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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동구마천의 통돼지구이

실처럼 일어나는 담백한 육질

  • 송수권

실처럼 일어나는 담백한 육질

실처럼 일어나는 담백한 육질
구불구불 추성골을 기어올라 벽송사(碧松寺)에 닿았다. 일주문도 없는 장승각 앞에서 또 한번 자지러지게 웃는다. 변강쇠가 불땀을 놓아 타다 만 장승 두 개가 그 장승각 안에 보관돼 있다. ‘기물타령’이 떠올라 이번엔 너털웃음까지 웃는다.

“저 여인 반소하여 갚음을 하느라고 강쇠 기물 가리키며 이상히도 생겼네. 맹랑히도 생겼네. 전배사령 서려는지 쌍걸남을 느직하게 달고, 오군문군뢰던가 복덕이를 붉게 쓰고, 냇물가에 물방안지 떨구덩 떨구덩 끄덕인다. 송아지 말뚝인지 털고삐를 둘렀구나. 감기를 얻었던지 맑은 콧물은 무슨 일꼬. 성정도 혹독하다. 화 곧나면 눈물난다. 어린아이 병일는지 젖은 어찌 게웠으며 제사에 쓴 숭어인지 꼬챙이 굶이 굽어 있다. 뒷절 큰방 노승인지 민대가리 둥글다. 소년인사 다 배웠다 꼬박꼬박 절을 하네. 고추 찧던 절구댄지 검붉기는 무슨 일꼬. 칠팔월 알밤인지 두쪽 한데 붙어 있다. 물방아 절굿대며 쇠고삐 걸랑 등물 세간 걱정없네.”

오다가다 청석관에서 만난 강쇠와 옹녀, 그 유랑민의 설움이 성기 속에 노출되어 있다. 정착생활에 대한 바람이 강쇠의 성기를 통해 세간살이 등물로 표현되어 있다.

이처럼 세간살이를 연상하는 옹녀의 모습은 희극이기 전에 처절함이 앞선다.

실처럼 일어나는 담백한 육질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동 얼음골 밑 동구마천(지리산 칠선계곡)이 바로 이곳이다. 벽송사를 내려다 보며 통돼지구이로 이름난 두레박 흙집(이진호·39·055-962-5507)이 한 채 서있다. 이 골짜기로만 밤 별들이 다 쏠린 듯한 길을 밟고 올라간다. “변강쇠와 흥부는 우리 행님(형님)인디….” 제법 똑똑한 청년에게 말을 걸었더니 이런다. 파계승, 초라니, 풍각쟁이, 마종, 떱득이 등을 주축으로 팔도장촌을 떠돌다온 무리들이 터를 잡았던 곳, 두레박 흙집에 닿았다.



뻘건 장작불 속에서 통돼지가 익고 먼저 온 사람들의 노래판이 왁자하다. 우리 일행이 잘 안방을 덥히느라 군불자욱이 마당에까지 흘러오고 불땀을 보는 이진호씨 얼굴이 벽송사의 장승에 겹쳐 ‘수상끼’가 좍좍 흐른다. 느물느물 웃는 것도 그렇고 세상 바쁜 줄 모르고 어기적거리는 것도 꼭 그렇다.

마늘, 생강, 향료, 술을 섞어 갖은 양념을 통돼지구이에 계속 바르면서 이제 다 됐다고 참나무 장작 불땀을 놓는다. 통돼지는 쇠꼬챙이에 꽂혀 철판 위에서 계속 돌고 일행들의 노래가락도 계속된다.

이윽고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열시간을 구웠다는 통돼지가 놓이고 칼질이 시작되어 부위살이 접시에 낱낱이 분배되었다. 그런데도 통돼지 머리는 히물히물 웃으면서 주둥이를 하늘로 쳐들고 있다. 옹녀가 저 모습을 보았다면 어떠했을까. 치마폭에다 싸들고 줄행랑을 쳤겠지. 불빛 속에서 순간 떠오른 생각이다.

아니나 다를까, 짖궂은 시인이 그 주둥이에 만원권 지폐 한 장을 물리며 “오늘밤 옹녀는 내가 책임진다”고 농을 퍼붓는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나온다.

‘너희들이 먹어도 좋은 것은 이런 것들이다.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 딱정벌레 종류와 여치 종류들이다’.

실처럼 일어나는 담백한 육질
구약성서 ‘레위기’의 기록이다. 유목생활에 지치다 못해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식탁을 들고 이동하는 민족의 비극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보다시피, 우리 식탁에는 이처럼 돼지머리가 놓여 있다. 붙박이식탁이란 얼마나 웃음과 해학이 놓인 식탁인가. 우기가 되면 500피트 상공을 날아올라 거대한 구름군단으로 해를 가리는 그 개미떼를 탈취하기 위한 싸움. 그런 곤충이 우리에게 혐오스럽듯, 이슬람교도와 유태인에겐 돼지가 혐오스러운 동물이다.

힌두교에서 먹지 않는 암소는 수소와 우유, 쇠똥을 제공함으로써 신성시된다. 웃고 있는 돼지머리는 분명히 상서롭고 해학적이며, 그 주둥이에 지폐를 물려주는 ‘고사행위’는 부의 상징이다. 하나같이 무슨 복권에 당첨됐다는 사람들은 돼지꿈을 꾼다. 이는 민족의 유전자에 배태된 원형심상이 늘 돼지와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두레박 흙집 통돼지구이는 목살, 갈매기살, 갈비살 할 것 없이 살결이 실처럼 일어나 그 감미로움을 더해 주는 것이 노하우다. 주인 이씨는 또 20년째 자일을 걸고 천왕봉 바위지기로서 석이버섯을 따온 변강쇠다. 석이버섯 맛을 아는 사람은 옹녀의 기물타령만큼이나 반할 만하다(한근 600g, 3만원).



주간동아 2000.12.28 265호 (p90~90)

송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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