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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제2건국위

“무늬만 민간단체”

관변단체 시비 잇따라 …“위상 - 역할 국민에 납득시켜야”

“무늬만 민간단체”

“무늬만 민간단체”
대통령자문기구인 제2건국위(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새해 들어 재연됐다.

새해 벽두 여야의 선거법 협상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난데없는 합의사항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1월12일 선거법심사소위를 열어 제2건국위의 선거운동 금지를 선거법에 명문화하기로 한 것. 도대체 민간단체라는 제2건국위가 왜 선거법 협상 테이블에까지 올라야 하는지 시민들은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엔 더한 논란이 불붙었다. 제2건국위 핵심간부들이 새천년민주당과 청와대에 합류하면서 ‘친여 조직’ 논란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른 것. 제2건국위 상임위원장인 서영훈씨가 민주당 대표로, 기획운영실장인 이만의씨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고 실무간부 4명이 민주당에 조직책을 신청한 것이 계기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간중심의 국민의식개혁과 생활개혁에만 전념하겠다던 제2건국위 인사들이 잇따라 정치인으로 변신하는데 대한 여론과 야당의 비판은 따가웠다.

정치개혁시민연대의 한 인사는 “제2건국위가 순수한 국민운동단체가 아니라 특정정당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든 조직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이사철대변인은 “제2건국위는 ‘국민회의 제2건국위 지부’였고 민간운동단체가 아니라 ‘국민회의 운동단체’였다”며 “우리는 제2건국위 출범 때부터 여권의 친위조직 놀음만 할 것이라는 우려에서 반대의사를 명백히 했다”고 비난했다.

제2건국위는 반박했다. 1월20일 성명을 통해 “서위원장의 대표직 내정과 직원들의 조직책 신청은 개개인의 판단과 결단에 의한 것으로 단체의 성격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각 지역 추진위원회는 자치단체장이 추진위원을 위촉하는 독립된 별개의 기구”라며 “여야와 무소속의 자치단체장이 위촉한 각 추진위원회가 총선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할 것이라는 주장은 억지”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은 제2건국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까지 이어졌다. “제2건국위가 출범 이후 한 일이 뭐냐” “여권의 인력 풀 역할이 주임무인데 순수 민간단체라 할 수 있느냐” “출범부터 끊임없이 논란거리가 돼온 제2건국위를 굳이 존속시킬 필요가 있느냐” 등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 말 많던 제2건국위에 다시 오점을 찍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제2건국위의 짧은 역사는 논란과 시비가 점철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단체의 2년여의 역사는 크게 두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첫 시기는 98년 8월∼99년 6월로 김대중대통령이 제2의 건국운동을 제창한 뒤 민관 합동의 강력한 추진체를 실현시키려 했던 시기다. 두 번째는 여론과 야당의 압력에 굴복, 민간중심기구로 변신을 꾀해온 99년 6월부터 지금까지의 시기다.

제2건국위는 김대통령의 98년 ‘8·15 경축사’에서 ‘잉태’됐다. 김대통령은 “제2의 건국은 우리가 역사의 주인으로서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 그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시대적 결단이자 선택” 이라며 이 운동을 제창했다.

이어 98년 10월 제2건국위가 공식출범하지만 곧바로 ‘월권논란’을 빚어 순수성을 의심받게 된다. 즉 98년 11월 제2건국위 태스크포스팀이 정부개혁 및 민원행정 개선문제 등을 논의한 문건내용이 보도되면서 제2건국위가 단순한 대통령자문기구가 아닌 ‘초법적 권력기구’가 아니냐는 격렬한 공방에 휩싸였던 것.

그럼에도 사실상 관이 주도하는 제2건국 운동은 계속됐다. 제2건국위는 99년 2월3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김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2의 건국 한마음 다짐대회’를 갖고 본격적인 운동에 나섰다.

당시 제2건국위 상임위에는 재정경제부 장관을 비롯한 장관급 인사 13명이, 기획단에는 통일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문화관광부 차관과 기획예산처 정부개혁실장 등 차관급 다수가 참여했다. 상임위와 기획단의 정부인사 비율은 20∼30%나 됐다.

그러나 정부의 기대만큼 제2건국운동의 불길은 타오르지 않았고 권력 내부에서조차 운동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99년 5월초 당시 국가정보원 문희상기조실장은 한 강연에서 “지금처럼 관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제2건국운동을 추진할 경우 성공할 수 없다”며 “행정자치부장관과 청와대정무수석이 제2건국운동에서 직책을 맡아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5월 중순경 행정자치부가 일선 지방자치단체에 ‘제2건국운동 활성화지침’을 내려보낸 사실이 폭로되면서 제2건국위에 대한 일반의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고 제2건국위는 관변단체 시비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 무렵 야당인 한나라당의 공세도 매서웠다. 1월초부터 전국 시도지부와 지구당 조직으로부터 제2건국위 관련 동향을 보고받아온 한나라당은 ‘제2건국운동 활성화지침’ 사건을 계기로 제2건국위 해체 공세를 폈다.

김대통령은 결국 한 발짝 물러나 제2건국위 핵심조직인 상임위와 기획단을 100% 민간인사들로 바꾸었다. 기획단에서 행자부장관과 국무조정실장 등 정부인사 9명이, 상임위에서 청와대수석비서관 등 정부인사 12명이 각각 물러난 것.

이같은 대대적인 조직개편후 제2건국위는 관 주도 시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제도개혁보다는 민간중심의 생활, 의식개혁 운동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활동방향도 재정립했다.

이때부터 제2건국위는 과거의 적폐 청산을 위한 운동인 △부정부패추방운동 △국민화합운동, 21세기에 대비하는 운동인 △신지식인운동 △한마음공동체운동 △문화시민운동 등 이른바 ‘5대 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이중 비교적 활발했던 활동은 신지식인운동과 부정부패추방운동. 제2건국위는 99년 9∼12월 중앙정부와 광역자치단체, 180여개 기관과 단체 등을 대상으로 280여개의 신지식인 교육강좌를 개설, 50만명에게 강의했다.

제2건국위는 1월5일 시민단체 등과 함께 ‘2000년 맑은 사회 원년 만들기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낡고 병든 관행을 척결하고 부정부패를 추방하기 위한 범국민적 실천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1월13일에는 공직부패의 실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국내 최대의 ‘부정부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제2건국위 인터넷 홈페이지(www.reko.go.kr)에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에는 김영삼전대통령 차남 현철씨에 대한 정부의 사면방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김대통령에게 공식 건의, 주목받았다. “대표적인 권력형 부정비리 케이스인 현철씨를 사면하는 것은 제2의 건국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논리에서였다.

제2건국위는 지난해 9월부터 21세기 문화시민운동의 일환으로 경기장 문화를 바로세우기 위한 ‘페어플레이 운동’도 전개중이다.

그간의 운동에 대해 제2건국위 관계자는 “신지식인운동 붐이 조성되는 등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 단체의 전반적 활동이 국민적 공감대 위에 실효성 있게 진행됐다고 보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초기에 무리하게 활동영역을 넓히려다 잇따른 물의를 빚었고 그 뒤 민간주도로 바뀌면서 몇몇 정책제안을 내놓기도 했으나 전국적인 조직과 막대한 예산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었다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한 듯하다. 99년 제2건국위 공식예산은 20억원뿐이었으나 지자체예산 및 민간단체 보조금 등을 포함하면 1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선 ‘운동을 통한 국민의식 개혁’이란 애당초 시대착오적인 것이었다는 극단론도 나왔다.

모 시민단체의 핵심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지금까지의 활동상을 볼 때 제2건국위가 존재할 필요성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이 단체가 있음으로 인해 민간운동에 제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자민련 김종필명예총재는 총리시절인 지난해 8월 제2건국위 간부들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제2건국위는 정권과는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기능하면서 국민의 생활개혁과 의식개혁을 이끌고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제2건국위는 과연 그같은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가. 이제 제2건국위가 정체성과 존재의의에 대해 국민을 납득시켜야 할 때다.

줄줄이 정치인 변신 … “거대한 인재 풀”

전국에 1만5000여명 위원 … 학계-재야-시민단체 등서 ‘거물’ 포진


제2건국위는 거대한 ‘인재 풀’로 불린다.

단순히 전국적으로 1만5000여명의 위원이 있어서가 아니다. 중앙에 포진한 60명 안팎의 상임위원과 30명 가량의 기획위원, 480명 정도인 본회의 위원의 면면이 주는 무게 때문이다. 이들은 학계나 재야 시민단체 등에서 나름의 족적을 남겨온 인물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DJ정부는 청와대나 정부의 ‘싱크탱크’ 기관이나 집권당에 수혈이 필요할 때마다 제2건국위의 인재를 충분히 활용해왔다. 정가에서는 앞으로 그 빈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제2건국위의 ‘3대 얼굴’ 중 한 사람이 새천년민주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표공동위원장(변형윤) 상임위원장(서영훈) 기획단장(김상근) 중 서상임위원장이 1월20일 창당한 민주당 대표가 된 것.

이만의기획운영실장은 1월18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비서관(1급)으로 발탁됐다. 그는 98년 10월 제2건국위 출범 때부터 실무작업을 총괄해온 인물이었다.

올 ‘1·13개각’ 때는 최인기상임위원이 선거주무부서인 행정자치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그는 상임위원으로서 국민화합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다. 같은 날 교육부장관으로 입각한 문용린 서울대교수도 상임위원이다.

이에 앞서 명망있는 일부 제2건국위 공동위원장과 상임위원들이 지난해 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영입됐다. 상임위원이었던 장영신 여성경영인협회장은 창당준비위 공동대표가 됐다.

제2건국위 공동위원장인 김민하 전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김운용 대한체육회장과 정명훈 음악감독, 그리고 상임위원인 이창복 민주개혁국민연합상임대표와 황창주 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 등은 지난해 창당준비위원 또는 발기인으로 민주당에 영입됐다.

기획위원이었던 김성재 전한신대교수는 지난해 6월 청와대민정수석(현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됐다. 한상진 서울대교수는 정신문화연구원장(현 기획위원)으로 김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기획단 부단장을 맡았던 조재환 전국민회의사무부총장은 요즘 민주당조직위 간사위원으로 활약중이다.

실무간부들의 이동도 적지 않다. 문화시민운동을 담당해온 우원식 제2심의관, 홍성범 공보팀장, 지용호 민간협력팀장은 각각 민주당 서울 노원갑과 서울 동작을, 서울 동대문갑 지구당 조직책을 신청했다.




주간동아 2000.02.03 220호 (p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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