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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자유를 박대하는 나라

  • < 서병훈/숭실대 교수·전치학 >

자유를 박대하는 나라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네…. 해마다 5월이면 학생들이 이런 노래를 불러준다. 노래말이 너무 엄청나다 보니 듣고 있기가 민망하지만, 선생 노릇 제대로 하라는 반어법(反語法)적 추궁이라 생각하며 자성의 계기로 삼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들이 꽃 한 송이 달아주는 것이 싫지는 않다. 은근히 이날을 기다리는 마음도 없지 않다.

그런데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녀석이 가져온 가정통신문에는 참으로 딱한 사연이 적혀 있었다. 스승의 날이라고 꽃 한 송이 보낼 생각하지 마시라는 것이다.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면 충분하니, 제발 더 이상은 신경 쓰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럴까. 학부모들의 ‘사은’(師恩) 정성이 얼마나 지극하면 아예 학교 문을 닫을 궁리까지 하였을까. 이해는 하면서도 씁쓰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아파트 주변의 이런저런 학원 선생님들은 작으나마 선물보따리를 받는데, 진짜 주인공이라고 할 학교 선생님들은 꽃 한 송이 받을 수 없다. 잘못되어도 여간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이런 현상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겨울 등산의 백미는, 적어도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산정에서 찌개 끓여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런 재미를 금지하였다. 산을 보호하자니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찌개는 고사하고 아예 출입 자체를 금지한 산도 하나둘이 아니다. 산이 좋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인데, 각자가 조금만 주의하고 양심을 지킨다면 왜 이런 소소한 자유를 박탈당하겠는가.

영국의 사상가 J. S. 밀은 ‘자유론’이라는 책으로 유명하다. 그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설득력있게 강조한다. 설령 어떤 사람이 잘못된 판단 아래 본인에게 불이익이 될 일을 저지르려 한다고 하자. 이럴 경우에도 다른 사람이 당사자의 자유에 반해 특정 행동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 ‘자유론’의 핵심 명제다. 자유의 기본 원칙을 이처럼 명쾌하게 정리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러면서 밀은 자유를 누릴 ‘자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 매우 간단하다. ‘웬만한 수준의 상식과 경험’만 갖춘 사람이라면 절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어 보면 아무리 개인적`-`사적인 문제라 하더라도, 기본적인 양식을 결여했다면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밀은 19세기 중반 유럽의 시민들이 대부분 일정 수준 이상 올라섰다고 생각했다. 이 전제 위에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단언했다.

‘특정 지역 출신이 원죄’ 정치개혁 방안 너무나 한심

우리는 지금 21세기에 살고 있다. ‘자유론’이 출판된 지 150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우리는 스승의 날에 선생님에게 꽃 한 송이 보낼 수 없고, 추운 겨울날 산에 가서 라면 하나 끓여 먹지 못한다. 스스로 자유를 누릴 처지가 못 된다고 자학하며 살고 있다. 주인이 이끄는 대로 묵묵히 따라가는 강아지 신세와 크게 다를 바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런 마당에 정치개혁을 한다며 내놓은 묘안이 또 속을 뒤집어 놓는다. 지역 감정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후보자들의 출신지를 공개하지 말자, 선거일을 얼마 앞두고서는 지역별 지지도를 공개하지 말자 등등.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것이 원죄가 되지 않는 이상, 도대체 이것이 무슨 발상이란 말인가. 그렇게 한다고 지역 감정이 누그러지겠느냐는 방법론적 차원에서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올가미를 자청해 매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 처지가 한심해서 하는 말이다.

박정희 신드롬이 왜 생기는가. 자유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 먼 당신’ 또는 ‘개 발의 편자’에 지나지 않다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익숙해지면 사람답게 살 권리도 포기해야 한다. 김종필 같은 사람이 ‘소이부답’(笑而不答)이니 어쩌니 연막을 피우며 감히 대권을 넘보려 해도 입 닫고 살아야 한다. 자유를 이렇게 박대하는 나라가 대명천지에 또 있을까.



주간동아 2001.05.31 286호 (p104~104)

< 서병훈/숭실대 교수·전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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