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4

2000.07.27

물길 따라 흐르는 ‘꽃술의 향연’

‘천혜의 비경’에 원추리 등 여름꽃 지천…‘하루 이틀 쉬어간들 어떠리’

  • 입력2005-08-03 13: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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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길 따라 흐르는 ‘꽃술의 향연’
    요즘처럼 마른장마와 무더위가 연일 계속되는 날에는 누구나 물가가 그리워지게 마련이다.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은 그저 바라만 봐도 가슴까지 시원하지만,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탁족(濯足)을 즐기거나 웃통을 벗어제치고 멱이라도 감는다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이 참에 짬을 내어 그런 풍류도 한번 즐겨보자는 속셈으로 강원도 영월 땅을 찾았다.

    영월 지방은 예로부터 평창 정선과 함께 ‘산다(山多) 삼읍(三邑) 영평정(寧平旌)’으로 불리었다. 옛 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칼 같은 산들이 얽히고설켜 있고 비단결 같은 냇물은 맑고 잔잔한” 고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월군의 동쪽은 태백산맥의 굵은 멧부리들이 불끈불끈 치솟아 있고, 남쪽은 소백산맥의 험산준령들에 겹겹이 둘러쳐져 있다. 이처럼 높고 험한 산줄기를 비집으며 굽이치는 동강과 서강의 물길은 곳곳마다 보기 드문 절경을 이뤄놓았다. 더군다나 두 강줄기의 변화무쌍한 물길과 나란히 달리는 찻길은 한적하고 시원스러울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 또한 빼어나게 아름다워 강변 드라이브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먼저 서강의 상류를 이루는 주천강(또는 서만이강)으로 향했다. 중앙고속도로의 신림 나들목에서 88번 지방도를 따라 10분 남짓 달리면 원주시 신림면 황둔리를 지나게 되고, 이 마을에서 2∼3분만 더 가면 주천강을 가로지르는 섬안교에 당도한다. 이곳에서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 요선정(邀僊亭)까지의 20여리 길은 강을 끼고 달리는데, 푸른 물과 수목 울창한 산자락의 조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기분이 상쾌해진다. 더욱이 길가에는 샛노란 꽃빛의 삼잎국화가 가로화로 심어져 있어 길 떠난 이들의 흥치를 북돋운다.

    청산녹수(靑山綠水)의 주천강 풍경은 요선정에 올라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이 정자는 높이 60m쯤 되는 벼랑 위에 고려시대의 마애불과 함께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가파른 산자락 사이로 감도는 주천강의 푸른 물길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찻길과 나란히 달리던 주천강의 물길은 주천면 소재지를 지날 즈음부터 차츰 시야에서 멀어졌다가 이따금 한번씩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주천에서 영월까지는 다시 88번 지방도를 타고 가는데, 이 길은 먼 옛날 단종의 귀양길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이 길이 지나는 곳곳에는 단종과 관련된 지명이 여럿 남아 있다. 서면 광전리의 군등치(君登峙)라는 지명은 ‘단종 임금이 오르던 고개’라는 뜻이고, 서면 신천리의 배일치(拜日峙)는 단종이 해를 향해 절을 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신천리의 우래실마을은 단종의 유배를 슬피 여긴 백성들이 모여 통곡했던 마을이라고 한다.



    영월읍 들머리인 소나기재 정상에는 선돌이라는 절승이 있다. 이곳의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서면 태극 형상으로 굽이치는 서강과 사방으로 중첩되며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폭의 진경산수(眞景山水)처럼 펼쳐진다. 필설로는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장대하고 웅장한 경관이다.

    영월 읍내를 지나치기 전에는 단종의 무덤인 장릉과 유배지였던 청령포도 잠깐 들러봄직하다. 서강 가에 자리한 청령포는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과 구불거리는 물길이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하지만 단종에게는 절망과 고독, 죽음의 땅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노산대 망향탑 금표비 등과 최근 복원된 단종의 옛집이 남아 있고, 솔숲 한쪽에는 단종 생전의 모습을 지켜봤다는 관음송(觀音松, 천연기념물 제349호)이 수백 년 세월 동안 묵묵히 서 있다.

    물길 따라 흐르는 ‘꽃술의 향연’
    청령포를 에돌아온 서강은 영월읍 하송리에서 동강과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룬다. 영월 읍내에서 동강을 찾아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삼옥리 거운리를 지나 문산리에서 끝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정선군 신동읍 고성리 쪽에서 곧장 정선읍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그중 동강 제일의 비경이자 래프팅의 명소로 이름난 어라연계곡으로 가려면 전자의 길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물길과 꽃길을 따라가며 강변 드라이브의 묘미를 즐기려면 신동읍 방면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

    신동읍 고성리를 지나면서 아스팔트 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흙길이 시작된다. 길은 시종 강줄기를 따라서 20여km나 내달리는데, 굽이치는 물길을 닮아서인지 길의 흐름도 정선아라리처럼 유장하면서 변화무쌍하다. 물길 따라 새끼줄처럼 늘어진 길은 완만하게 오르내리는가 싶으면 어느덧 구불거리고, 구불거리는가 싶으면 다시 오르내리기를 거듭하며 끝없이 이어진다

    지금 동강(정확히 하자면 이 지역은 정선군이므로 조양강으로 일컬어야 한다)에는 갖가지 여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왕원추리나 큰원추리 같은 원추리꽃이다. 강가의 바위틈에도, 길가의 풀숲에도 노란 큰원추리꽃과 주황색 왕원추리꽃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화사하게 피었다. 외지인들의 발길이 뜸한 운치리 돈니치마을의 동구에는 꽃빛 고운 하늘말나리가 드물게 눈에 띄고, 강변의 너른 둔치에는 하얀 개망초꽃이 군락을 이룬다. 개망초는 토종식물을 망치는 귀화식물(歸化植物)인데도 무리지어 피어 있는 풍경이 퍽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산과 물과 꽃이 한데 어우러진 이 길은 정선읍 광하교 부근에서 42번 국도와 만나면서 종점에 다다른다. 여기서는 저마다의 취향에 맞게 여정(旅程)을 이어가면 된다. 강변 드라이브 코스를 잇고 싶다면 42번 국도를 따라가는 조양강을 바라보며 아우라지까지 가볼 만하고, 동강의 풍치에 매료되어 더 머물고픈 사람은 가수리마을에서 하룻밤쯤 민박을 하거나 야영할 수도 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계곡에서 물놀이와 야영을 즐기기에는 정선읍 회동리의 가리왕산자연휴양림(033-563-1566)이 제격이다. 해발 1560m의 가리왕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은 이 휴양림에는 통나무집 야영장 화장실 체육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어 가족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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