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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기차는 떠나가네…

마지막 비둘기호 증산↔구절리 동승기…밤새울 추억 싣고 ‘덜컹덜컹’ 역사 속으로

기차는 떠나가네…

기차는 떠나가네…
낡은 것은 사라진다. 그게 섭리다. 빛 바래고 오래된 사진첩에서만 볼 수 있음직한 우리나라 마지막 비둘기호 기차도 그렇게 사라져갔다. 증산에서 출발해 정선선의 마지막 기착지 구절리(九切里)까지 45.9km를 잇는 한량짜리 비둘기호 기차. 일명 ‘꼬마열차’로 더 알려진 기차다.

●11월13일 18시25분 정산역

바깥은 벌써 짙은 어둠. 해가 일찍 지는 강원도 산골 역사(驛舍)는 스산하기까지 하다. 예로부터 부임하는 군수가 두번 운다는 정선 땅이다. 유배지나 다름없는 궁벽한 산골이기에 막막한 심정에서 흘리는 눈물이 한번, 나중에 떠날 때 정 많은 정선 사람들과 헤어지기 어려워 흘리는 눈물 한번이다.

구절리로 향하는 오늘의 마지막 기차 비둘기 1707호 열차가 도착하려면 아직 5분여의 시간이 남아 있다. 역 대합실에는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 예닐곱 명이 차가운 나무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다. 그곳에는 아무런 번잡함이 없다.

정선군 북면에 거주하는 김진영씨(69) 역시 대합실에서 차가운 침묵 속에 앉아 있던 승객. 구절리 광산의 광부였던 그는 석탄을 캐기 시작한 지 20년만인 87년에 그 일을 그만두었다. 사고 때문이다. 그의 오른손은 하얀 목장갑으로 가려져 있었다. 팔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내일이면 비둘기호 열차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별다른 감흥이 없는 듯 보였다. “통일호로 바뀌면 값이 비싸질텐데… 서민들에게는 큰 부담이지.” 그의 걱정은 오직 부담이 늘어나는 것밖에 없는 듯했다.

“옛날에는 (객실 차량을) 너더댓 개씩 끌고 다녔어. 북면 하나의 인구가 3만 명이 넘었지. 지금은 3000도 안 돼.”

그의 얼굴에는 언뜻 ‘사라진 영화(榮華)’에 대한 그리움이 스쳤지만 이내 쓸쓸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연탄 없이 겨울나는 일은 생각도 못하고, 그의 팔뚝이 아직 왕성한 노동력을 자랑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는 수원에 산다는 장남이 자랑인 듯했다. 인하대 공대를 나와서 삼성전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삼성’에 힘을 주었다. 맏아들에게로 가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공기 좋고, 조그만 집이라도 있으니까… 좀 더 있다 나갈 거야.”

잠시 말을 끊은 그가 덧붙이는 말. “영감 할머니만 사는 집 참 많아요. 우리 같은 집 참 많다고….”

한참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조작에 열중해 있던 정선고 1학년 김설원군(17). 그는 증산에 집이 있어, 구절리로 갔던 기차가 다시 정선으로 돌아오려면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려야 하는데 벌써부터 역에 나와 있었다. “기차가 싸고 빠르지요. 그런데 아침 기차는 너무 이르고, 역까지 나와서 또 기다려야 하고… 요즘은 애들도 기차 잘 안 타려고 해요. 한달에 10만원 내면 전세버스가 집 앞까지 데려다 주거든요. 통일호로 바뀌면 칸칸이 앉아서 예전처럼 앞좌석 사람들이 하는 행동 보고 얘기 듣고 하는 재미가 없어지니까 물론 아쉽죠.”

18시34분. 기차는 구절리를 향해 출발했다. 구절리까지는 나전과 여량(아우라지) 두 개의 간이역이 더 있지만, 역이라기보다 정차장에 가깝다. 나전역은 대합실도 없고 철로변에 역 표시만 있을 따름이다.

오늘의 차장은 오석두씨(43). 작년 9월1일부터 일년 넘게 증산↔구절리 구간 열차만 탔다. 그런 그도 비둘기호는 오늘로써 마지막이다. 하루 교대로 일하기 때문에 내일은 담당 차장이 바뀐다. 그는 기차가 출발하고 표를 걷기 무섭게 기차 맨 뒤 방송실에 가서 저녁 도시락을 먹는다. 나전에 도착하려면 약 10분의 여유가 있다. 그는 “증산에 다시 돌아가면 20시30분인데 그 시간에는 식당이 다 문닫아서 저녁 먹을 데도 없다”고 말한다.

기차 안에는 등산복 차림의 뜻밖의 손님이 있었다. 서울 송파구에서 온 이태현씨(60). 저녁 식사 때 반주를 한잔 걸쳤는지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그는 민둥산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이라고 했다. 말을 붙이자 대뜸 “나는 참 의미 있는 기차를 탄 것”이라며 “이 열차를 참 사랑한다, 정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수학 교사를 지낸 그가 정선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대 문리대 2학년이던 1963년 겨울방학 농촌 봉사활동 때였다고 한다. 구절리에는 왜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구절리의 절자가 무슨 절자인지 압니까. 절박하다, 벤다는 의미의 절(切)자입니다. 구절리는 폐광촌이죠. 여기 남아 있는 분들은 아무 데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기를 와야 인생이 뭔지 알아요. 나를 되새기기 위해 이곳에 옵니다.”

기차는 종착역에 도착했다. 도중의 나전과 여량에서 대부분 내리고 끝까지 남은 승객은 단 네명. 이태현씨와 이씨에게 민박집을 알선해주겠다는 어떤 아주머니가 기차에서 내렸는데도 기차에서 내리지 않는 한 할머니와 꼬마가 있었다. 여량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방순옥씨(62). “손자가 기차 타고 싶다고 해서 탔대여. 비둘기호가 내일로 마지막인지 몰랐대여.” 강원도 특유의 어투로 방씨는 “내가 ‘콧등치기 메밀국수’를 만든 사람이래여. 시간 나면 한번 오시래여”라고 자랑한다. 콧등치기 메밀국수는 굵고 투박한 면발이 끊어지면 콧등을 탁 친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으로 정선 지역 특유의 음식이다. 손자가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꼬마(전찬웅)는 자기에게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세살”이라고 또박또박 말한다. 맑은 눈망울이 흐릿한 비둘기호 객실의 불빛에도 또렷했다. 꼬마는 나중에 이 기차를 기억할 수 있을까?

19시15분. 멈춰 선 기차의 육중한 나무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한 아주머니가 올라섰다. 차장 오씨가 말했다. “저 아주머니를 인터뷰해야 해요. 우리 기차 단골이니까.” 오씨는 기차에 타는 대부분의 손님들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날이나 휴일 관광객들을 제외하면 많아야 30명 정도의 승객만이 기차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구절리에 사는 최옥규씨(47)는 지금이 출근길이다. 나전에 있는 두부공장에서 새벽 4시반까지 근무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두부 배달차를 이용한다. ‘구절리 두부’는 정선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원래 공장이 구절리역 앞에 있었는데 나전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최씨는 매일 이 기차를 탄다.

기차는 다시 구절리를 떠나 증산으로 향했다. 창 밖으로는 컴컴한 어둠뿐이다. 텅 빈 기차의 침묵을 차장 오씨가 깼다. “지금 이 노선이 연간 30억원 정도 적잡니다. 통일호로 바뀌면 적자 폭이 50억원 정도로 늘어날텐데…. 기차가 바뀐다고 편해지는 것도 없어요.”

방금 전까지 좌석 위에서 뛰면서 놀던 꼬마 찬웅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기차가 10분 만에 여량에 도착하자 방씨가 손자를 등에 업고 내린다. 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며느리가 얼른 자신의 웃옷을 벗어 찬웅이를 덮어준다. 그들은 금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구절리로 들어가는 첫 기차가 오려면 아직 30여분의 시간이 남았다. 역장 박일선씨(54)며 역무원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정선역에서 근무하는 역무원은 모두 6명. 세 명씩 교대한다. 역무원 이상걸씨가 “밤새도록 서울 등지에서 아쉬워하는 전화가 많이 왔다”고 말했다. “탄광 없어진 게 93년입니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입이 꽤 됐어요. 명절 때 되면 기차표 예매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습니다. 지금은 명절 예매가 한 두 사람에 불과해요.” 역무원 김재희씨의 말이다.

6시40분이 되자 난데없이 얼굴도 아직 곱고 옷차림부터 다른 도시 할머니 한 분이 역무원실에 들어온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곽동옥씨(67). 곽씨는 어제 아침 청량리에서 정선선 열차를 타고 증산을 거쳐 정선까지 온 참이다. “생전 처음 와본 곳인데 깜깜하고 얼마나 무섭든지… 여인숙에는 무서워서 못 간다고 역장님 붙잡고 통사정했지요. 그랬더니 역장님이 관사로 데려가 주셨어요. 역장님 어머니하고 얘기하느라 밤 꼬박 새웠어요. 해외 여행은 많이 했는데 막상 국내는 다녀본 곳이 없어서 한 바퀴 돌겠다 작심하고 지도 펴들고 계획을 짰지요.” 이런 도시 할머니가 어떻게 이곳 오지까지 혼자 여행을 왔는지 그저 그 마음에 놀랄 따름이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구절리까지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랴 싶었는데 기차에는 뜻밖에도 4명이 타고 있다. 나전서 자영사업을 하는 김홍민씨(59), 여량의 유치원 선생님 이정선씨(24), 미처 이름을 물어보지 못한 이발사 두 명. 모두 이 시간 기차의 단골 멤버들이다.

광부 출신 김씨는 아침부터 열을 올리고 있다. “공적자금 투자한 은행들 퇴직금 누진제도 없애고 임금 인상도 없다는데 진작 그랬어야 해. 적자 보면 공적자금 또 주겠지 하니까 무슨 일이 돼? 우리는 돈 30만원 빌리려고 해도 몇 명씩 (보증) 세워야 하는데. 공적자금 없앤 녀석들 모두 처벌해야 돼. 진짜 살기 싫어. 멀리 가고 싶어.”

12월이면 환갑이 된다는 김씨는 유난히 젊게 보였다. “젊게 보여도 속으로 많이 병들었어. 일년 중 열 달은 산을 탈 거야. 진폐증 걸리면 산을 많이 타서 폐활량을 증대시켜 줘야 돼. 친구들도 많이 죽었지”라며 “환갑 잔치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원생이 45명인 ‘여량 어린이집’ 선생님 이씨는 이 기차로 통근한 지 벌써 2년이 됐다. “매일 보는 분들이니까 하루라도 누가 못 타면 걱정들을 하죠. 주머니에서 사탕도 꺼내 주고, 귤 하나라도 같이 벗겨 먹고 그래요. 얘기도 많이 하죠. 누가 조금 늦으면 기차가 기다려요. 차장님이 기차 안 탈 때는 ‘언제 못 타요’하고 기차에 붙여놓으래요. 이렇게 마주앉아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니까 정말 아쉽네요.”

기차가 나전쯤 다다르니까 날이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역장 박씨는 기차의 맨 뒤에서 바깥 풍경을 하염없이 구경하고 있다. 비둘기호의 마지막 운행이라는 감회 때문일 것이다. 정선 일대의 역에만 근무한 지 벌써 12년이 넘는 역장이다.

서울에서 온 곽씨와 얘기에 여념이 없는 역장 어머니 최금업씨(81)도 오늘은 이 기차에 특별히 올랐다. 그녀의 인생 중 마지막 비둘기호 여행일 터이다.

7시24분. 기차는 구절리에 도착했다. 역장 박씨는 기차에서 내려 구절리역 인근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역이라지만 역무원 하나 없는 곳이다. 지난해 9월1일자로 역무원이 없어졌다. 역장은 “옛날에는 이 역에 힘있는 사람만 왔어요. 나 같은 사람은 오지도 못했죠”라고 말한다. 역 근처에 ‘일일 1회 열차를 이용합시다’라고 쓰인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승객이 너무 없어 노선이 폐쇄될 것을 염려하는 구절리 주민들이 걸어놓은 플래카드다.

7시45분. 기차가 떠날 시간이 되자 승객이 14명으로 늘어났다. 학생 네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 고령자들이다. 구절리에 요양하러 왔다가 서울 아들 집에 다니러 가는 노부부, 강릉서 전학을 와 어제 처음 학교(여량중)에 갔다는 중2 여학생, 구절리에 온 지 오늘이 꼭 한달째 된다는 공무원 출신 소설가 지망생 송모씨(54)…. 마지막 비둘기호는 그렇게 각종의 사연을 담은 이들을 싣고 구절리를 떠났다.

8시20분. 다시 정선. 증산으로 부식거리 수령하러 가는 군인 등 갑자기 승객이 늘어나 객실이 가득 찼다. 차장 오씨는 “오늘 이상하네. 이렇게 손님이 많을 이유가 없는데… 마지막 기차라는 걸 알기 때문인가?”라고 혼잣말을 한다. 참으로 오랜만에 배불리 승객을 채운 기차는 다시 증산으로 향한다. 증산까지 31분 동안의 여행이다. 차장 오씨와는 증산역에서 작별을 했다. 하루 두 차례 구절리까지 들어가는 오후 6시 마지막 기차에는 다른 차장이 타게 된다.

●11월14일 19시20분 구절리역

마지막 운행을 위해 비둘기 1708호가 플랫폼을 서서히 떠났다. 경유를 태워 난방을 하는 기차 객실의 매캐한 냄새도 이제 마지막이었다. 마지막 비둘기호 기차는 철도청 테마 파크의 기념품으로 장식되거나 아니면 어느 민간인에게 팔려 카페로 이용될 운명이다.

경적 소리가 산간 마을을 한 차례 뒤흔들고 마을을 끼고 흐르는 송천(松川) 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산첩첩 물첩첩 눈물첩첩의 폐광촌도 깊이 잠들기 시작했다. 그날 밤 구절리를 떠나는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주간동아 2000.11.30 261호 (p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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