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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商道는 없고 商術만 판친다

  • < 김성곤 서울대교수 · 영문학 >

商道는 없고 商術만 판친다

商道는 없고 商術만 판친다
며칠 전 텔레비전 뉴스를 보다가 그만 얼굴이 붉어진 적이 있었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상품이 발붙이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와 함께, 미국인 ‘바이어’가 나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한국상품은 견본과 납품된 물건의 질이 다르고, 보증수리 서비스가 잘 안 됩니다.” 그의 지적은 나중에야 어찌 되든 우선 합격하고 보자는(우리의 대입 수험생들도 그렇지만) 우리의 집단심리와, 일단 통과만 되면 사후 책임에는 별 관심이 없는 우리의 불성실한 태도를 너무나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용과 위상을 심각하게 실추시켰고, 결국 우리 상품들의 설자리를 빼앗아 가고 말았다. 견본과 납품용 물건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부정직한 눈속임이자 명백한 기만행위이며, 보증수리 서비스의 외면은 불성실과 신용불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직과 신용이야말로 상도덕의 기본인데, 우리는 바로 그 기본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러한 행위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예컨대, 우리는 그동안 매점매석으로 재벌이 된 허생과, 서민들을 속여 나라의 자산인 대동강을 팔아먹은 봉이 김선달을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동경하고 선망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부정축재자나 사기꾼이 오히려 능력 있는 영웅 취급을 받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상도(商道)보다는 상술에, 그리고 과정보다는 결과에만 집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물론 ‘사농공상’의 위계질서 아래 상업을 천시해온 우리 특유의 문화적 전통이 자리잡고 있다. 사실 남자나 양반은 돈이나 매매를 멀리하고 여자들과 하인들에게만 상거래를 맡기던 사회풍토에서 상도덕이 제대로 발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다 며칠 만에 한번씩 이곳 저곳 돌아가면서 서는 떠돌이 장은 더욱 상도덕 수립을 어렵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한곳에서 신용을 쌓는 것보다는 ‘한탕하고 뜨기’가 쉽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상업국가였고 그래서 상도가 발달한 영미의 경우에는 일상 대화나 사회관습도 상업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예컨대 ‘None of your business.’(참견하지 마) ‘It′s a deal.’(그렇게 하자) ‘I want some credit.’(내 공로를 인정해 줘) ‘I don′t buy it.(난 안 믿어)’ ‘Let′s trade seats.’(자리를 바꾸자) ‘payback’(복수) 또는 ‘I owe you.’(너에게 신세졌어) 같은 것들은 모두 상업에서 나온 표현들이다. 상업에는 정직과 신용, 그리고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상도가 발달한 국가는 그만큼 신뢰도가 높고 친절할 뿐만 아니라 모든 거래와 계산이 정확하게 이루어지며, 사회계약과 약속이행이 발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거짓말과 신용불량은 곧 치명적인 결점이 된다.



“부정 부패와 불신도 상도덕 부재에서 비롯”

불행히도 우리는 높은 수준의 상도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그 결과 신용과 신뢰로 구축된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지 못했다. 우리는 흔히 다른 나라를 상업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데, 사실 우리 자신들이야말로 상업주의에 빠져 있지 않나 반성해보아야만 한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음식에 중금속과 맹독성 화공약품을 넣고, 식품의 유효기간을 조작하며, 하천에 몰래 오폐수를 방류한다면, 또 결혼과 학벌과 재산을 출세의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저급한 상업주의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승객은 길거리에서 승차를 구걸하고 택시 기사가 행선지를 결정하는 사회, 또 고객은 식당 종업원의 눈치를 살피고 종업원이 특정 음식이나 주문의 수량을 강요하는 사회에 상도덕이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상도덕이 없는 사회에 예의와 정직, 그리고 신용과 신뢰가 있을 리 없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뿌리깊은 불신은 결국 상도덕의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상도가 땅에 떨어지고 오직 질 낮은 상술만 판치는 이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인생의 가치와 인간의 도(道)를 가르치는 인문학의 소중함을 돌이켜보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주간동아 2001.03.22 276호 (p96~96)

< 김성곤 서울대교수 · 영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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