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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상품화 시대

made in 나? “내가 나를 만든다”

자신의 개성을 상품으로… 신체 순간조형 - 포켓사진 - 맞춤CD 등 새 소비 트렌드 부상

made in 나? “내가 나를 만든다”

made in 나? “내가 나를 만든다”
서울 이화여대 앞에 있는 순간조형 전문점 ‘페이스/오프’. 세 명의 여학생이 자신의 손 모형을 뜨고 있다. 왼쪽 손에 실리콘과 석고를 바른 이들은 틀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지난해 수능시험을 치렀다는 이들은 서로의 ‘몸’의 흔적을 나눠 가지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특별한 기념을 하려구요.”

“내 몸이 제일 소중한 거잖아요.”

지난해 7월 문을 연 이 가게에는 하루 평균 20~30명의 손님이 찾아와 몸의 일부를 수지로 만들어간다. 아기의 고사리 같은 손과 발을 기념하는 엄마에서 서로의 입술 모형으로 열쇠고리를 만드는 연인, 자신의 신체를 영원히 간직하려는 신세대까지 손님은 다양하다. 요즘 유행하는 ‘made in 나’(내가 나를 만든다) 상품 중 하나다. X세대 이후 ‘미(me) 이즘’이 최고의 가치가 되자 아예 ‘나’(나의 개성)를 ‘상품’으로 만들어 즐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 두 사람의 몸을 만들어봤어요. 그 분들은 더 나이 들기 전에 자신의 몸을 남겨 간직하 고 싶어했어요.”



‘페이스/오프’의 주인 김철수씨의 말이다. ‘페이스/오프’는 전국에 100여개 체인점을 갖고 있으며 ‘듀프 페이스’ ‘올 페이스’ 등 경쟁업체들도 생겨났다.

스티커포토에 이어 최근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포켓사진’도 전형적인 ‘made in 나’ 상품이다. 원래 로스앤젤레스 한인교포들이 흑인과 히스패닉을 상대로 개발해 성공한 ‘포켓사진’점은 지난해 6월 우리 나라에 상륙, 인기를 끌고 있다.

‘포켓사진’은 말 그대로 명함크기의 사진인데 특수 장비와 과다 노출을 이용해 인물의 얼굴이 희디희게 나온다.

중학생 딸을 데리고 포켓사진점을 찾은 윤모씨(39)는 “연기 학원에 보낼 딸의 프로필 사진을 찍으러 왔다”며 “우리 딸 얼굴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고 흐뭇해했다.

“사진적으로 본다면 잘못 나온 거죠. 그러나 얼굴에 주근깨나 점 하나 보이지 않아 손님들은 무척 흡족해하죠. 또 멋진 배경과 포즈로 스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포켓사진점 ‘스타샷’의 김원철실장은 “한 사람을 위한 마케팅전략이 전 영역에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 다른 ‘made in 나’ 상품으로 ‘맞춤 CD’가 있다. 마치 SF영화의 세트 같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압구정동의 ‘TMC’는 키오스크라는 기계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뽑아 담고 앞면에 자신의 사진을 담는 등 마음대로 CD를 만들 수 있는 맞춤CD점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이후 평일 250명, 주말 500명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자신의 CD를 ‘제작’한다. “친구에게 줄 CD를 선물하기 위해 왔다”는 대학생 백윤승씨는 “내가 음악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즐거워했다. 최근에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담아 ‘맞춤 테이프’를 제작하는 컴퓨터 방이 생기는가 하면 맞춤CD를 파는 자판기까지 길거리에 들어서고 있다.

‘TMC’의 이준호점장은 “MP3로 다운받는 것보다 훨씬 음질이 좋다”며 “N세대를 겨냥했는데 의외로 대학생 이상의 손님이 많다”고 말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개개인의 체형을 컴퓨터로 측정, 재단해서 판매하는 ‘세상에 한 벌밖에 없는 청바지’(personal pair jean)가 붐을 일으키면서 전세계적으로 뚜렷한 소비트렌드로 부상한 ‘made in 나’ 는 개인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획일적인 규제나 통제를 거부하는 현대인들의 변화된 심리를 반영한다. 이 때문에 업체에서는 상품뿐만 아니라 ‘내가 나를 만드는’ 삶의 스타일 자체를 함께 팔기도 한다. 화장품 브랜드인 ‘아베다’ ‘보디샵’ 등이 이런 마케팅 기법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업체들.

‘아베다’는 무향 로션이나 오일 등에 ‘정신적 치유를 겸한’ 17가지 별도의 향을 소비자가 마음대로 섞어서 쓸 수 있도록 판매하면서 명상 등 ‘정신의 자유’를 얻기 위한 자기수련법을 함께 가르쳐 호응을 얻고 있다.

대량생산을 거부하는 듯한 마케팅 전략이 인기를 끌자 최근에는 ‘샤넬’ ‘헤레나 루빈스타인’같은 대기업도 맞춤화장품 시대를 선언하고 ‘made in 나’의 개념에 근접한 상품을 내놓았다. 상담원이 기업에서 자체 개발한 테스트 기계로 개인의 피부에 가장 잘 맞는 제품들을 찾아내거나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것이다.

개인의 일기장, 기념물, 사진 등을 담는 타임캡슐, DNA를 목걸이나 반지에 담는 ‘진’(gene) 상품들, 자신의 사진으로 만드는 ‘역사책’, 구슬들을 자기가 디자인한 모양으로 꿰어 만드는 ‘이니셜 액세서 리’ 등도 모두 ‘made in 나’의 컨셉트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상의 수많은 개인 홈페이지들은 자신의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나’ 의 표지다.

왜 사람들은 이처럼 ‘나’를 타자화해서 소비하는 것일까.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연구한 하인즈 커트 같은 심리학자는 ‘자기 정체성이 획일화되고 작아지는 사회일수록 과장된 자아가 소비를 촉진한다’ 면서 이를 ‘그랜다이즈 셀프’(자아의 과장)라고 부르기도 했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의 문화인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미화해서 받아들이고 싶어한다. ‘페이스/오프’를 찾는 일반인들은 얼굴모형은 거의 만들지 않는다. 김철수씨는 “모형으로 그대로 만들어진 얼굴(데드마스크)은 화장발로 숨겨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굳은살 박힌 오른손의 모형도 절대 만들지 않는다. 이렇게 만든 신체 모형에 번쩍거리는 ‘황금색 분’까지 덧바른다.

결국 ‘made in 나’ 상품의 속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품화하는 행위를 통해 왜곡된 자아를 즐기는 모순 속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 시대의 욕망읽기’의 공동저자인 이만우씨(국민대 강사)는 “자아를 과장하려는 것은 서구화된 사회의 공통된 심리지만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차이에 극단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존중받고 싶어하는 욕구 덕분에 ‘made in 나’는 점점 더 잘게 쪼개진 ‘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더 많은 소비를 창출해내는 것만은 분명하다.



주간동아 2000.02.03 220호 (p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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