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9

2001.01.25

최명룡 감독 퇴진 “그놈의 입 때문에…”

  • < 고진현/ 스포츠서울 체육팀 기자 jhkoh@sportsseoul.com >

    입력2005-03-15 14: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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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명룡 감독 퇴진 “그놈의 입 때문에…”
    성적에 자유로운 감독은 없다. 반환점을 돌며 열기를 내뿜고 있는 2000~2001 애니콜 프로농구 코트에는 하위팀 감독들이 잇따라 옷을 벗으면서 싸늘한 냉기가 감돌고 있다.

    9위팀 삼보 엑써스 최종규 감독은 지난 3일 성적부진을 이유로 스스로 옷을 벗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꼴찌팀 동양 오리온스 최명룡 감독도 같은 이유로 자진사퇴의 길을 걸었다. 두 사령탑 모두 끝없이 추락하는 팀 부진에 속을 끓이다 똑같이 중도 하차했지만 외부에 비친 모습은 사뭇 달랐다. 삼보 최감독을 향해선 ‘아름다운 퇴장’이라며 박수가 터져나온 반면 동양 최감독에겐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던 게 사실. 사퇴라는 동일한 결과였지만 이렇듯 반응이 다른 이유는 뭘까.

    삼보 최감독의 사퇴에는 구단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사퇴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최감독은 마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 것처럼 환한 웃음을 지었고 오히려 풀이 죽고 당황한 쪽은 구단측 관계자들이었다.

    새로운 지도스타일로 팀을 바꾸지 않는 한 하릴없는 패배는 계속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의 사려 깊고 온화한 성품에 호감을 갖고 있던 구단측은 사퇴를 한사코 만류했지만 그의 황소고집은 요지부동. 지휘봉을 김동욱 기술고문에게 넘긴 그의 전격 퇴임은 프로농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사령탑이 되기 위해 선후배의 의리도 온데간데없이 남을 밟아야 살아남는 한국 프로스포츠 풍토에선 그야말로 메가톤급 폭탄선언이었다. 팀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버린 최감독의 명예로운 퇴진에 찬사가 쏟아진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양 최명룡 감독은 비록 자진사퇴의 길을 밟았지만 결단의 시기를 놓쳐 짙은 아쉬움을 던진 케이스. 그는 개막 11연패에서 허우적댔을 때 이미 한 차례 혹독한 경질설에 시달려 왔다.

    1월4일 대구 신세기전에서 동양이 102 대 82로 대패하며 7연패에 빠진 뒤 결국 사단이 났다. 경기가 끝난 뒤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최감독의 ‘말 실수’가 일파만파로 확대된 것.

    삼보 최감독의 자진사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얄미운(?) 질문에 동양 최감독은 “이미 생각했고 지금도 심각하게 고려중”이라는 짤막한 코멘트를 던졌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구단 관계자들은 ‘손 안 대고 코풀게 생겼다(?)’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최감독의 마음을 간파한 구단은 어쩔 수 없이 경질이라는 초강수를 준비했다.

    다음날인 5일 새벽, 승부세계에서 부지불식간에 단련된 스포츠인 특유의 직관이 꿈틀거린 최감독의 정보망에 구단의 경질 방침이 잡혔고, 결국 최감독은 정단장이 묵고 있는 호텔 방문을 두드린 뒤 스스로 백기를 들고 말았다.

    엉뚱하게도 동양 최감독의 사퇴 소식에 가장 가슴 아파한 쪽은 삼보 최감독. 그는 자신의 사퇴가 알게 모르게 최감독의 퇴진에 영향을 끼쳤다는 자책감에 속을 끓였다.

    표면적으로는 똑같이 자진사퇴라는 절차를 통해 옷을 벗었지만 이면에 감춰진 속사정은 그렇게 달랐다. 물러날 때를 아는 지혜, 명예로운 퇴장이라는 찬사를 받은 감독과 쓸쓸히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 감독의 빛과 그림자는 이렇도록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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