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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賞 못 받은 국악인 있으면 나와 봐!

각종 경연대회 통해 1년에 25명 수상자 배출… 국악계 하향 평준화 조장 지적도

  • < 신을진 기자happyend@donga.com >

대통령 賞 못 받은 국악인 있으면 나와 봐!

대통령 賞 못 받은 국악인 있으면 나와 봐!
흔치 않은 국악 관련 기사 중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게 각종 경연대회 결과발표다. “제20회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판소리 심청가를 부른 OOO씨가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문화관광부장관상인 금상은 관악부문의 OOO씨, 현악의 OOO씨, 무용의 OOO씨에게 각각 돌아갔다” “16일 막을 내린 제21회 전국고수대회에서 OOO씨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제4회 임방울국악제 전국경연대회가 8일 광주문예회관에서 열려 판소리 명창부문에서 OOO씨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국악경연대회에는 유난히 대통령상이 많다. 현재 대통령상을 수여하는 국악과 민속경연대회는 전국판소리명창경연대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전국고수대회, 남도민요 전국경창대회, 경기국악제 등 무려 25개에 이른다. 한 해에 개최되는 85개의 국악`-`민속 경연대회 중 3분의 1에 가까운 대회가 대통령상을 수여하고 있다.

왕중왕 경연대회 필요하다?

상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나 기쁨이다. 열악한 환경에 있는 국악인들이 상으로나마 위로받을 수 있다면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 문제는 대통령의 이름을 내건 상이 너무 많다는 데에 있다. 그러다 보니 상의 권위가 떨어진다는 우려가 심심찮게 나온다. 대통령상을 남발하다 보니 기존 유서 깊은 대회들마저 권위가 떨어지고 수상자들의 실력도 하향 평준화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심지어 국악인들 사이에서 ‘왕중왕 경연대회가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돈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는 전통가무악 전국경연대회, 전국전통무용경연대회, 전국전통예술경연대회, 전국국악경연대회 하는 식으로 비슷비슷한 성격의 대회들이 잇달아 열린다. 이러한 대회들 중 적잖은 수가 95년 지방자치제의 부활과 함께 생겨난 지역축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문화관광부 통계에 따르면 94년 이후 시작한 지역축제가 129개에 이른다).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축제와 민속대회를 급조했고 이 와중에서 대회의 권위를 위해, 다른 시도에 뒤질 수 없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대통령상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이다.



대통령상을 결정하는 주무부서는 문화관광부다. 한 대회의 조직위원회가 대통령상을 상신하면 문화관광부 전통지역문화과에서 대회의 규모와 관객의 호응도, 전년도 실적 등을 심사한 뒤 행정자치부를 통해 재가를 얻는다. 문화관광부는 “국악의 중흥에 도움이 된다면 대통령상을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연대회가 많아지면 그만큼 국악 관객이 많아지니 국악 대중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 문화관광부는 보통 3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 주어지는 대통령상의 상금을 일부 지원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국악계의 대통령상 러시보다 국악 외의 분야에서는 대통령상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연극계에서는 전국연극제, 무용계는 전국무용제 정도가 대통령상을 준다. 양악 쪽에는 아예 대통령상이 없다. 그렇다면 왜 유독 국악에만 대통령상이 몰려 있는 것일까.

숙명여대 전통예술대학원의 송혜진 교수는 다른 장르의 예술과 국악은 직접적인 비교대상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 문제를 바라봐 달라고 주문한다. 특히 양악보다 절대적 열세인 국악인들에게 상은 심리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경연대회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없지 않지만 국악 붐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역시 대회입니다. 대통령상이 많다고 비난하기 전에 국악인들에게 대통령상 외에 그들의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국악에만 있는 ‘어전광대’의 전통을 국악인들의 대통령상 선호와 연관짓는 시각도 있다. 송만갑, 이동백, 정정렬 등 구한말 이름난 명인들은 임금 앞에서 소리를 한 어전광대였다. 이들이 그 대가로 받은 것은 통정`-`감찰 등 작은 벼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벼슬의 경중과는 상관없이 나랏님이 인정한 소리꾼이라는 것은 이들에게 일생일대의 명예였다. 오늘날 국악인들이 유난히 대통령상에 집착하는 것은 이같은 전통과도 연관이 있을 듯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악인들은 대통령상 남발에 대해 회의적이다. 국악평론가 김태균씨는 대회 수가 늘어나면서 그만큼 유명무실한 대회가 많아지고 심사의 공정성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대안으로 김씨는 각 시도마다 열고 있는 국악대회 수를 줄이고 가야금대회, 판소리대회, 해금대회 등으로 일원화할 것을 제안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씨 역시 상의 숫자를 줄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대통령상으로 보상받고 싶다’는 국악인들의 희망은 결국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싶은 열망이다. 국악에는 조기유학과 국제콩쿠르 입상, 교수직 등 양악 연주자들이 누리는 화려한 경력이 없다. 대부분의 국악인들은 독공이나 사사 등의 방법을 통해 힘겹게 공부해 온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국악에 대한 인식은 그리 높지 않다. 국악에는 아직도 ‘광대’나 ‘유랑 국극단’의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국악인들은 사회의 미적지근한 시선을 대통령상이라는 묵직한 이름으로 일거에 만회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에는 한 가지 중대한 착오가 있다. 한 예인(藝人)이 쌓아온 예술의 경지를 인정할 수 있는 증표가 과연 상뿐일까. 예술의 가치는 청중과 시대가 인정하는 것이지 상이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국악인들이 스스로의 실력을 상으로 인정받으려 한다면 그것은 국악이 그만큼 대중에게서 멀어졌다는 말이다. “과거의 어전광대들은 진정한 명인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대통령상 수상자가 과연 그들에 비길 수 있는 명인인가.”

한 국악인의 질타는 통렬하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하다. 대통령상을 둘러싼 국악계의 논의는 “여러 모로 열악한 국악에 상이라도 많이 줘야 한다”는 식의 동정에서 벗어나야 할 듯하다. 이같은 약자의 논리로 국악을 보호한다면 국악은 언제까지나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국악인들이 진정으로 열망해야 할 대상은 상이 아닌 대중의 관심과 사랑이다. 대중은 이제 상을 위한 연주보다 관객을 향해 연주하는 국악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





주간동아 2001.06.07 287호 (p70~71)

< 신을진 기자happyend@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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