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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TV토론이 재미없는 이유

TV토론이 재미없는 이유

TV토론이 재미없는 이유
세상에서 싸움 구경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일은 드물다. 당사자들의 열받은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정작 관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저들이 왜 싸울까, 누가 이길까, 배후에 제3자가 있는 것은 아닌가’ 등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의문들이다.

야구에서, 아무리 홈런이 펑펑 나는 타격전이라도 이미 대세가 기운 게임이라면 재미가 없다. 야구의 진짜 재미는 승부 자체보다도 투수의 볼 하나, 감독의 작전 하나하나를 분석하고 재판하는 바로 그 맛에 있는 것이다.

요즘 텔레비전에 토론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세상살이에서 시시비비를 가릴 일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일 수 있다. 경제위기를 겪으며 자신이 차지할 몫에 대한 이해당사자들간 다툼의 소지가 커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TV토론들이 너무 재미가 없다. 주제가 흥미로워 마음 다잡고 보다가도 십여분쯤 지나면 슬그머니 오락 프로그램으로 손이 간다. 토론 프로그램이 재미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관전자의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 자기 사설이나 늘어놓는 경우가 태반이다. 가뜩이나 건조해지기 쉬운 분위기인데도 평양방송 아나운서를 방불케 하는 엄숙한 사회자들도 없지 않다.

얼마 전 어느 TV방송사에서 간판 토론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바꾸며 대대적인 사전 광고를 한 적이 있다. 토론은 재미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새얼굴의 패기가 맘에 들어 모처럼 TV 앞에 앉았는데 솔직히 기존 프로그램들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었다. 처음은 그렇다 치더라도 경제문제를 다룬 두번째 경우는 재미는커녕 토론의 질이 낙제점에 가까웠다.



사회자부터 따져보자. 토론 진행자의 본분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대변하는 일이다. 일반 사람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문제를 대신 묻고 토론자의 답변이 시원치 않으면 속된 말로 좀 ‘문지르는’ 맛이 있어야 한다. “맞아, 나도 저 문제가 궁금했었어” “야, 시원하게 물고늘어진다.” 이렇게 감탄하며 시청자들이 채널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 예리하고 색깔 있는 진행자가 아쉽다. 사회자가 토론자들에게 끌려다니며 요약정리에 급급하거나, 아니면 무슨 대단한 특권이나 가진 것처럼 논쟁의 맥을 툭툭 끊어버린다면 토론은 겉돌 수밖에 없다. 사회자도 절제된 틀 안에서 참여해 웃기도 하고 언성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자질 부족한 토론자·엄숙한 사회자 때문에 흥미 반감

출연자들의 자질에도 문제가 있다. 우선 특정 주제에 대해 권위 있게 말할 수 있는 전문가가 나오는 것이 토론의 생명이다. 그런데 요즘은 주제와는 별 상관없이 ‘토론 전문가’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 스크랩 수준의 상식을 가지고 말꼬리나 잡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힘들다. 어눌해도 자기 식견이 있어야 시청자의 시선을 끌 수 있다.

글머리에 애기했듯이 사람들이 싸움구경을 재미있어하는 것은 싸움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평소의 호기심 때문인 것이다. “흠, 저 여자 평소에 행실이 안 좋다고 느꼈는데….” 동네 싸움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내 주변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정치문제건 경제얘기건 자신의 피부와 감성에 와닿는 얘기를 듣고 싶어한다.

싸움구경이 재미있는 것은 당사자들이 평소에 누르고 있던 솔직한 생각들을 마구 쏟아내기 때문이다. 쟁점만 나열하는 반짝 토론이 아니라 속깊은 얘기가 터져나오길 시청자들은 기대하는 것이다.주중 한밤중에 방송되는 어느 예술무대가 말주변 없는 사회자들의 어색한 진행에도 불구하고 장수하는 이유는 그들의 진지함 때문이다. TV토론도 마찬가지다. 실력 있는 토론자들의 진지함과 색깔 있는 사회자의 솔직함이 어우러져야 불꽃이 튀는 것이다. 재벌집, 삼각관계, 장동건과 김희선 등 갖은 양념을 친 연속극이라도 재미없을 수 있고, 구조조정이나 인사청문회와 같은 투박한 재료에서도 일류 요리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연속극보다 재미있는 시사토론을 볼 날을 기대해 본다.



주간동아 2000.07.27 244호 (p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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