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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란 속 찌든 가난 ‘온 국민 고단한 삶’

아프간 북부동맹 수도를 가다 … 전기·수도 구경도 못해 50~60년 전 우리 사회 연상

  • <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 kimkihy@donga.com

20년 전란 속 찌든 가난 ‘온 국민 고단한 삶’

20년 전란 속 찌든 가난 ‘온 국민 고단한 삶’
아프가니스탄 북부 인구 50만 명의 도시 파이자바드. 북부지역을 거점으로 탈레반 정권에 맞서는 북부동맹의 임시 수도다. 미국이 탈레반 정권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면서 북부동맹의 움직임이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이 지상군 병력을 투입하는 대신 북부동맹을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탈레반 정권 붕괴 후 이를 대신할 유력한 대안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6년 수도 카불 등 90%의 아프가니스탄 영토를 탈레반에 빼앗긴 후 위축된 북부동맹이 다시 군사·외교적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자는 지난달 25일부터 7일 동안 파이자바드를 비롯해 북부동맹군의 근거지가 있는 판지시르 계곡, 북부동맹군과 탈레반이 격전을 벌이는 카불 북쪽 바그람과 타지키스탄 접경 호자바우딘 등을 둘러보았다. 소강 상태인 전선은 미국의 탈레반 공격이 임박해지면서 다시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투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세에 몰려 있던 북부동맹은 미국의 공격에 맞춰 전 전선에서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세를 역전시키고 카불을 탈환하는 것이 첫 목표였다.

파이자바드는 부르하누딘 라바니 대통령의 관저를 비롯한 북부동맹 정권의 수뇌부가 모인 곳이다. 전선과는 200여km 떨어져 있어 탈레반의 공격에서 안전한 후방이다. 그러나 20년 전란의 흔적을 한눈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피폐했다. 헬기에서 내리자 먼지 날리는 활주로 주변은 온통 폐허뿐이었다. 곳곳에 탱크 잔해가 널려 있었다. 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구소련군 탱크였다.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10년 동안 6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철수한 소련군의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내로 들어오는 길의 구소련군 진지도 잡초가 무성한 채 방치돼 있었다.

북부동맹의 수도라 해서 소도시 규모를 상상했으나 파이자바드는 전기, 전화, 수도 등 기본적인 인프라조차 없는 촌락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관저와 정부관련 건물 군사시설 등에만 발전기가 있었다. 파이자바드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전 지역의 생활수준은 마치 50~60년 전의 우리 사회를 떠오르게 할 정도로 열악했다.

최근 일본 마이니치신문과 회견을 가지는 등 탈레반과 달리 외신에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라바니 대통령은 파이자바드에 없었다. 최근 북부동맹 수뇌부는 대외활동에 바쁘기 때문이다. 미국 러시아 등과 접촉을 늘리면서 국제무대에서 위상 강화를 위한 외교전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북부동맹은 비록 국내에서는 탈레반보다 열세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하는 합법정부로 인정받고 있다. 탈레반을 승인한 나라는 세 나라였는데 그나마 미국 테러사건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가 승인을 취소해 이제는 파키스탄만이 탈레반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 북부동맹은 50여 개국의 승인을 받았다. 해외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공관도 대부분 북부동맹 정부에 충성하고 있고 국제연합(UN)에 나가 있는 아프가니스탄 대표부도 북부동맹 소속이다.

북부동맹 요인 중 외신기자 사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은 압둘라 외무장관. 기자는 압둘라 장관을 두 차례 만나 미국과의 협력 가능성과 탈레반 정권 붕괴 후의 아프가니스탄 전망 등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북부동맹의 외교 중심지는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 북부동맹 수뇌들은 두샨베를 제집 드나들 듯 자주 오간다. 이곳을 통해 외국으로 나가고 서방 외교관과도 접촉한다. 타지키스탄은 북부동맹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다. 북부동맹은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타지크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두샨베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부동맹과 미국은 이미 반(反)탈레반 연대에 합의했다. 압둘라 장관도 미국과의 협력 방안이 상당히 구체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양측은 탈레반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미래까지 생각하며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서방은 현재까지 탈레반의 유일한 대안은 북부동맹밖에 없다는 판단을 굳힌 듯하다. 현실적으로 탈레반을 제외하면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북부동맹에 맞설 만한 다른 세력도 없다.

물론 아프가니스탄에서 취재중인 외신기자 사이에 한때 “서방과 러시아가 탈레반이 붕괴할 경우 1973년 군사 쿠데타로 실각한 후 이탈리아에 망명중인 자히르 국왕을 국내로 복귀시켜 그를 수반으로 하는 임시정부를 수립해 총선을 치르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는 그럴듯한 설이 나도는 등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점치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면 아프간인들은 북부동맹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기자가 4일 동안 파이자바드에서 판지시르 계곡까지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만난 평범한 아프간인들은 조심스럽게 “탈레반도 싫지만 북부동맹도 믿을 수 없다”는 속내를 보였다. 오랜 혼란과 내전을 겪으면서 권력에 대한 극단적 불신을 가진 것이다. 이미 북부동맹은 92년부터 탈레반에 의해 카불에서 쫓겨난 96년까지 4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한 적이 있다. 대다수 아프간인은 과거를 떠올리면서 북부동맹은 ‘무능하고 부패하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20년 전란 속 찌든 가난 ‘온 국민 고단한 삶’
북부동맹 치하의 아프가니스탄은 혼란과 폭력 부패의 시절이었다. 사쿠라이 코지 일본 요미우리신문 이스탄불 지국장은 테헤란 특파원을 지낸 이 지역 전문가. 96년 카불을 방문한 그는 “북부동맹이 장악하고 있던 카불은 약탈과 폭력 강간이 일상화해 낮에도 거리로 나서기 겁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곳곳에서 길을 막고 통행료를 요구하고 민가를 약탈하는 등 북부동맹군 병사들의 횡포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국내외에서 고립된 탈레반이지만 집권 당시만 해도 절대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엄격한 이슬람 규율로 무장한 탈레반은 북부동맹보다 훨씬 깨끗했으며 전국적인 혼란도 수습했다. 그러나 집권 후 여성의 교육과 취업을 금지하고 온몸을 가린 부르카를 입게 하는 등 원리주의적인 이슬람 교리를 전 국민에게 강요해 큰 반발을 샀다. 더구나 탈레반은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에는 관심도 없이 끊임없는 ‘이슬람 혁명’으로 국민을 몰아붙였다. 또 국제사회와의 고립을 자초해 외부 지원을 스스로 거부함으로써 경제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러나 미국의 탈레반 공격에 대한 아프간인의 태도는 엇갈렸다. 보라크에서 만난 서점 주인인 아소므딘 다와트는 “탈레반이 있는 한 지겨운 전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차라리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켜 아프가니스탄에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약국을 하는 모하마드 아니프는 “미국이 공격을 시작하면 가장 큰 피해자는 죄없는 아프간인”이라며 미국의 공격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기자는 아프가니스탄 취재에서 치열한 전투와 파괴된 도시, 비참한 난민촌 등 외신을 통해 매일같이 전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현실 뒤에 가려진 다른 모습도 보았다. 문명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박한 시골의 아프간인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 전란과 가난 속에서도 밝은 어린이들. 미국이 탈레반을 공격하고 북부동맹과 탈레반 사이의 전쟁을 본격화하면 깊은 계곡은 다시 포연에 휩싸이고 피로 물들게 된다. 이것이 과연 마지막 전쟁이 될 것인가. 아프가니스탄에는 언제쯤 평화가 올 것인가.



주간동아 2001.10.18 305호 (p24~25)

< 김기현/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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