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7

2001.08.16

너 종이 맞아? 아닌 것 같은데…

건전지 장착 ·반도체 칩 내장 등 첨단으로 무장한 새로운 종이 출현

  • < 이 식 / 과학칼럼니스트·이학박사 > honeysik@yahoo.com

    입력2005-01-18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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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종이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컴퓨터가 도입되면서 모든 문서를 컴퓨터 파일로 대체하기 때문에 종이의 소비량이 줄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아쉽게도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중요한 문서를 컴퓨터 파일로만 보관하는 것에 일말의 불안감을 가진 사람이 아직 많고, 결정적으로 컴퓨터 화면보다는 인쇄한 종이를 더 좋아하는 경향 때문이다. 오히려 컴퓨터 시대에 맞물려 사람은 더 많아진 이면지와 파지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이처럼 종이는 한 번의 생존위기(?)를 거뜬히 넘기고 장수하고 있다. 또 종이의 기능은 단순히 문자의 기록매체나 장식적인 목적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현대에 종이의 기능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종이에 전원을 포함시킬 수도 있고, 티끌만한 크기의 반도체 칩을 내장할 수도 있다. 그리고 별도의 전원 없이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는 전자종이도 개발되었다. ‘펄프’로 만든다는 고전적 의미의 종이는 아니지만 이런 유용한 기술들이 우리의 생활을 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최근 주목 받는 특별한 종이기술 3가지를 소개한다.

    전원을 가진 종이(power paper)

    정확히 말하면 파워 페이퍼는 새로운 타입의 건전지다. 이스라엘의 파워 페이퍼사는 두께가 아주 얇은 건전지를 종이 위에 인쇄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가로 세로 각각 1cm 크기로 만들 경우, 보통의 건전지와 같은 1.5V의 출력을 얻을 수 있다. 회사 이름을 따 ‘파워 페이퍼’로 명명한 이 기술은 전지의 두께가 고작 0.5mm이고, 대량 생산할 경우 비용이 100원 정도에 지나지 않아 여러 분야에 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지로 사용하는 물질에 독성과 부식성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밀봉하지 않고 종이 위에 그대로 코팅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파워 페이퍼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다른 건전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파워 페이퍼의 가장 큰 장점은 임의의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 수 있어 여러 가지로 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기존 상품들에 쉽게 포함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응용의 범위도 무궁무진하다.



    쉬운 예를 몇 가지 생각해 보자. 신용카드에 파워 페이퍼를 적용하면 보안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신용카드의 총 사용액, 은행계좌 잔액 등을 카드 위의 LCD(액정 디스플레이)에 표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항공사나 택배사의 화물추적을 별도의 바코드 스캔 작업 없이 자동화할 수도 있다. 식품이나 의약품 등의 유효기관이 끝나는 것을 수작업으로 확인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표시하거나 파스처럼 몸에 붙여 약품이나 화장품을 공급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파워 페이퍼에서 전원을 공급받은 장치들이 체온이나 몸 상태를 측정한 후 자동으로 약이나 화장품을 투입시킬 것이다.

    상품의 포장재에 파워페이퍼를 결합하면 상품의 위치·전시·판매 등과 관련된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할 수 있어 더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하다. 배터리를 신경쓸 필요가 없기 때문에 제품 디자인의 측면에서도 큰 발전이 기대된다. 음성 칩, 소형 계산기, 장난감, 시계 등을 설계할 때 디자이너는 더 이상 배터리 모양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너 종이 맞아? 아닌 것 같은데…
    일본의 히타치사에서는 티끌만한 크기(0.4mm2)의 ‘라디오파 인식(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칩’인 뮤칩(Meu-Chip)을 개발하였다. 간단한 반도체 회로와 128비트의 메모리로 이루어진 이 칩은 무선으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고, 매우 작기 때문에 종이 등에 쉽게 붙여 쓸 수 있다. 크기가 작아 종이를 구길 때에도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게다가 별도의 전원장치 없이 가동할 수 있고 제작비용 역시 매우 저렴하다.

    뮤칩 내부에 암호화한 메시지를 기억시키면 바코드나 시큐리티 스티커보다 훨씬 효과적인 ID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수학적으로 암호화한 열쇠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만이 이 정보를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위조는 불가능하다. 간단한 예로, 자기앞수표에 128비트 암호를 포함한 뮤칩을 붙이면 수표의 유통이나 진위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칩을 위조한다면? 칩의 크기가 너무 작아 이 칩에 침투해 숨긴 암호를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뮤칩은 바코드와 달리 128비트를 사용한다. 때문에 뮤칩은 미래에 중복되지 않는 유일한 ID 확인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전자 티켓이나 자판기 등에도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매우 높은 수준의 보안이 필요한 곳에 쓰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이 경우에는 스마트 카드가 더 적합해 보인다.

    전자시대나 전자책 등의 용어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막상 노트북이나 E-book 등을 써서 ‘독서’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싼 장비나 콘텐츠의 부족 등도 전자책의 보급을 막는 한 원인이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런 장비들이 LCD를 사용한다는 데 있다.

    LCD는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장비가 아니다. LCD의 원리는 스테인드 글라스와 똑같다. 유리판 뒷면의 빛이 LCD상 유기물질을 통과하면서 색을 결정한다. 그래서 LCD 유리판 뒤에는 늘 백라이트(backlight)라는 발광장비를 추가해야 한다. 노트북 컴퓨터나 E-book을 보기 위해 반드시 전원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또 LCD는 전원을 공급 받았을 때에만 상이 맺힌다. 전원이 끊기는 순간 바로 스크린이 시커멓게 된다. 자연히 이런 장비들은 배터리의 무게 때문에 무거워지고 사용시간도 제약 받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특별히 힘센 사람만 들 수 있는 ‘천하장사’급 노트북이라는 말까지 있다.

    이보다 미국 보스턴의 한 회사가 개발한 전자 종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전자책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일 것이다. ‘E-ink’로 불리는 이 기술은 빛의 투과를 이용하는 LCD와 달리 빛의 반사를 이용한다. 유리판 사이에 수백만 개의 투명하고 작은 캡슐을 넣어 만든 ‘전자종이’에 전원을 걸면 캡슐들이 유리판의 표면으로 이동한다. LCD와 달리 전원을 끊어주어도 캡슐들이 유리면에 계속 붙어 있다.

    유리판은 종이의 표면과 완전히 똑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전원을 연결해 문자를 표시하는 것은 종이의 인쇄공정에 해당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유리판에서 반사한 빛을 이용한다. 독서를 마치고 새로운 내용을 인쇄(?)할 때만 전원이 필요하다. 전자종이는 이동할 때에도 별도의 배터리를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전자종이의 무게가 비약적으로 가벼워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전자종이는 단색에서는 약 300dpi, 컬러에서는 약 80dpi 정도의 해상도를 갖고 있다. 해상도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일반적인 독서에는 큰 지장이 없다. 오히려 전자 종이를 대중화하기 위해 꼭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자종이를 진짜 종이처럼 유연(flexible)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종이처럼 얇고 쉽게 접을 수 있다면 전자종이의 대중화는 더욱 앞당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2~3년이면 전자종이를 사용한 노트북 컴퓨터, 팜탑, 휴대폰이 시장에 출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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