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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불장군’ 외교정책, 사면초가 美 행정부

국익만 따지다 ‘고립주의’늪에 풍덩 … 언론 등 비난에도 “내 갈 길 가련다”

  • < 이흥환/ 워싱턴 통신원 > hhlee0317@yahoo.co.kr

‘독불장군’ 외교정책, 사면초가 美 행정부

‘독불장군’ 외교정책, 사면초가 美 행정부
부시 행정부가 취하는 외교정책을 놓고 고립주의(isolationism) 논쟁이 한창이다. 다른 나라들 생각은 않고 미국 혼자만 제 갈 길을 가려 드니 일방주의(unilateralism)요, 글로벌이니 뭐니 하는 것은 말일 뿐 미국의 국익만 따지고 드니 스스로 고립의 길을 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한마디로 독불장군 아니냐는 것이다.

행정부 쪽에서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 럼스펠드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안보팀 삼총사가 전면에 나서서 “터무니 없는 소리다”고 맞불을 놓고는 있다. 하지만 굵직굵직한 국제조약안을 거부하거나, 주요 동맹국들의 말은 귓전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으니 부시 행정부가 일방주의 소리를 들을 만한 행동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먼저 미국이 조약 가입을 아예 딱 잘라 거부했거나 엉거주춤 뒤로 물러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국제조약이나 협상안만 해도 지구온난화 협정, 핵실험 금지 협정, 국제형사법원안, 생물학 무기제한 협정, 반요격 미사일 협정, 소형무기 거래 규제안 등 여섯 가지나 된다.

중국을 ‘잠재 적국’ 1호로 지목하고, 북한을 상대하려 하지 않는 것이며, 미사일 방어망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등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 대해서도 클린턴 행정부 때와는 사뭇 자세가 다르다.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부터 예상한 일이었고, 쉽게 바뀔 것 같지도 않으나, 큰 궤적을 보면 클린턴 행정부 때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동맹국들이 대놓고 부시의 외교정책에 반기를 들거나, 미국 내 언론이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적인 행보에 노골적으로 제동을 거는 것은 클린턴 행정부 때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물론 부시 정권이 출범하면서 고립주의로 가겠다고 천명한 적은 없다. 오히려 고립주의자가 되지 않겠다는 인상이 짙었다. 하지만 출범 6개월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고립주의자의 걸음을 걷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는 듯이 보인다.



먼저 외교안보팀 삼총사가 공개석상에서, 부시 대통령은 고립주의자가 아니며, 부시 행정부 역시 고립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역설한다. 파월 국무장관은 1주일 동안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순방 마지막 국가인 호주에서 “우리는 세계 무대에 아주 굳건하게 발을 디딜 것이며, 미국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면서 “만약 우리가 고립주의자가 되었다면, 내가 중국 일본 베트남 한국 호주를 일주일 간이나 쓸데없이 방문했다는 소리다”고 되받아쳤다. “아-태 지역과 유럽, 페르시아만 등에 25만 명이나 되는 미군이 주둔해 있고,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후 6개월 동안 세계 각 지역을 돌았는데, 미국이 고립주의 국가라면 이런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는 것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보좌관도 고립주의 논쟁이 한창인 7월 마지막 주에 “부시 행정부 외교정책의 무게 중심은 포용정책이다”면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조약에 서명하려고 선출된 것이 아니다. 국제주의(internationalism)가 잘못된 조약에 서명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특유의 말재간을 구사했다. 지구온난화 협정 등은 미국이 서명을 거부할 만한 결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럼스펠드 국방장관도 고립주의를 비난하는 목소리에 대해 “우방국들과 협조가 잘 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이 삼총사는 민주당과 언론, 외교 분석가들의 맹공격을 받고 있다. 민주당 상원 탐 대슐 원내총무가 막 유럽 여행을 떠난 부시 대통령을 고립주의자라 대놓고 흔들어댔다. “우리는 고립을 자초하였고, 자신을 왜소화하였다. 몇 년 전과 비교할 때 심각하게 고민하는 흔적이라고는 없다.” 대슐 원내총무의 말에 정치색이 배어 있음은 물론이다. 백악관 참모들이 나서서 대슐 원내총무의 발언을 조목조목 잡아내면서 항변했다. 공화당은 대슐이 2004년 대선 출마를 의식해 사사건건 부시를 물고 넘어진다고 비난하지만, 단순한 정치공방으로만 몰아붙이기에는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일방주의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것은 사실이다. 언론이 부시 행정부의 독불장군식 행동을 꼬집는 것만 봐도 그렇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짐 호그랜드는 지난 7월29일자 논단에서 ‘부시의 위험한 일방주의’라는 글을 통해 부시의 고립주의를 호되게 질타했다. “부시의 동료인 세계 지도자들은 국제조약들이 미국의 외교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는 사실만 우려하는 것이 아니다. 부시의 거부주의(rejectionism)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키워온 국제 합의 및 협상의 전반적인 시스템에 미칠 영향을 더 우려하고 있다.”

이런 지적이 있는데도 부시 행정부가 외교정책에서 잇달아 일방적인 행동을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원인은 국내정치다.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는 순간부터 차기 대선운동을 시작한다는 것이 워싱턴 정치의 불문율이다.

국내정치와 외교정책을 아예 드러내 놓고 뒤섞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시 행정부처럼 밀어붙인 정권은 역대 행정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짐 호그랜드도 이 점을 지적한다. “부시의 외교안보팀이 세계 다른 모든 나라의 존재 이유를 부시의 2004년 재선운동을 돕기 위한 것으로 인식하였다면 이야말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내정치 문제를 외교와 관련시킨 것은 부시 대통령만이 아니다. 바로 전임자인 클린턴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구나 클린턴은 특히 외교정책에서 여론조사 결과와 로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하지만 클린턴은 최소한 고상한 명분과 그럴싸한 목적을 겉에 내세웠고, 티나지 않게 일을 처리했다.

부시 행정부가 소형무기 거래를 규제하려는 유엔의 노력을 일언지하에 뭉개버리자 대뜸 전미무기협회(NRA)의 로비 때문이라는 노골적인 비난이 터진 것도 외교와 국내정치의 경계선이 모호하고, 굳이 그런 것에 시시콜콜하게 신경쓰지 않는 부시 행정부의 기본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 까닭이 크다. 이탈리아 제노바의 8국 정상회담은 세계의 지도자들이 부시 미 대통령에게 휘둘렸다는 인상을 짙게 풍긴다. 부시 행정부의 고립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미국의 일방주의에 제동을 걸 만한 힘은 실려 있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의 독자 노선은 이래저래 힘을 얻었다.



주간동아 2001.08.16 297호 (p46~47)

< 이흥환/ 워싱턴 통신원 > hhlee03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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