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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경품천국 한국

‘인터넷 경품사기’ 주의보

충동구매 조장, 결국 소비자 부담 늘어… 개인 신상정보 유출도 위험수위

‘인터넷 경품사기’ 주의보

‘인터넷 경품사기’ 주의보
목동에 사는 주부 정미선씨(35)는 여덟살 여섯살짜리 두 아들이 과자를 사달라고 할 때마다 속이 상한다. 두 아들이 노리는 것은 과자 자체가 아니라 봉지 속에 하나씩 들어있는 딱지이기 때문. “딱지만 꺼내고 나면 과자는 거들떠도 안봐요. 또래 친구들끼리 딱지모으기 경쟁이 붙어 말릴 수가 없어요.” 정씨는 아이들이 과자나 학용품을 고르는 이유가 대부분 옆에 붙어 있는 장난감 때문이라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푸념한다.

그러나 정씨 자신도 백화점 경품을 타기 위해 생각지도 않았던 물건을 바리바리 산 경험이 적지 않다는 고백이다. “몇만원어치만 더 사면 이불세트나 프라이팬을 타거나 아파트 경품 추첨에 응모할 수 있는 데다 어차피 언젠가 살 것들이라 생각되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미리 사게 되죠.”

범람하는 경품이 여러 가지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해 말 전국 33개 유명 백화점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이들 백화점은 경품비용으로 887억원을 지출했다. 11, 12월의 경품비용을 합하면 1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98년의 528억원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금액이다. 이렇듯 경품이 범람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법적 규제가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공정거래위원회는 ‘경품류 제공에 관한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 및 기준’을 소비자 경품만 상품가액의 10%로 제한하고 소비자현상경품은 예상 매출액의 1%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제공할 수 있도록 완화했다. 이전에는 물건을 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주는 ‘현상경품’은 한도가 15만원이었고, 경품 제공횟수나 기간도 ‘연 2회, 회당 20일 이내’로 제한돼 있었다.

업체들이 사은품보다 경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뛰어난 홍보효과 때문. 비싼 경품이 가져다주는 홍보효과는 직접적인 광고보다 훨씬 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워낙 경품이 난립하자 이제 경품이 가져오는 효과도 반감되는 양상. ‘경품 인플레 현상’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웬만한 경품엔 놀라지도 않는다. 응모에 응모를 거듭했지만 늘 ‘꽝’이 나온 경품족들은 “경품은 없다”를 외치며 분노하고 있다. ‘달나라 여행권’처럼 실생활과는 동떨어진 경품으로 소비자를 현혹하려는 상술에 대한 불신감도 드높다.



홍보를 위한 경품이란 ‘비본질적인 유혹’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최근 포켓몬스터 바람이 불자 빵 속에 든 스티커 모으기에 열중한 어린이들이 대형 할인매장 등의 진열대에 놓인 빵을 뜯어 스티커만 빼내 갖고 나오는 일이 늘어난 경우가 그런 사례.

소비자단체들의 경우 원천적으로 경품에 적대적인 편이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김자애이사는 “소비자단체들이 모니터한 내용에 따르면 경품이란 미끼상품이 난립하면서 소비의 본말(本末)이 전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상품 자체의 품질이나 서비스가 선택기준이 아니라 경품에 따라 상품의 선택이 좌우되므로 건전한 소비를 저해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소비자단체들은 경품에 대한 규제완화를 실시할 때부터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며 “경품이 난립하도록 허용한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상담실 김진희간사도 “경품이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과소비와 충동구매를 조장하고 사행심을 부추길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제품 가격에 반영되므로 소비자 부담만 늘게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오명문 소비자상담팀장은 여기서 나아가 “정작 문제의 소지는 다른 곳에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부터 경품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공간이 그곳. 그는 “인터넷을 통한 경품행사는 이제 막 시작이므로 앞으로 피해사례가 늘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 사이버 공간에는 100여개로 추정되는 경품사이트들이 난립하고 있다.

우선 지적되는 피해는 개인신상정보 유출문제. 장난삼아 몇 군데 경품 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 회사원 박진철씨(33)는 “최근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콘도회원 가입을 하라는 둥, 패키지 여행상품을 사라는 등의 이메일이 많이 들어온다. 경품 사이트에 제공한 신상정보가 다른 데로 새나간 것 같아 불쾌하다” 고 말한다.

대부분의 경품 사이트들은 회원가입을 전제로 하고, 회원으로 가입할 때 상세한 개인신상정보를 요구한다. 기본적으로 웹사이트 접속에 필요한 ID와 비밀번호,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주민등록번호 직업 연령 주소 등을 입력해야 한다. 이러한 정보들이 고의건 고의가 아니건 외부로 빠져나갈 경우 개인의 피해가 작지 않다.

인터넷 기업간 인수합병(M&A)이나 업무제휴가 늘면서 인터넷 사이트의 소유권에 변화가 생길 때 회원신상정보까지 함께 오가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는 게 업계측의 귀띔. 업계 입장에서는 회원수가 자산인 인터넷 업체가 매각될 때 회원까지 넘기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치 않는 신상정보가 유출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가령 ‘광고 배너를 클릭하면 현금을 준다’는 광고로 100만 회원을 확보했던 골드뱅크의 경우 초기 투자자들이 주가상승으로 떼돈을 챙기고 떠나간 뒤 새로 웹사이트를 인수한 경영주측에서 고객들이 배너를 클릭해도 돈을 주지 못할 정도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박진철씨는 “외국 사이트들의 경우 자세한 신상정보 없이 주소 전화 이름 이메일 정도만 입력하면 되던데, 한국의 경품사이트들은 너무 많은 정보를 요구한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인터넷을 통한 사기도 심심지 않게 벌어진다. 전형적인 인터넷 사기는 ‘짜고 치는 고스톱’형. 최근 모 청바지 회사가 인터넷을 통해 3억원의 경품을 걸고 회원을 12만명이나 모았지만 당첨자가 그 회사와 관련된 업체여서 회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은 일도 있다. 인터넷을 통해 경품을 주는 경우 현실적으로 추 첨 과정을 볼 수 없어 어떤 경로, 어떤 기준으로 결정됐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지난 10월말에는 ‘매직 골드’라는 웹사이트에서 10만원을 입금하면 50만원 상품권을 준다는 이벤트를 벌여 300여명이 가입했지만, 이들은 나중에 “경영주가 이 돈을 챙겨 잠적해 상품권도, 입금원금도 줄 수 없다”는 내용의 사과문만을 볼 수 있었을 뿐이다. 심하게는 신용카드 번호를 이용해 쇼핑몰로부터 청구서가 날아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명문팀장은 “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는 현행 사법체계 안에서는 사전에 예방할 장치가 없어 스스로 조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충고한다. 그는 특히 “지나치게 과다한 경품을 제공하는 업체보다는 개인정보 보호대책을 갖춘 업체와 거래하라”고 권한다.

한편 경품 난립현상의 문제점이 한창 지적되던 지난해 11월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은 경품고시제도의 부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공정거래위 관계자는 “한번 규제가 완화된 것을 다시 묶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전문용역기관에 의뢰, 소비자와 업계측의 여론 수렴중인데, 그 결과에 따라 2월 중에는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주간동아 2000.02.03 220호 (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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