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9

2000.08.31

세상의 진실에 대한 ‘렌즈의 반란’

  • 입력2005-10-11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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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진실에 대한 ‘렌즈의 반란’
    이미지는 우리를 잡아먹고 있다. 이미지는 생명과 번식력을 지녔다. 이미지는 권력이며 지향해야 할 유토피아다. 소위 ‘시뮬라크르’(모조)의 시대에 살면서 이미지는 그 자체로 현실이 되어버렸다. 차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건도 우리에겐 단지 하나의 부호로, 감각적 이미지로 다가온다. 거대한 걸프전도 컴퓨터 모니터상에 존재하는 부호들의 집합일 뿐이다. 우리는 하늘에서 격추당한 실제 비행기보다도 화면상에 점멸하는 부호가 훨씬 더 실제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가상이 실재를 지배하고 실재가 가상을 모방하는 시대, 그래서 실재와 가상의 이분법적 위계질서가 무참히 깨져버린 이 현실 속에서 가상의 이미지는 우리의 세상에 대한 다시 보기, 시각적 인식의 문제에 대한 커다란 패러다임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현실과 가상의 문제, 다시 말해 시각적인 재현의 문제를 손쉽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예술이 바로 사진이다. 사진처럼 대중적이고 즉각적인 매체가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오늘도 인물과 풍경을 찍고, 또한 수많은 카메라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찍히는 대상, 다시 말해 욕망의 대상에 집착한다. 그것은 그 실재를 손쉽게 기록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소위 사진은 증거능력성 기록성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는 이제 아무도 이런 증거능력과 객관성에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 얼마간의 조작과 연출을 통해 진실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는 암실에서의 화학적 요법과 네가필름의 조작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풍경, 초점 심도 톤 프레임의 조작 등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 현실, 지시적 대상이 없는 무제 사진, 인물이 주가 된 배경사진과 그 인물이 없어진 똑같은 풍경사진, 주민등록증 사진과 같은 사회적 틀 속의 사진, 같은 대상에 대한 작가들의 다른 해석 이미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된 인물사진, 정교한 수정을 거쳐 변형된 남성성과 여성성의 혼합 사진 등이 소개되고 있다.

    기존의 상투적이고 관념화된 사진의 장르 개념을 전복하고 제도화된 사회적 시각 방식에 대한 반란을 시도하고 있다. 결국 그것은 실재와 재현이라는 사진의 본질적인 화두에 머물 수밖에 없는데 연출과 조작을 통해 관객의 눈을 회의하게 만드는, 그래서 세상에 대한 낯선 인식을 시도하게 만드는 사진의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인가, 아니 진실일 필요가 있는 것인가.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붕괴된 이런 환경 아래서 이제 인간의 눈은 그 자체의 존재론적 힘을 수없이 조롱당하며 대상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는 무기력한 시대로 접어들었음으로 인해 아파해야 하나 보다.

    “나는 오늘 화장실에 버려진 성인잡지의 한쪽을 보았다. 농염한 포즈로 나의 시선을 흡입하고 있는 여자에게선, 그러나 있어야 할 음모가 없었다. 그녀는 음모를 사전에 제거한 것일까, 아니면 잡지사 디자이너가 컴퓨터로 무모하게 제거한 것일까. 누구의 음모일까. 존재해야 할 것이 부재하는 그 현실 속에서 나도 이미 없었다.” 9월3일까지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이후 서울 아트선재센터와 인사동 사진마당). 문의:054-745-7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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