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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 골탕먹인 아줌마들의 ‘반칙’

삼성생명 여성 건강상품 요실금 특약 허점… 가입자 상당수 ‘이쁜이 수술’하고 보험금도 타내

  • < 윤영호 기자yyoungho@donga.com >

보험사 골탕먹인 아줌마들의 ‘반칙’

보험사 골탕먹인 아줌마들의 ‘반칙’
탤런트 서갑숙이 삼성생명을 잡는다?’ 최근 국내 생보업계 관계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수군거리는 내용이다. 성 체험에 대한 솔직한 고백과 오르가슴을 얻기 위한 자신만의 훈련 방법을 담은 책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펴내 화제가 된 서갑숙이 국내 최대 생보사 삼성생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니 도대체 무슨 얘기일까.

문제의 발단은 98년부터 발매한 삼성생명의 ‘여성시대 건강보험’. 여성들에게 따라다니는 질병 치료비를 보장해 주는 보장성 보험인 이 상품에는 요실금 수술비 500만원을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특약이 붙어 있었다. 요실금이란, 소변을 자기 의지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 자녀를 출산한 30~40대 이후 여성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질병.

여성시대 건강보험은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웃거나 이야기할 때, 부부관계중에도 소변이 새는 등 일상생활에서 요실금 때문에 불편을 겪어온 ‘아줌마’들에게는 복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술비 부담 없이 요실금 수술을 할 수 있기 때문. 발매 이후 200만 명 넘게 이 보험에 가입한 것에서도 이 상품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삼성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상품을 팔기 시작한 교보생명 대한생명 역시 각각 48만 명과 55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 나름대로 재미를 봤다. 그러나 삼성에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이들은 삼성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삼성도 이 상품을 히트상품으로 선전했다.

그러나 이런 ‘자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요실금 수술을 한 보험 계약자들의 보험금 청구가 급증한 점을 이상히 여긴 삼성이 진상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요실금 치료보다는 속칭 ‘이쁜이’ 수술비 마련을 위해 전국의 ‘아줌마’들이 이 보험에 가입하였고, 실제 불과 몇 개월의 보험료만 내고 요실금 수술과 함께 이쁜이 수술을 한 후 보험금을 타내고 있던 것. 이쁜이 수술이란 자녀 출산 등으로 늘어난 여성의 질을 다시 죄어주는 수술.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요실금 치료를 위해선 이쁜이 수술까지 함께 해줘야 효과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알게 된 ‘아줌마’ 계약자들이 너도나도 이 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을 타낸 셈이다. 한마디로 회사가 상품 개발시 간과한 허점을 교묘히 이용했다는 게 삼성생명의 판단이다.

생보업계에서는 ‘아줌마’들의 이런 열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골반근육 강화를 위한 의료 용구를 생산하는 한 의료기 회사의 신문광고 내용이라 지적한다. 유명 비뇨기과 의사와 탤런트 서갑숙을 모델로 내세운 이 회사의 광고는 원래 ‘수술보다는 골반근육 강화운동을 할 수 있는 의료 용구로 요실금을 치료, 부부생활의 즐거움을 되찾자’는 내용이었으나 엉뚱하게 주부들에게 요실금과 이쁜이 수술의 필요성을 교육하는 셈이 되어 버렸다. 수술비를 충당하고도 남는 보험금도 아줌마들을 충동질했다. 현재 요실금 수술에 대한 의료수가는 본인부담을 포함해 100만원 안팎. 이쁜이 수술은 의료보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병원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80만원 정도. 결국 180만원을 들여 두 가지 수술을 한 후 500만원의 보험금을 타내면 300만∼400만원이 남는 장사인 셈이다. 한마디로 ‘돈도 벌고, 남편 사랑도 받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보험상품이었으니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던 것.



그러나 삼성으로서는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단순 계산상으로 200만 가입자가 모두 요실금 수술을 하고 보험금을 청구한다면 무려 10조원에 이르는 거액이 나가야 하기 때문. 삼성은 결국 올 3월 초 이 상품 발매를 중단하고 요실금 수술비 보장을 뺀 새로운 내용의 ‘신여성시대 건강보험’을 만들어 4월 초부터 발매하고 있다. 또 요실금 수술 보험금 청구에 대해서도 심사를 강화, 이쁜이 수술이 목적인 경우 보험금 전액을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사 골탕먹인 아줌마들의 ‘반칙’
이 과정에 일부 보험 계약자들이 집단 반발, 금감원 등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삼성이 계약자들의 역선택(보험금 지급사유 발생 확률이 높은 위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자진하여 보험금을 목적으로 가입하는 것)에 걸려든 것”이라면서 “약관상 의사들이 ‘이 계약자는 요실금 치료를 위해 수술을 했다’고 증명하면 보험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문제는 회사가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고, 다수의 선량한 계약자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 상품을 악용하는 계약자에게 과연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지가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시대 건강보험’은 삼성생명측에 여러 가지 상처를 남겼다. 보험 계약자와 일부 의사들의 잘못된 행태로 경영 손실을 입었으며, 이 상품을 개발한 사람들이 옷을 벗기도 했다. 또 6월 초 열리는 주총에서는 소매금융 담당 신모 사장이 물러나고 삼성증권 유석렬 사장을 후임자로 선임할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한동안 생보업계 관계자들의 단골 술 안줏감이던 이 사태로 삼성은 ‘관리의 삼성’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는 평. 대한생명 관계자는 “대한생명은 작년에 이 문제를 예견해 대책을 마련했는데 삼성은 올 들어서야 사태를 수습했다”면서 삼성 위기 관리 시스템의 문제점을 짚었다.

비슷한 상품을 팔았지만 요실금 특약을 넣지 않은 교보생명 관계자는 “처음 상품 개발을 할 때 영업 쪽에서는 요실금 특약을 넣자고 주장했으나 사내 의견 수렴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 요실금 특약을 뺐다”면서 “삼성의 경우 상품개발팀이 영업본부 소속이어서 영업적인 마인드로만 이 상품을 개발했는데 사내에서 이를 견제할 시스템이 없던 게 문제였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은 이 사태가 터진 후 조직을 개편하고 보험급여 심사 파트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품 개발을 잘못한 회사측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긴 하지만 실적을 올리기 위해 이 상품의 허점을 이용한 설계사들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일부 설계사들은 이 상품을 판매하면서 “보험료 몇 개월치만 납입하면 보험금 500만원을 탈 수 있다”고 선전했다는 것. 실제 삼성은 감사를 통해 일부 설계사들이 자신의 모든 계약자들에게 보험금 500만원을 탈 수 있도록 이 상품의 허점을 교육한 사실을 적발, 이들을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시대 건강보험’의 허점을 이용해 요실금 ‘특수’를 누린 일부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모럴 해저드에 대한 비판도 있다. 요실금 증상이 가벼워 굳이 수술까지 할 필요가 없는 보험 계약자들이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요실금 및 이쁜이 수술을 원할 경우 의사의 양식에 따라 다른 치료 방법을 권해야 함에도 무조건 수술부터 했다는 것.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설사 요실금 증상이 있다 해도 무조건 수술부터 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우에 따라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적절한 운동으로 극복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고, 수술은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 돈 몇 푼 벌려다 몸까지 망칠 수 있다는 경고다. 소문에 현혹해 이쁜이 수술을 생각하는 ‘여성시대 건강보험’ 계약자들이라면 명심해야 할 이야기다.



주간동아 2001.06.07 287호 (p38~39)

< 윤영호 기자yyoungho@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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