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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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황제’ 이주일 요리도 ‘짱’

김장·젓갈·해장국 등 뭐든지 척척 … “정성과 나눔이 최고 비법” 남다른 맛의 철학

  • 입력2005-06-13 13: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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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미디 황제’ 이주일 요리도 ‘짱’
    참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수많은 바위와 소나무들이 자리잡고 있는 널따란 정원에는 군데군데 사람들이 걸터앉아 쉴 수 있는 의자와 평평한 돌들이 놓여 있었고 털이 하얀 진돗개와 복슬강아지가 어울려 놀고 있었다. 3000여평이나 되는 채소밭과 축사를 지나 현관에 들어서기까지 이 집이 누구의 소유인지를 알리는 표식이나 문패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연예인들이 즐겨 타는 커다란 밴 승용차를 발견하고서야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다.

    커다란 전면 창으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거실에서 기자를 맞이한 이주일씨(60·본명 정주일)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편안한 모습이었지만 잔뜩 목이 쉬어 있었고 피로 때문인지 좀 지쳐 보였다. 그는 바로 전날까지 3일 동안 서울 코엑스 컨벤션홀 무대에서 ‘OK! 이주일쇼’ 공연을 가졌다. 공연장이 너무 커 무리하게 목을 쓴 결과였다.

    “2만5000명 정도 다녀갔어요. 너무 감격해서 내가 울었다니까. 경제도 이렇게 어려운데, 공연을 보겠다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으니…. 올해가 환갑인데, 잔치 대신 한 공연이에요. 지방공연도 줄줄이 잡혀 있어서 쉴 틈이 없어.”

    ‘코미디 황제’ 이주일 요리도 ‘짱’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코미디의 황제’라고 부른다. 시대가 변했지만 서민들의 추억 속에서 그의 코미디는 여전히 살아 있고 그의 모습과 연기를 보고 싶어한다. 이씨의 소망 역시 일흔이 돼도 무대에 서서 ‘저 양반 아직도 좋다’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남을 웃기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주일씨에겐 숨겨진 재주가 또 하나 있다. 음식 만들기가 바로 그것이다. 전업주부들도 어려워하는 김장, 메주로 된장-간장-고추장 담그기, 가마솥에 불 때서 밥 짓기, 옛날식으로 국 끓으기, 나물 무치기 등이 모두 그의 특기이자 취미다. 이처럼 그의 요리는 지극히 서민적이라는 게 특색이다. 무명 시절 지긋지긋한 가난을 겪었던 그는 ‘성공’한 지금도 구수하고 텁텁한 입맛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가 가장 먼저 안내하는 김치저장고에는 어디선가 공수해온 진흙 속에 10개 가까운 단지가 묻혀 있었다. 단지 뚜껑을 열어 보이며 그가 혀를 끌끌 찬다. “김장은 날짜 맞추기가 중요한데, 이번엔 타이밍이 안 맞았어. 날이 따뜻해서 이렇게 부글부글 올라오잖아. 이렇게 시기를 놓치면 김치맛이 제대로 안 나요.”

    이씨는 볏짚으로 지붕을 얹어 시원함을 유지하도록 만든 이 저장고에 밤이면 선풍기를 틀어 둘 정도로 김치맛에 신경을 쓴다. 단지들도 모두 옛날부터 쓰던 것들로 그야말로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같은 재료를 쓰지만 김치맛은 집집마다 다 다르죠. 마늘 파 배추 고추 모두 우리 밭에서 나는 걸 쓰고, 물도 지하수만 써요. 너무 오래 재면 김치가 질겨지니까 시간도 신경을 써야 해. 무도 채칼을 안 쓰고 일일이 손으로 다 썰다보니 김장 한 번 하고 나면 우리 부부 손이 다 퉁퉁 붓는다니까.”

    김장은 그의 집에서 가장 큰 연례행사다. 보통 1주일 정도 하는데, 그 양이 배추 300포기에 무 400개. 사시사철 손님이 많은 그의 집에선 그것도 모자란다. 그와 알고 지내는 정-관-재계 및 연예계 인사들이 인근 골프장에 왔다가 그의 집에 들러 식사를 하고 동네 주민들도 수시로 드나들기 때문이다. 이씨의 김치맛에 ‘감동’한 사람들이 아예 비닐봉지에 싸 가지고 가는 바람에 독에서 꺼내기가 무섭게 없어진다.

    ‘서울에서는 우리 집에서만 볼 수 있는 김치’라고 그가 자랑하는 명태김치는 조리법과 맛이 아주 독특하다. 생태를 꾸둑꾸둑하게 말려 뼈를 발라내고 그 속에 양념을 집어넣은 다음 배추로 싸서 김장배추 사이사이에 한 마리씩 넣는다. 이것을 김치처럼 익혀서 이듬해 봄 썰어 먹으면 명태살은 쫄깃쫄깃 씹히고 배추는 시원해서 그 맛이 일품이다. 머리 쪽은 김치찌개를 끓일 때 함께 넣어 끓이면 담백하고 매콤한 맛이 난다고. 동태 머리를 푹 고아서 국물을 내 둔 것도 있는데, 된장국 끓일 때 이 국물을 넣으면 구수한 맛을 더할 수 있다고 ‘비법’을 가르쳐준다.

    김치저장고에 매달려 있는 시래기 꾸러미, 무쇠솥 옆에 쌓여 있는 소나무 땔감, 짚을 태워 거름을 준 콩나물시루, 나무에서 따낸 감을 차곡차곡 저장해 둔 항아리에 이르기까지 집안 곳곳에 이씨의 정성어린 손길이 닿아 있다. 그가 집안에서 가장 신경을 쓰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장독대. 볕이 좋은 날, 그는 장독 뚜껑을 열어 볕과 바람을 쏘이고 해가 지기 전에 닫는다. 집을 비워둘 때면 장독대 걱정에 아침저녁으로 전화를 해대는 그다. 장독은 한결같이 속에 약칠이 안 된, ‘숨 잘 쉬는’ 장독만 골라서 쓴다고.

    얼마 전 지방에 간 사이 비를 맞아 엉망이 된 된장독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마음이 아팠다는 그를 보고 있자니, ‘음식맛은 정성’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가 속상한 일은 또 있다. 언제나 직접 콩을 빻아 메주를 쑤는데, 올해는 힘들어서 기계로 빻았더니 메주덩어리가 이리저리 갈라져버린 것. 3일은 이불을 덮어서 말리고, 또 3일은 햇볕에 말리는 등 메주 하나에 들어가는 정성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의 사위는 “장인어른이 하는 반찬이 제일 맛있다”며 입맛을 다시고 일곱살 난 외손녀도 할아버지의 음식맛에 길들여져 피자, 햄버거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는다. “주부들은 재료를 아끼지만 나는 아끼지 않고 푹푹 써서 그렇다”고 말하는 그의 손맛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 강원도 고성군 통천면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따라 부지런히 부엌을 드나들었다. 사내녀석이 부엌에서 논다고 혼도 났지만, 반찬 만들고 김치 담글 때면 어머니를 거들어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코미디 황제’ 이주일 요리도 ‘짱’
    그 덕분에 ‘요리의 대가’가 됐지만 그가 하는 요리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 그저 집앞 채소밭에서 나는 푸성귀들을 따다가 겉절이로 양념해 먹고, 삶거나 데쳐서 나물로 무치고, 명태 내장으로는 창란젓을, 대가리는 귀세미젓을, 알은 명란젓을 담가먹는 것이다. 어릴 때 많이 먹었던 가시리묵으로 소금국을 끓이거나 밀가루를 묻혀 쪄서 간식으로 먹기도 한다.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도 직접 끓여먹는 이씨는 “해장국엔 기름이 뜨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담백한 콩나물국에 파만 넣고 푹 끓여서 새우젓을 반 숟갈 넣거나, 무를 채썰어 들기름에 살짝 볶아 쇠고기를 넣고 국물이 많이 우러나게 끓여 먹으면 숙취해소엔 그만이라고. 그래도 속이 거북할 땐 채소밭 한구석에 굴을 파고 묻어둔 무우를 하나 꺼내 칼로 쓱쓱 깎아 먹는다. 시원한 무맛에 술이 확 깬다.

    “이건 얼갈이배추고, 이건 냉이고, 여기 오리지널 산딸기도 있지.”

    채소밭에 서있는 그는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이곳에서 배추 쑥갓 상추 미나리 시금치 호박 등을 키우느라 그에겐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건강하잖아. 여기서 일하다 보면 잡념을 가질 새가 없어. 몸은 바쁘지만 스트레스도 없지.”

    농사일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10여년 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이씨. 어렸을 때 살던 모습 그대로 재현해놓고 어머니를 모셔왔지만 얼마 계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그는 이곳에서 땀흘려 일하고, 그 수확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즐기는 삶을 살고 있다. 담을 높이 올리고 구중궁궐 속에 꼭꼭 숨어사는 사람들이 그의 눈엔 어리석고 외로워 보일 뿐이다.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한 이곳에서 만난 이씨의 모습은 가마솥에 밥 짓는 냄새만큼이나 구수하고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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