불구하고 6년 만에 처음으로 순이익이 19.7%나 줄어들었다.

항공업계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객 확보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보고, 고객 유치를 위한 대대적인 요금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최근 새 할인제를 도입, 탑승 3주 전에 국내선 항공권을 구입하는 비즈니스 좌석 승객에 대해 최고 50%까지 할인해 주기로 했다. 아메리칸항공과 콘티넨탈항공 등도 뒤를 따랐다. 에어트랜에어웨이는 10월부터 연말까지 3차례 항공기를 이용하면 1장의 무료 티켓을 제공한다. 광고 공세도 잇따르고 있다. 아메리칸항공은 20개 이상의 주요 미국 신문에 ‘미국인들이 정상 비즈니스로 복귀하고 있다’는 전면광고를 게재했다.

항공업계에 대한 각국 정부의 지원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항공사들에 대한 긴급 금융지원과 보험부담 지원을 포함해 50억 달러의 구제자금을 의회에 요청, 승인을 받았다. 현금 지원 형식의 구제자금과 별개로 항공권 발급에 따른 세금 면제 등 79억 달러에 상당하는 세제 지원을 내년 8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해주기로 했다. 스위스 정부도 파산절차에 들어간 스위스에어의 운항정지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기 위해 4억5000만 프랑(2억7100만 달러)의 한도 내에서 긴급 구제자금을 지원키로 결정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도 조만간 회원국 항공사 지원방안을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 지원책에는 항공사들에 공평하게 혜택이 돌아가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처럼 현금 지원과 같은 직접적인 재정 지원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사들이 경영악화로 항공기 주문을 취소하자 항공기 제조업체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보잉사는 상반기에 180대의 항공기를 수주했으나 50여 대가 취소됐다. 이에 따라 2003년에는 본격적인 생산감축에 들어가 연간 생산 대수가 지금의 530대에서 440여 대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에어버스사는 올해 항공기 판매 대수가 당초 계획보다 12대 적은 320대에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오는 2003년 말까지 항공기 생산대수를 330∼350대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했다.

국적 항공사도 비상이 걸렸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노선 감축, 감원, 자산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한편 정부에 금융 및 세제 지원을 요청했다.

대한항공은 최근 14개 국내외 노선 운항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내선의 추가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 또 보유 항공기 중 중형기를 중심으로 11대를 매각 또는 임대하고 자산 매각을 통해 1000억 원 상당의 유동성을 확보할 계획. 직원 500명에 대한 감원 계획도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6000여 명의 직원 중 360명을 감안하고 자산 매각과 경비 절감 등을 통해 575억 원의 비용을 줄인다는 방침.

그러나 정부 지원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건설교통부가 9월 양대 국적 항공사가 제출한 자구계획안을 검토한 결과 연말까지 예상되는 누적적자를 감당하기에 미흡하다고 판단, 구조조정 강도를 한층 높여 계획안을 다시 제출할 것을 주문했기 때문. 특히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등에서 다른 업계와의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직접적인 재정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정부 지원이 쉽게 이뤄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2001.10.18 305호 (p30~32)

< 송진흡/ 동아일보 이슈부 기자 >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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