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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이 중소기업 부도 막는다?

‘유동성 위기’ 겪는 사장들 술집 인수 봇물 … 접대비 줄이고 ‘자금 조달 창구’로 이용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룸살롱이 중소기업 부도 막는다?

룸살롱이 중소기업 부도 막는다?
중소기업 사장 이모씨(50)는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A룸살롱에만 가면 술값을 전혀 내지 않는다. 그가 이 업소에서 납품업체 직원들과 마시는 술값은 한 번에 평균 300만 원 정도. 하지만 이 업소의 어떤 종업원도 술값을 내지 않는 이씨에게 제재를 가하거나 항의하지 않는다. 이씨는 자신이 마치 엄청난 재력가라도 되는 양 한 병에 50만 원 이상 하는 고급 양주들을 척척 주문한다. 기가 질린 납품업체 직원들은 자신이 탄탄한 재력가라는 이씨의 말을 조금도 의심치 않을 뿐더러, 이런 접대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업체의 자금력에 놀라워한다.

하지만 이씨는 재벌 2세도 탄탄한 재력가도 아니다. 이 룸살롱은 가구 제작업체를 경영하는 이씨가 기업의 영업활동비를 줄이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부업’일 따름이다.

그는 지난 1월 부인 명의로 룸살롱을 시작한 후 회사 접대경비(영업활동비)를 70% 이상 줄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자신과 영업 직원들이 다른 룸살롱에서 뿌린 접대성 경비만 약 1억5000만 원. 이 룸살롱에서 술을 먹는 직원에게는 원가로 술을 공급하고 ‘화대’도 깎아주니 다른 술집을 다닐 때보다 30% 정도밖에 비용이 들지 않은 것. 접대경비 절약분으로 1년 6개월만 운영하면 1억3000만 원의 룸살롱 투자비용을 보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이 업소는 장사가 잘 되어 이씨는 초기 투자 비용을 7개월 만에 모두 건졌다.

“왜 진작 이런 방법을 몰랐는지…. 저도 룸살롱을 차린 선배 기업가의 이야기를 듣고 부랴부랴 역삼동 사무실을 개조해 룸살롱을 열었습니다.” 이씨는 중소기업 사장들이 경영하는 룸살롱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해 올 들어서는 ‘봇물’을 이루었다고 귀띔한다. 그가 알고 있는 중소기업 사장 소유 룸살롱만 강남지역에 10여 개소이며, 강북지역은 20여 개소에 이른다. 이씨는 “다른 사람의 명의를 내세운 업소를 모두 합하면 서울지역에만 100여 곳이 넘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100여 곳이면 서울지역 전체 유흥주점 2307개소의 5%에 육박하는 수치다.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 인근의 B주점은 도로 포장재료 아스콘을 생산하는 K업체 대표 최모씨(42)가 운영하는 업소. 평소 이 업소의 단골 손님인 최씨는 지난해 12월 아예 이 업소를 인수해 버렸다.



서울지역 룸살롱은 지난 99년 3월 유흥주점 허가제한 규정이 폐지되면서 2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낙오한 업소들의 권리금은 수억 원에서 몇 천만 원대로 떨어졌다. 변두리 업소의 경우 권리금 자체가 없어진 가게까지 있는 실정이다. 술집 경영과는 거리가 먼 최씨도 망하기 일보 직전인 이 업소를 무턱대고 인수한 케이스. 그는 룸살롱을 경영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애시당초 없었다. 그보다 절박한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룸살롱이 중소기업 부도 막는다?
“접대경비를 줄일 수 있기도 하지만 중소기업 사장들이 술집을 여는 진짜 이유는 자금 회전 때문입니다.” 최씨는 서울 강남-종로 지역과 지방도시의 번화가를 중심으로 중소기업 대표가 운영하는 룸살롱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실제 이유를 중소기업이 당면한 ‘살인적’ 유동성 위기에서 찾았다. 룸살롱은 자금 회수 기간이 짧아 당장 현찰이 없어 부도를 낼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룸살롱 경영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는 것. 담보가 있어도 대출이 까다로운 은행 대출을 일찌감치 포기한 중소기업인들은 월말마다 사채시장을 전전하다 룸살롱이라는 ‘탈출구’를 만난 셈이다.

“납품업체가 대금결제를 갑자기 연기한다든지, 어음결제가 한꺼번에 몰리면 일시에 유동성 위기가 옵니다. 은행에 가면 담보 내놓아라, 신용보증기금 보증서를 제출하라며 시간만 끕니다. 단 며칠, 단 몇 달 쓸 돈을 빌리는데 웬 서류가 그렇게 많고, 절차는 또 왜 그리 복잡한지…”(가구업체 사장 이씨).

한빛은행 서울지역의 한 지점장은 “IMF 사태 이후 일단 부도가 나면 대출금보다 담보가치가 폭락하는 경우가 많아 담보물이 있다 해도 선뜻 돈을 빌려줄 지점장은 거의 없을 것이다”며 “담보물이 없거나 시설자금이 아닌 기업 운용자금이라면 더 더욱 대출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고 단기 운용자금 대출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런 상황은 중소기업 사장들에게 연리 25~30%의 사채도 ‘감사하게’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이마저도 어려운 사장들은 “기업인이 웬 물장사냐”는 사회적 비판을 무릅쓰고 ‘부실 룸살롱’ 인수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 사장들이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선뜻 룸살롱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실제 이유는 따로 있다. 룸살롱을 찾는 손님이 전혀 없다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기업 운영자금 마련이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 약간의 편법만 동원하면 룸살롱이 술집 기능은 못하더라도 ‘자금창구’로서의 역할을 손색 없이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대구시 달서구 본리동 인근의 룸살롱을 인수한 중소섬유업체 사장 김모씨(46)는 개업한 뒤 당장 손님이 없자 가공 매출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족, 직원들의 카드로 술을 먹은 것처럼 꾸며 하루에 700만 원씩의 매출을 조성하기 시작한 것. 심지어 김씨 자신이 가진 10개의 카드로만 술값 결제대금 명목으로 은행에서 50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한 달에 회전시킨 자금만 2억 원. 약간의 카드 수수료를 물고 2억 원을 손쉽게 빌려 쓴 셈이다. 그는 한 달 후 자신과 가족, 직원의 명의로 청구된 카드 대금을 납품업체에서 수금한 돈으로 모두 막았다.

이에 대해 국세청 부가가치세과의 한 관계자는 “업소가 주류를 구입할 때 반드시 전용카드로 구입하게 한 주류구매 전용카드제가 올 7월부터 실시되었기 때문에 가공매출을 만드는 행위는 언젠가 적발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가공매출을 만들었다 해도 세금만 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로, 중소기업 사장들이 운영하는 룸살롱은 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유흥업계 종사자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영업활동을 위한 기업 자체의 접대가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지는데다, 대접을 받는 납품업체 직원들이 다른 손님들을 데려오고, 회사 직원이나 선후배들의 이용이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업소가 적자를 면하는 수준은 유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름이 알려지면 한 달 매출이 1억 원은 쉽게 넘으며, 유흥업계에 널리 퍼진 사채조직망을 이용하는 것도 쉬워져 룸살롱이 중소기업의 자금창고 역할을 톡톡히 하는 메커니즘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룸살롱에도 전문 경영인 도입 바람이 불어 중소기업 사장들의 룸살롱 인수 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룸살롱의 실제 운영은 유흥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전무’들이 도맡아하기 때문에 주인이 할 일은 별로 없다. 룸살롱에 부과하는 특별소비세와 같은 엄청난 세금도 이들 전무가 매출 규모를 적당히 다른 가게들로 분산함으로써 아예 내지 않도록 해주거나 대폭 줄여준다.” 섬유업체 사장 김씨는 대부분의 중소기업 사장들이 이들 ‘전무’에게 룸살롱 운영권을 맡긴다고 전했다. 전무들은 룸살롱이 망하면 자신도 실직자가 되기 때문에 사장이 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경우 업소의 수입으로도 부족하면 유흥업계의 일수꾼까지 연결시켜 주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중소기업청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부도 원인이 대부분 초단기 유동성 위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어 본청 차원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며 “소문으로만 들어온 기업인의 유흥업소 인수 붐이 사실일 줄은 몰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룸살롱이 윤락 알선의 실질적 매개체가 되는 현실에서 룸살롱 경영에 대한 기업가의 윤리성 논란은 피할 수 없는 문제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정부는 중소기업의 어음 부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대책이 주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은행 대출창구는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음 부도율을 낮추었을까요?” 룸살롱을 경영하는 중소기업 사장들은 정부가 기업가의 윤리성 운운하기 전에 실질적인 자금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간동아 2001.08.16 297호 (p38~39)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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