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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터시는 약 축에도 못 끼어요”

환각 댄스파티의 현장 ‘테크노클럽’… 해외파 손님들 “중독 걱정되지만 죄의식은 별로”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엑스터시는 약 축에도 못 끼어요”

“엑스터시는 약 축에도 못 끼어요”
홍대 앞.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극동방송국 앞에 이르는 통칭 ‘피카소 거리’와 공영주차장을 아울러 일컫는 지명 아닌 지명. 이 거리에 대한 사람의 눈길은 극에서 극을 달린다. 이 거리의 록밴드들 공연장은 21세기 청년문화가 싹트는 장으로 평가 받는가 하면 빗나간 젊은이의 걷잡을 수 없는 소비와 타락의 공간으로 질책 받기도 한다.

얼마 전 알약 형태의 환각제 엑스터시(MDMA)를 복용하고 레이브 파티를 연 대학생들을 검거했다는 홍대 앞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가. 늦은 새벽 그 거리를 헤매는 이들은 누구인가.

기자가 문을 연 지 꽤 오래되었다는 한 지하 테크노클럽을 찾은 것은 밤 11시 무렵이었다. 평일인데다 경찰이 단속을 강화한 탓에 파리를 날리고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가볍게 빗나갔다. 건물 입구 앞 보도에 나와 앉아 담배를 피우며 얘기를 나누는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공통어는 영어. 편하게 입은 반바지 차림의 남자들과 어깨가 드러난 탱크탑을 걸친 여자들의 왁자한 웃음소리가 이제 막 잠드는 거리를 흔들었다.

“레이브 파티에 엑스터시는 필수”

계단을 내려가자 머리를 시원스레 밀어버린 런닝셔츠 차림의 종업원이 손님을 맞는다. 입장료 5000원을 내고 종업원이 건네는 공짜 음료티켓을 받아 들었다. “바에 가서 티켓 내고 맥주나 음료를 드시면 됩니다.” ‘주말 밤 10시 이후에는 남자들에게 공짜 티켓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언뜻 눈에 들어온다.



복도를 따라 어두운 홀에 들어서자 엄청난 속도와 날카로운 기계음의 테크노 음악이 먼저 귀를 때렸다. 어느새 심장 박동이 정신없이 쿵쿵대는 드럼 소리를 따라 빨라졌다. 눈을 찌를 듯 흔들리는 사이키 조명 아래 몸을 흔드는 50여 명 안팎의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간간이 눈에 띄는 외국인들, 붉은 색으로 염색한 서태지식 레게머리를 한 여학생, 금방 넥타이를 푼 듯 흰 와이셔츠 차림의 풋내기 직장인, 입에는 담배를 피워 문 채 음향기기를 조작하는 무대 위의 DJ 등등. 누구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이정현식 테크노’를 추지는 않았다. 그저 취한 듯 홀을 가득 메운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어 수십 명의 사람이 각기 다른 종류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기자라구요? 이런 것도 다 기사가 되나요?” 동그래진 두 눈을 반짝이며 되묻는 최성호씨(22, 가명). 고등학교 때까지 부모님을 따라 독일에서 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귀국했다. “이름은 안 나가는 거죠?” 서울의 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최씨는 외무고시 2부 시험을 준비중이라고 한다. “도리도리라고는 안 해요. 다들 그냥 ‘엑스’라고 부르죠. 미국에서 온 친구들은 ‘E’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안 해봤지만 사실 엑스는 약 축에도 못 낀데요. 그냥 좀 몽롱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라는데요, 뭐.”

“엑스터시는 약 축에도 못 끼어요”
엑스터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최씨의 대답은 거침이 없다. 독일에서 워낙 다양한 마약을 접해 본 때문인지 특별한 거부감이 없다는 얘기였다. “위법인 건 잘 알죠. 명색이 법대생인데. 그렇지만 잡아가는 건 이해 못하겠어요. 결국 자기 책임이잖아요. 다른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할 게 없다고 봐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일 거라는 최씨의 목소리가 묘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인근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김진태씨(24, 가명)는 재미교포인 까닭에 한국말이 서투르다. “인터넷으로 한국에도 레이브 파티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솔직히 놀랐어요. 와서 직접 보고 또 한번 놀랐고요. 미국에서의 파티보다 분위기가 더 좋던 걸요.” 지난 6월 한국에 온 그는 을지로, 강남, 홍대 앞 등에서 네 차례에 걸쳐 레이브 파티에 참석했다.

이제까지 세 번 엑스터시를 먹어봤다고 손가락을 꼽아 보이는 그는 레이브 파티와 엑스터시의 관계가 일정 부분 서로 필수적인 관계라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밤새도록 춤추기 피곤하니까 먹었죠. 그러다 약이 없으면 춤을 못 추는 애들이 생겼을 테고. 엑스를 먹으면 쉬지 않고 계속 춤을 출 수 있거든요.”

한국에서 엑스터시를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당연히 보았다고 말한다. “엑스를 먹는다고 환상이 보이거나 하지는 않아요. 꼭 누가 쓰다듬는 것 같은 간지러운 느낌이 들죠. 왜 있잖아요. 온몸의 털이 쫙 곤두서고 발 끝까지 나른해지는 기분…. 그래서 약 먹고 추는 춤은 한눈에 알 수 있어요. 몸 동작이 정상이 아니거든요. 늘어져서 흐느적대는 느낌으로 춤 추거나 거의 미친 듯이 흔들기만 하거나.”

인터넷으로 약을 구하는 일은 알려진 것처럼 쉽지는 않다고 김씨는 말한다. 대신 엑스터시가 합법화한 북유럽에서 온 친구들이나 미군들에게서 흘러 나온 약을 알음알음으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는 것. “공항에서 몸까지 뒤지는 건 아니잖아요. 미군들에게 오는 소포는 세관에서 검사를 제대로 안 한대요. 한 알에 6만 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 될 거예요.”

중독을 걱정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인다. 한번 먹는다고 바로 중독이 되는 건 아니지만 맛을 느껴본 사람은 다시 찾게 되기 쉽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제력으로 해결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조심해야죠.”

클럽에 혼자 오는 사람은 흔치 않아 보였다. 친구들과 떠들썩한 재미를 느끼고 싶어 온 사람, 스테이지에서 만난 얼굴들과 자동 카메라를 눌러대며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은 모두들 일행이 있었다. 홀 한켠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춤을 추던 주예린씨(20, 가명)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격렬하면서도 잘 다듬어진 춤 솜씨가 춤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인 기자가 보기에도 수준급이었다.

어렵게 말을 붙인 그녀는 평소에 춤을 출 때는 약은 물론 담배나 맥주조차도 마시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클럽에 오지만 그냥 스포츠 음료만 마셔요. 취하면 오히려 춤에 방해되거든요.” 그렇지만 주씨도 파티에 가면 달라지더라고 말한다. 외국에서 유명한 DJ를 불러오고 거리에 전단지 뿌리며 홍보하는 레이브 파티에 평소보다 5~6배는 비싼 입장료를 주고 참석할 때는, 뭔가 일상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경험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주씨가 지난 봄 낯 모르는 남자가 건네준 엑스터시를 먹어본 것도 바로 파티에서였다. “그러니까 파티죠. 가슴이 두근두근한 흥분을 느끼고 싶어 가는 거예요. 평소에는 약 같은 거 생각도 안하다 분위기에 휩쓸리는 경우가 많아요. 요즘은 경찰 때문에 파티 자체가 아예 없어졌지만.”

“근처에 엑스 구할 데가 없느냐”는 물음에 그러잖아도 어두운 종업원의 얼굴이 금세 일그러진다. “그런 거 하시면 안 되죠. TV 뉴스도 못 보셨어요.” 경찰이 들이닥쳐 모든 손님을 버스에 태우고 가 집단으로 소변검사 받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속이 시작된 이후 홍대 앞에서 약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종업원은 힘주어 말한다.

점멸하는 조명 사이로 언뜻 확인한 시계가 이미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도 적지않은 사람이 남아 있는 홀을 빠져 나오는 순간, 들어올 때는 미처 보지 못한 국가정보원의 공익광고 포스터를 복도 모퉁이에서 발견했다. ‘마약, 당신의 인생을 파괴합니다’. 사람의 눈길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붙어 있는 이 문구는 과연 몇 명의 ‘인생’을 구했을까. 단속이 완화될 무렵 열릴 파티에 참가해 환락의 현장을 제대로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랐다.



주간동아 2001.08.16 297호 (p34~35)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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