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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임덕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집권 후반기 통치력은 과연?…남북 교류 호재 속 정치 불안정·경제 개혁 여부 변수

“레임덕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레임덕은 제발 틀지 마세요~ DJ”
김대중 대통령은 8월22일 경제정책조정회의의 정례회의에 참석했다. 당초 이 회의는 새 경제팀이 들어선 후 8월18일 처음으로 열릴 예정이었으나, 김대통령이 직접 참석하기로 결정되면서 일정이 22일로 연기됐다. 대통령의 경제정책조정회의 참석은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다.

김대통령의 경제팀 정례회의 참석은 두 가지 분석을 낳게 한다. 그 하나는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의 새 경제팀에 김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면서, 집권 후반기를 맞아 경제현안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다. “남북문제에만 신경쓰느라 내치(內治)는 방치하고 있다”는 야당의 공격과 재벌개혁, 구조조정 등 경제 현안의 혼란을 상기하면 제2기 경제팀에 대한 김대통령의 기대와 독려의 속뜻이 읽힌다.

경제팀 회의 직접 참석, 현안 챙기기

또 다른 분석 한 가지는 ‘역시 김대통령은 일을 남에게 맡기지 못한다’는 통치 스타일에 대한 해묵은 논란의 재발이다. 진념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개혁 완수에 대한 의지를 확인시키고 팀워크 및 전력투구에 대한 당부를 하면 충분하지, 굳이 경제팀 회의에까지 참석해 일일이 사안을 챙기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냐 하는 비판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새 경제팀의 독자적인 업무 영역을 축소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여권 관계자들은 “김대통령이 또 현안의 전면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면 ‘대통령 나와라’ 하는 부작용이 거듭될까 걱정”이라고 말한다.

이 두 가지 측면에서 국민이 어느 쪽을 더 무게 있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결국 개혁의 성과에 달려 있다. 각종 경제 현안이 별 차질 없이 해결되면 김대통령의 통치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휘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경제팀의 무능’에 대한 공격의 화살이 김대통령에게로 겨누어질 수 있다.



김대통령의 경제팀 회의 참석은 이같은 부담을 안고서라도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절박성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태도에서는 8월25일로 집권 후반기를 맞는 김대통령의 ‘각오’가 엿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 후반기의 국정 운영 목표는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이미 제시되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의 3대 국정철학 아래 김대통령이 제시한 비전(5대 과제)은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인권국가,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데 헌신 △금융-기업-노사-공공 부문의 4대 개혁과 지식정보화를 통해 세계 일류국가 건설 △생산적 복지국가 정착 △국민의 대화합 실현 △남북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 상생의 시대 구현 등이다.

특히 4대 개혁을 취임 3주년이 되는 내년 2월까지 완성하겠다며 1차 개혁 완성시한을 밝힌 사실이 눈길을 끈다. 개혁문제는 3주년까지 대충 마무리짓고, 나머지 2년은 그야말로 ‘세계의 중심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포석 준비와 후계구도 정리에 전념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비전들이 얼마나 실천력을 담보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 일단 남북문제와 주변 강대국과의 외교문제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업고 순조롭게 풀어나갈 수 있다고 해도, 역시 내치 문제가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의료대란에서 보듯 정부의 의지가 ‘집단의 저항력’을 돌파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 현대그룹사태는 일단 가닥을 잡았지만, 정씨 3부자 퇴진 등 지배구조 개선은 흐지부지됐고 또 다른 재벌개혁 과정에서 얼마나 완강한 저항을 받을지 모를 일이다.

재계에서는 개각 이후 쏟아져나온 경제팀의 개혁 관련 ‘강성 발언’들을 현대문제가 답보상태를 거듭하면서 생긴 경제정책의 레임덕(정권 말기 권력누수) 현상을 덮고 고삐를 다시 죄기 위한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시장과 외국투자가들은 정부와 기업 모두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의심한다.

기업-금융-노사-공공 부문의 4대 개혁에 대해서도 민주당에서는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방향은 옳지만 4대 부문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대상이 없는 데다, 자칫 일만 벌여놓고 마무리하지 못했을 경우 그 타격이 곧장 2002년 대선 득표력으로 이어진다는 걱정이다. 특히 개혁 작업의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문그룹과 친위세력의 외연이 그다지 넓지 않게 보이는 것도 여권의 고민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국민들도 자신의 이해에 따라 ‘개혁의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각론에는 반대’라는 이기성을 버리지 못하는 등 도처에 적들만 있는 듯 보인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7월호에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모두 남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네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하지 말고 개혁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잡을 수 있는 토끼만 잡자는 주장이 비등하고 있다. 내년 2월까지 6개월 동안 4대 개혁의 완수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정치의 불안정성은 이같은 우려들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김대통령 역시 8·15 경축사에서 국내정치에 대해 “실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라고 일정한 한계를 토로했다. 어찌 보면 정치야말로 김대통령이 통제하기 가장 쉬운 부문 같지만, 실상은 이미 ‘새는 그물’이 된지 오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주당 강운태 이강래 정범구 의원 등 3인방의 ‘항명 출국’ 파동이 대표적인 예다. 더구나 이들의 출국은 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이 8월1일 청와대 직원 월례조회에서 “‘국민의 정부’ 사전에 레임덕은 없다”고 강조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일어났다.

이들의 항명사태가 민감한 파문을 일으킨 것은 당 지도부의 장악력 차원이 아니라 김대통령의 레임덕 문제로 곧장 연결되기 때문이다. 즉 17대 총선 공천은 김대통령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한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주는 것이다. 이 때문에 8월20일 이들 3인방이 돌아왔지만 서영훈 대표가 19일 “모른체 넘어가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등 사안의 증폭을 경계하는 기류 일색이다.

민주당 전당대회 역시 대통령 통치력의 한계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다. 최고위원 경선에 출마한 이인제 고문은 19일 첫 합동연설회 연설문에서 “영남권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이인제 불가론’은 오직 한나라당의 음모”라면서 “그들은 ‘이인제만 상처내면 청와대에 무혈입성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외형상 한나라당을 겨냥하고 있지만 ‘자신 이외에 후보는 없다’는 청와대를 향한 시위로 들리기에 충분하다.

물론 한화갑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동교동 신주류가 전당대회 이후 당에 대한 김대통령의 장악력을 계속 유지해 나가겠지만, 김영삼 정부 임기 후반기의 신한국당이 그랬던 것처럼 대권 예비주자들의 각축과 도발이 김대통령 통치력의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만 오는 가을 추석께가 되면 경의선 철도 복원을 위한 ‘역사적인 삽질’이 시작된다. 2차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남북 교류의 현안들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이같은 특수 상황에 따라 김대통령의 통치력은 임기말까지 크게 손상되는 일이 없으리라는 분석도 있다. 남북문제의 흡인력과 휘발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0.08.31 249호 (p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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