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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기득권’은 난공불락 요새

규제개혁위 개혁 칼날 변협 등에 안 먹혀… 변협 결의문은 부과세 부가 등 불만 따른 표출 ‘혐의’

  •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전문직 기득권’은 난공불락 요새

‘전문직 기득권’은 난공불락 요새
‘대한변협의 완승?’ 지난 7월23일 제12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 결의문을 통해 ‘절차를 무시한 개혁’과 ‘법치주의의 후퇴’를 비판한 대한변협이 현 정부와의 ‘힘 겨루기’에서 완승을 거뒀다는 얘기다. 대한변협이 사흘 뒤 한발 물러선 듯한 해명성 성명을 발표했고, 민주당이 “이를 이해한다”고 받아들인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는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와 변협이 어떤 식으로 ‘힘 겨루기’를 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변협이 거둔 ‘완승’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 정부가 변협을 비롯한 전문직 사업자단체에 대한 규제 개혁 등 ‘기득권’을 박탈하는 작업을 추진해 왔지만 변협 결의문 파문 이후 변협으로 대표되는 전문직 사업자단체와 현 정부의 ‘마지막 힘 겨루기’는 사실상 전문직단체의 ‘완승’으로 결론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얘기다.

현 정부의 규제 개혁 조치 등에 대한 변호사들의 위기의식은 정재헌 대한변협 회장이 올 1월 밝힌 출마의 변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정회장은 “변협을 비롯한 변호사 단체는 규제 개혁의 심한 도전을 받는데다 활동이 위축된 변협의 위상은 소수 시민단체만 못하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면서 “법조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사건 수임률은 격감하고 세무 당국의 잦은 세무조사 등으로 담세 한계를 넘어서는 조세 부담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 들어 변호사들이 느끼는 ‘조세 부담’은 상당히 크다. 변호사는 공인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함께 1999년부터 부가가치세 사업자로 전환되어 부가세 신고를 하게 되었다. 문제는 변호사들의 경우 법인의 소송을 대리할 때는 별 문제가 없지만 개인간 소송을 대리할 때는 이들에게 부가세를 부과하기 힘들어 변호사 수임료에서 부가세를 납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수임료 소득이 줄어든 셈이다. 여기에 업친 데 덮친 격으로 국세청은 전문직 소득자들에 대한 세무조사 실시 등 과세를 강화해 왔다.

‘결의문 파문’ 대한변협이 완승?



대한변협측은 이번 결의문을 순수하게 봐달라고 말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공동위원장 이한동 총리`-`강철규 서울시립대 교수, 이하 규개위) 주변에서는 이번 성명 파문의 배경을 이런 분위기에서 찾고 있다. 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도 “무엇보다 변호사 시장이 예전만 못한데다 부가세 부과 등에 따른 변호사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왔고, 이런 불만이 이번 결의문 파문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고 인정했다.

변협으로서는 이번 성명 파문으로 “역시 변호사란 대표적인 기득권 세력이다”는 일부의 비난을 받긴 했지만 전혀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는 평. 적어도 정부가 다시는 변호사 사회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효과는 충분히 거뒀다는 것이다. 변협 등 전문직 사업자단체에 대한 현 정부의 규제 개혁 조치가 물 건너 갔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 최근 규개위의 변협에 대한 규제 개혁 방안 재논의 유보도 변협 결의문이 영향을 미친 때문이라는 분석마저 나오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규개위가 당시 심사하던 안은 변협의 중앙 조직은 단일화하지만 지방 조직은 복수화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안은 99년 대한변협과 각 지방변호사회의 복수 설립을 가능케 하고 변호사들의 가입을 자유롭게 하는 내용의 변호사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하지 않자 법무부가 다시 만들어 지난해 10월 규개위에 심사 요청한 것.

그러나 규개위는 7월 중순 이 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심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변협이 강력 반발하는데다 국회 통과마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7월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규개위 행정사회분과위원회에 대표단까지 파견해 “변호사법 개정은 재야 법조를 말살하는 개악적 처사다”고 반발했다.

변협 등 전문직단체에 대한 규제 개혁안은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이와 관련, 규개위 관계자는 “99년 변호사법 개정안이 이미 한차례 상정되었다가 폐기된 상황에 정부가 다시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 신중할 수밖에 없다”면서 “규개위가 심사를 보류한 것은 또 다른 변호사법 개정 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규개위 관계자의 이 발언은 “대한변협에 대한 규제 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미보다는 “더 이상 추진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문제는 전문직단체 규제 개혁 작업에서 변협이 ‘상징성’을 갖고 있다는 점. 규개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단체 소속원들은 ‘대학 다닐 때 법대생 못지 않게 공부를 잘 했는데 우리가 변호사보다 못할 게 뭐 있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어 변협은 놔두고 이들 단체만 손대면 ‘우리가 힘이 없어 그러느냐’는 식으로 더 크게 반발하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실제 99년 초 대한변협이 국회 법사위 심의 과정에 변호사법안을 저지시키는 데 성공하자 공인회계사 관세사 세무사 등 사업자단체 규제 개혁 법안도 “변호사만 예외일 수 없다”는 논리로 처리를 유보하였다. 이후 이들 세 단체를 담당하는 재정경제부는 관련 법의 국회 상정은 생각지도 않는 상태. 세무사회 관계자는 “더 이상 세 단체에 대한 규제 개혁법은 법제화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규개위에 따르면 98년 5월 155개 사업자단체에 대한 규제 개혁 추진을 실시한 이후 지금까지 이를 외면하는 단체는 34개 단체. 이 가운데 특히 규제 개혁을 놓고 규개위와 ‘힘 겨루기’를 해온 변호사협회 공인회계사회 세무사회 관세사회 의사협회 약사회 등 고소득 전문직 단체들은 과도한 진입규제 장벽을 철폐하기 위한 복수단체 설립 허용 및 회원 가입 강제조항 폐지 등 규제 개혁 조치를 비켜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관련 단체가 ‘성역’을 지키기 위해 인맥과 자금을 앞세워 치열한 로비를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단체들은 법안 상정 후 정치권을 상대로 “우리의 기득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각종 선거에서 반대편을 지지하겠다”는 식의 ‘협박성’ 로비도 서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유착’ 의혹도 제기되었다. 99년 초 변호사법을 심의한 국회 법사위원 15명 가운데 13명이 법조인 출신이어서 ‘가재는 게 편’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은 것. 또 당시 공인회계사회 세무사회 관세사회 등에 대한 규제 개혁 법안을 심의한 국회 재정경제위원들 중에는 전직 세무사협회장, 관세사협회장 등이 포함되어 있어 관련 단체의 집중적인 로비 대상이 되었다.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갈수록 퇴색하는 것도 이들 단체에 대한 규제 개혁을 어렵게 한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이들 협회가 오랫동안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대부분 관련 정부 부처와 ‘유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관련 부처로 하여금 이들 단체에 대한 규제 개혁에 나서라고 한 것 자체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규제 개혁 업무를 총괄하는 청와대 정책수석실 관계자는 전문직 사업자단체에 대한 규제 개혁 실패 이유를 전술적인 잘못에서 찾았다. “현 정부 초기 사회 전 분야에 개혁 분위기가 형성해 있을 때 밀어붙이지 못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 게다가 국민에게 이들 사업자단체의 규제 개혁이 미치는 구체적인 효과에 대한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 전문직 사업자단체 규제 개혁을 추진할 ‘주체’ 세력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문직 사업자단체 규제 개혁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카르텔 형성과 가격 담합으로 서비스 질은 낮아지는 반면 가격은 인상되며, 의협의 의약분업 반대 투쟁을 통한 의료비 인상 사례에서 보듯 정부 정책과 행정개혁 과정에 집단의 이해를 추구해 정부 업무에 대한 공정성까지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자신들의 단체를 ‘사업자단체’로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 부터 문제라는 입장이다. 자신들을 ‘장사꾼’으로만 인식하고 변호사 등 전문직의 ‘공익성’을 부정하는 발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대한변협 관계자는 “변호사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상 요구에 의한 직업으로 변호사회는 독립성과 자율성이 요구되는 공익단체이자 인권옹호단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전문직단체를 복수화하고 진입장벽을 없애면 관련 전문가 수는 증가하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서비스료 인하와 서비스 질 향상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최근 대한변협이 ‘공익성’을 강조하면서 변호사들의 필수 공익활동 시간을 줄인 것은 앞뒤가 안 맞는 행태다”면서 “복수 단체라고 해서 공익성이 감소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직단체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상황이다. “전문직 사업자단체에 대한 규제 완화를 담은 법안을 언제 다시 국회에 상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긴 하지만 반드시 추진할 것이다”는 강철규 규개위 공동위원장의 말이 탄력을 받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주간동아 2001.08.16 297호 (p22~24)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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